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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도망가지 않는다.

2년 동안 도망가지 않고, 늘 같은 곳에서.

by 프니

며칠 전, 엄마의 호출을 받고 집에 방문했다. 엄마의 어플이 말썽이었는데, 갑자기 로그아웃이 되어 며칠 동안 임영웅에게 투표를 못하고 있단다. 그게 뭐 별일인가? 하지만 엄마에게는 너무나도 큰일이었다. 이메일 주소를 넣어봐도 알 수 없는 사용자라고 뜨는 답답한 현실. 어찌할 수 없이, 새로운 아이디를 만드는 것으로 해결을 했지만 엄마는 그동안 모은 포인트가 많은데 너무 열이 난다며 평일이 되면, 전화 문의를 넣어봐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플 사태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때마침 아빠가 군밤을 들고 왔다.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만드는 고소한 군밤 냄새에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상앞에 앉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티브이 속에는 엄마의 웅 님, 임영웅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엄마는 마치 처음 듣는 노래처럼 손을 모으고 고개를 좌로 우로 흔들면서 나~~ 나나나~~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하루 종일!!! 저 노래만 틀어. 질리지도 않나 봐. 아주~~~ 하루종~~~~~~일"

"뭐, 뭐가~ 저 노래 계속 들어야 된단 말이야. 하루 종일 들어도 안 질리지."


엄마와 아빠는 뜨끈뜨끈한 군밤 앞에서 임영웅을 두고 뜨겁게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니 내 말은, 다른 노래도 들으라는 거지."

"뭐~뭐가~~ 계속 들으면 ~~"


또 시작이다. 이 상황은 작년에도 본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엄마의 덕심, 덕질은 왜 갈수록 힘이 더 세지는 것인가. 엄마와 아빠는 그의 노래가 끝나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언제까지 저 노래를 계속 들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그러던 그때, 엄마가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더니 무릎을 일으켜 세웠다. 하마터면 깜빡 잊을 뻔했다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 만에 다시 웃으면서 나오는 엄마.


"엄마, 뭐하고 왔어?"

"아니~~ 아니야~"

"뭐야, 뭐한 거야?"

"아니~ 신사와 아가씨 드라마에 영웅이 노래가 나온다 해서 시청률을 높이고자 틀고 왔어."


아빠는 헛웃음을 짓더니 먹던 군밤을 그릇에 툭하고 던졌다. 튼다고 무조건 시청률로 잡히는 게 아니라며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엄마가 당당하게 반격의 카드를 날린다. "그래, 뭐~. 그럼 어때. 안 잡히더라도 자기만족이지, 자기만족. 나는 맨~날 틀어 놓을 거야."


두 사람의 설전을 중재하기 위한 눈치 카드를 써야 할 때였다. 그 일은 나의 몫. 나는 그의 노래가 마치 교과서 같다며 칭찬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엄마는, 어머어머 그게 무슨 소리냐며 더 자세한 설명을 해보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어, 아니 그게 아니라... 교과서처럼 아주 잘 부른다고. 호불호가 없잖아.... 잘하긴 하잖아. 실력 있잖아. 연습생 때 군밤 팔면서 열심히 노력하더니 이렇게 대스타가 되고, 역시 될 놈은 된다니까? 아하하. "


핑계처럼 괜히 길게 말을 늘어놓았더니 엄마가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그리고는 내게만 들릴 듯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건 맞아. 근데 군밤이 아니라 군. 고. 구. 마. 야."



사랑은 늘 도망간다고 그는 노래하지만, 엄마는 늘 도망가지 않는다. 오늘도 떳떳하게 자신의 스타를 지킨다. 허위정보는 정정하고,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스밍을 돌리고, 채널을 틀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홍보를 하고 다니느라 하루를 48시간처럼 쓴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 혹은 까먹어서 며칠은 빼먹을 그 일들을 하는데 엄마는 늘 열심이다. 도망가지 않고, 늘 같은 곳에서.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엄마가 노래를 들어보라고 전화를 해서가 아니라, 임영웅 노래로 멋지게 글을 써보라고 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불타는 엄마의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임영웅은 알까. 엄마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노력을. 엄마는 알까. 엄마의 하루하루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의 노래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의 콧노래가 영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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