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이 마음이었을까, 엄마도 그랬을까.
"내가.. 너무 억울하다! 정말."
지난주 목요일 오후 2시 30분이었다. 배고픔에 허덕이다 생라면을 와그작와그작 뿌셔 먹고 있는데, 전화를 건 엄마가 대뜸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슬픔 한 겹, 분노 한 겹, 억울함 한 겹 등등이 쌓여 대략 342겹의 답답함이 단단하게 겹쳐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을 당한 걸까? 이 세상 쫄보 챔피언급인 나는 엄마의 듣도 보도 못한 아련한 목소리에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는데!!
"아니, 오라는 영웅이 전화는 안 오고.."
아, 역시. 어머님 역시 그 이야기였군요. 엄마의 억울함이 고작 KBS 임영웅 콘서트에 당첨되지 못한 사연이라는 것이 내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엄마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장장 15분에 걸친 통화시간 동안 억울하다는 표현 20회 이상, 슬픔 18회 이상, 아쉬움 15회 이상을 내뱉고 나서야, 그래도 나중에 좋은 기회가 있겠지, 라는 나의 위로를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어린 시절 쉽게 울던 나를 어르고 달래던 엄마의 모습처럼, 나는 엄마를 달랬다.
전화를 끊고 쌀을 씻고 있는데 천장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쌀 씻을 때는 적어도 3번 이상 씻어야지! 하는 잔소리가 아니라, 영웅이를 못 봐서 억울해! 울부짖는 엄마의 탄식 말이다. 밥을 먹는 내내 엄마의 마음이 신경 쓰였다. 당연히 당첨될 줄 알고 공연장 근처에 사는 이모한테 하룻밤 재워달라고 해야 하나, 까지 생각했던 엄마에게는 아쉬움이 곱절로 크게 느껴졌을 터. 나는 어미 된 마음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고, 노래 부르던 그를 보고 2021년을 마무리하면 너무 행복했을 텐데.. 보고 싶은 인형극을 못 보게 되어서 엉엉 울던 나를 달래주던 엄마도 이 마음이었을까, 엄마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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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집이 주식과 빚 때문에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무려 6년 뒤)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는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우리 집 상황을 왜 이제야 말해주냐며 엄마에게 따져 물었던 적이 생각난다.
엄마는 그 길로 나를 애슐리에 데려갔다. 처음 가본 애슐리 뷔페였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테이블, 엄마는 허리를 숙여 조용히 말했다. "우리 집이 이렇게 저렇게 돼서 지금 이런 상황이야, 이렇게 되어버려서 미안하다. 엄마가." 엄마는 정말 무슨 생각으로 나를 애슐리에 데려와서, 크림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고 있는 나를 울리는 걸까. 하지만 무조건 슬픈 감정만은 들지 않았다. 이제 내게도 엄마의 어려운 상황을 털어놓아주는구나, 하는 고마움과 안도감이 들었달까. 하지만, 그 이후로도 엄마는 여전히 내게 많은 것을 숨겼다. 철부지 둘째 딸이라는 포지션 때문인지, 믿음직한 장녀가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쉽게 내게 약한 모습이나 부족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달라졌다. 언제부터냐고? 내가 결혼을 준비할 때까지도 잘 몰랐는데, 30년 살던 집을 떠나 독립을 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2020년, 엄마가 덕질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유튜브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 돈이 나가는 줄 알고 허공에서 방황하던 엄마의 손가락은, 유튜브 좋아요는 물론이고, 멜 X을 다운로드하여 스트리밍을 시작하고, 인스타를 다운로드하여 그의 일상을 지켜본다.
인터넷 세상과 점점 가까워지는 엄마를 볼 때면, 딸의 입장으로 여간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란 말이다. 거짓과 가십으로 넘실대는 유튜브가 요주의 인물이다. 왜 엄마들이 우리 아이가 뽀로로 같은 귀엽고 평화로운 만화만 보기를 바라는지, 그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엄마가 팩트 없이 조회수에만 안달 난 불순한 채널에 발을 담그지 않을까, 슬쩍슬쩍 엄마가 틀어놓은 유튜브 화면을 어깨너머 보곤 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아아 꼰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엄마의 마음인 것인가 싶기도 한다.
결혼을 한 후, 우리는 자주 통화를 했다.
하루는 쪼잔한 아빠 때문에 짜증 난다고 속풀이를 하더니, 다음날은 너희 아빠만 한 사람이 없다며 당혹스러운 감정 전개를 보여주기도 하고, 무엇이든 혼자의 힘으로 처리하려고 지고 있던 짐의 무게를 슬쩍 내려놓기도 하고, 그의 콘서트를 다녀온 날에는 엄마 먼저 천국에 다녀왔다는 표현으로 딸내미를 놀라게 하더니, 또 다른 날에는 세상 본 적 없는 최고의 텐션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까지.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은 새발의 피였던 것일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마의 텐션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퍼뜩 차려지고, 어쩌면 이게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에 눈에 힘을 팍! 주고 뜨게 된다. 흑백사진으로나 만났던 젊은 시절의 엄마가 선명한 칼라 옷을 입고 내 앞에서 움직인다.
엄마만 달라진 건 아니다. 엄마를 대하는 나의 모습도 달라졌으니까. 엄마가 무해하고 아름다운 것만 보았으면 좋겠고, 엄마가 그리 좋아하는 그가 언제나 승승장구했으면 좋겠고, 공연장 1열에 앉아 황홀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고, 아 그러니까 그냥 엄마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내 모습이 가끔은 낯설 만큼 따습다.
그러니까, 점점 엄마와 내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어간다는 말을 참 길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