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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단어, 된장녀

“아, 스타벅스는 된장녀만 간다는 거기요?”

by 프니

그날은 오늘처럼 더운 여름날이었다. 단짝친구의 남자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커피숍에 들어갔다. 커피를 시키고 앉아있는데, 친구의 남자 친구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보통 카페는 어디로 자주 다니세요?”
“원래는 스타벅스를 가긴 하는데, 오늘은 너무 사람이 많길래 여기 오자고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의 질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아, 스타벅스면 된장녀만 간다는 거기요?”


“네??”

자주 가는 카페가 스타벅스라는 이유로, 나는 한순간에 된장녀가 되어버렸다. 친구는 얼굴이 벌게져 남자 친구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사회는 많은 움직임이 생겼다. 명품을 휘두르고, 하루에 스타벅스 커피를 자주 사 먹는 여자를 혐오하는 그 단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고, 경계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이 사이에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페미니즘이 좋든, 싫든 어쨌든 우리의 의식과 삶은 많이 변화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그 더운 여름, 사당역에서 소개팅을 하기 전까지는.


무엇이 먹고 싶냐기에 한식이 먹고 싶다던 내 말을 들은 소개 남자는 파스타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리조토(나름 밥)를 시키고, 피자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엉뚱하게 파스타집에 들어와 피자를 먹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가 통한다 싶었던 나는 남자에게 곧장 카페를 가자고 했다. 소개남은 카페 어디를 갈지 내게 물었다. 나는 바로 옆 건물에 있던 스타벅스에 가자고 했다.

“스벅이요? 아 스타벅스, 거기 한창 된장녀가..”
“네?”

남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영 모르겠다는 듯, 신난 듯이 입을 나불댔다. 예전에는 그곳에 가면 다 된장녀라고 했었는데 요즘도 그런 말이 있냐며 오히려 내게 되물었고, 나는 요즘에도 된장녀라는 말을 하시는 분이 있다니 놀랍다고 했다.

남자는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 했지만, 나는 혼자 가겠노라고 했고 그 이후 서로 연락은 하지 않았다. 아쉬움 하나 없는 소개팅이었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더러웠다. 요즘 세상에 된장녀? 허참, 된장찌개나 먹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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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뿐인가. 김치녀라는 말도 있다. 대표적인 여혐 단어. 그 논리대로라면, 명품을 휘두르고 스타벅스 음료를 즐기는 남자도 된장남, 김치남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그 화살은 언제나 여자에게만 돌아가는 걸까.

오늘, 인터넷은 개그우먼 박나래 씨의 인스타그램으로 뜨거웠다. 코미디 빅리그 녹화 중인 듯한 박나래는 대머리 분장을 하고 머리 위에 똥 모형물을 올려놓고 눈썹은 이마 위에 그리고, 입 주변에는 커다란 수염을 한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그 아래 태그가 달렸다.


#된장녀#명품녀#루이뷔통#똥 중의 똥
심지어 똥 모형에는 명품, 루이뷔통의 그림을 그려놨다.

오늘 이걸 올렸다고? 2020년 6월에??? 믿을 수 없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보자마자 된장녀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그날의 감정, 기분들이 생생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혹자는 개그맨이 개그 하는 거 가지고, 왜 이렇게 심각한 척하냐.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냐 할 수 있지만,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이 변하고, 달라진 세상이라고 믿었던 삶 속에
또다시 똥 하나가 내 머리 위에 퉁 하고 투척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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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은 82년생 김지영 영화로 들썩였다.너도나도 김지영의 삶에 대해 떠들고, 심지어 90년생 김지훈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김지영과 김지훈의 이야기는 스크린에서 내려온 후에도 계속 되었다.


김지훈의 탈을 쓴 사람들은 죄책감 없이 여자들의 삶을 희화 하하며 우스꽝스러운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적어도 같은 여자라면, 이러한 희한한 희화하에 동조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모든 남자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대상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던 수상소감이 생각난다. 박나래 씨, 된장녀를 멈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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