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춥고 어두워서 좋은데요?

by 프니

큐! 암전! 암전! 급하게 큐사인을 받은 것처럼 겨울 하늘은 눈 깜짝할 사이에 빛을 막아버린다. 그럴 때면 나는 암전 된 극장 1열에 앉아있는 관객이 된다. 이제 곧 새로운 막이 시작된다는 기대에 가슴이 쿵쿵, 발을 동동 구르는 나는 어두운 판이 깔리면 자유로워지는, 야행성 인간! 그러니까, 어두워지기만 하면 나는 뭐라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은 힘을 얻는다.


어둠은 불안, 우울과 친해 보이지만, 내게는 희망처럼 느껴진다. 어두움이 깔렸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거니까!라고 하면, 아침형 인간인 남편은 어둠이 빠르게 시작되는 겨울밤 찬양론을 이해 못 한다며 고개를 젓는다.

@unplash_Sven Brandsma

귀가 떨어질 것 같은 추위를 온몸으로 맞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대충 말린 뒤 잠옷을 입고 온수 매트 위에 들어가 극세사 이불을 덮었을 때의 행복은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때는 마치,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다가 가장 평온하고 안정감 있는 미지근한 탕을 만난 기분이다. 온수 매트의 뜨뜻한 온기는 썰렁한 바람이 부는 겨울에 빛을 발한다. 따뜻한 물을 콸콸 쏟아내는 샤워기의 온기도 한기가 맴도는 겨울에 빛을 발한다. 얼굴이 벌게질 만큼 춥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편안함,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 따뜻한 집에 누워있음에 위안을 받다 보면 도무지 겨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밤만이 가져다주는 스산한 공기 속에서도 극세사 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한 분위기를 내뿜는 겨울밤. 분위기 천재, 겨울. 겨울밤은 너무 쓸쓸하다는 그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는다. 까만 도화지에 찍혀있는 가로등의 노란 점들 사이에 깔린 어둠을 헤치며 걷는다. 얼마 뒤면 떠오를 해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또다시 몰려올 내일의 어둠을 기대하며, 씩씩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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