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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Nov 03. 2021

믿고 먹는, 아니 믿고 키우는 방울토마토

"나 잘했지? 너도 잘할 수 있쥐????"

아이가 없어도 우리는 행복했다. 하지만, 남편이 출근을 하고 빈집에 홀로 남아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찾아오는 적막감에 쉽게 무력해지곤 했다. 화려한 알전구를 벽에 고정하고, 귀여운 포스터를 벽에 붙이고, 좋아하는 인형을 책상 위에 올려놓아도 마음의 고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가슴 안의 한 구석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퓨우 우웅 하고 작아지는 느낌. 안 되겠다. 뭐라도 키워봐야겠다. 나는 팔딱팔딱 뛰는 생명력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는 한 번도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문외한인 사람들이기에, 강아지는 선택지에서 1차 제외했다. 햄스터는 어린 시절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이구아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금붕어는 어항을 둘 공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없었다.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키워내지 못할 인간들인 것인가, 싶은 마음에 풀이 죽어있던 나를 보더니 남편은 "기르기 쉬운 동물"이라고 검색창에 적기 시작했다.


손 많이 가지 않고, 알아서 잘 자라는 동식물을 지식인들이 친절히 알려주실 거라는 우리의 믿음은 쨍그랑 깨져버렸다. 답변에는 이렇게 달려있었다.


 "알아서 잘 자라는 건 없습니다. 모든지 정성을 다해야죠. 님 같은 사람은 뭐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현대사회 천상계에 있는 지식인에게 확인사살을 받자 또 한 번 크게 상심한 나의 손을 잡고 남편이 말했다.


"그럼, 방울토마토 키워볼래?"


방울토마토면 키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도 매일 주지 않아도 되고, 초등학생 때도 베란다에서 키워 본 경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본격적으로 토마토를 키우기 시작한 2020년의 5월, 우리는 아주 지극정성이었다. 안방에 누워있다가도 혹시 고사이 새싹이 한 뼘 컸을까, 혹시 불편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들면 방안의 어둠을 헤치고 곧장 베란다로 달려가곤 했다.


신기하게도 방울토마토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토마토는 쑥쑥 자라나 빨갛게 익은 얼굴을 생각보다 빨리 드러내며 우리를 기쁘게 했다. 그로부터 1, 우리는 바쁘게 살았다. 남편은 이직한 회사에서 열심히 야근을 했고, 나는 집에서 열심히 일했다. 함께 저녁을 먹는 날보다, 서로의 저녁 메뉴를 랜선으로 물으며 지내는 날이 많아졌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일찍 귀가한 남편은 웬일인지 들어오자마자 베란다로 겅중겅중 뛰었다. "우리 토마토! 우리 토마토!"라고 소리치면서. 그제야 우리 , 베란다에 토마토가 다는 사실을 깨닫게  먹던 고구마를 던져두고 베란다로 뛰어갔다.


베란다로 뛰어가는 약 5초 정도의 시간 동안 머릿속의 파노라마가 빠르게 지나가는 듯했다. 처음 화분에 심었던 날, 새벽에 불쑥 새싹을 피웠던 날, 어느새 키가 쑥쑥 자라 지지대를 받쳐 주어야 했던 날, 토마토 열매가 열렸던 날,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사이좋게 따 먹었던 날, 그리고 그날 이후 몇 달째 주인 놈들의 무관심으로 방치된 우리의 토마토! 그런데 예상외의 장면이 펼쳐졌다.



"대박이다.."

물을 안 준지도 몇 달째, 토마토는 그럼에도 새로운 열매를 맺고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토마토의 키는 확실히 커져있었다. 미안해진 마음에 지식인에 <토마토 잘 기르는 법>을 검색했다. 가장 상단에 있는 질문을 선택해 스크롤을 내리던 참, 나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채택받지 못한 지식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허경영 사진을 붙여 놓으면 무럭무럭 자랍니다."

세상에, 이게 뭐야. 갑자기 허경영? 적어도  사람보다는 내가 방울토마토를  기를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달린 답글.

"허경영 사진 진짠데."

그리고 답글을 달았다(가 지웠다).

"저는 허모씨 대신 방울토마토를 믿겠습니다."


실제로 우리 토마토는 허모씨의 사진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도 이렇게 홀로 잘 자라주었으니 말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요령 없이, 꿋꿋하게 자라난 토마토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잘했지? 너도 잘할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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