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눈, 사람이니까

겨울만 되면 관대한 눈사람이 되고 만다.

by 프니

며칠 전, 추위를 뚫고 4호선에 몸을 실었다. 따뜻한 공기가 맴도는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생각하며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파드득 파드득 소리가 났다. 청각에 예민한 나는 바로 고개를 내렸다. 숏 패딩을 입은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패딩으로 두꺼워진 몸집을 축소시키며 의자 위에 엉덩이를 놓였더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자리에 앉아 편안해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마다 각각의 옷을 껴 입고 나온 사람들. 코트와 야구잠바를 입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두꺼운 패딩에 몸을 끼어넣고 둥글둥글한 인상을 풍겼다. 그 모습이 꼭 추위에 무장한 눈사람들 같이 귀여웠다. 서로의 패딩이 패딩을 스치며 바스락대는 소리, 스마트폰을 사용하느라 움직이는 팔이 패딩에 스치는 소리가 가득 찼지만, 그쯤이야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찐득한 몸을 맞대고 서있어야 하는 여름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니까.


그러고 보니, 겨울만 되면 나는 눈사람이 된다.

옆에서 누가 툭! 치면 금방 좌로 구르다가 우로 구를 것 같은 눈사람 말이다. 내복 위에 후드, 그 위에 패딩을 입고, 톡톡한 두꺼운 양말을 운동화에 비집어 넣는다. 손에는 스마트폰 터치가 되는 장갑을 끼고, 패딩과 목 사이에 벌어진 틈을 목도리로 채워주어야만 현관을 나설 수 있는 계절. 아아, 그런 피곤한 계절. 고작 집 앞 공원 몇 바퀴를 도려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간 롱 패딩을 퉁퉁 튕기며 걷다 보면 꼭 눈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 같다.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으려고 앉다가 롱 패딩이 바닥에 닿았다. 이렇게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몸에 달라붙어있는 것들을 다 내려두고 싶은 생각을 하다 보면, 코끝이 시린다. 얼른 일어나 더러워진 부분을 툭툭 쳐낸다.


이 추운 날에 운동하겠다고 나온 게 어디야, 공원 다섯 바퀴면 어때, 무거운 패딩을 입고 나왔는데! 수고한 스스로를 토닥여주면서 패딩을 퉁퉁 차며 앞으로 열심히 나아간다. 언젠가 녹아 없어질 눈처럼, 무거운 패딩을 벗게 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겨울만 되면 스스로에게 관대 해지는 눈사람은 그날, 공원 한 바퀴를 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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