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수속을 위해 걸어가다 보면 반가운 캐릭터들이 우리를 반긴다. 마리오다.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는 '환영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마리오가 그려져 있다. 마리오, 나루토, 드래곤볼, 포켓몬, 원피스는 도쿄올림픽 홍보에 사용될 정도로 이미 전 세계적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캐릭터들은 단순한 애니메이션 속 존재가 아닌, 일본의 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포켓몬은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뿐만 아니라 의류, 식품, 심지어 항공기 디자인에까지 사용되는 글로벌 브랜드다.
도쿄를 말할 때, 오타쿠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특히 오타쿠의 성지라고 하는 아키하바라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한 번을 가볼 만하다. 이 지역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코스프레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건물 외벽은 거대한 애니메이션 포스터로 뒤덮여 있다. 이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도쿄에서 가장 오타쿠성향이 강한 지역은 세 곳이다.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 나카노다. 각 지역은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아키하바라는 남성팬덤이 강한 지역으로 유명하고, 건물마다 피규어와 게임 관련 상품들로 가득 차 있다. 이케부쿠로는 여성팬덤이 강한 지역으로, BL(Boys' Love) 만화나 여성향 게임의 메카다. 나카노는 조금 다르다. 다소 거친 말로 표현하자면 오덕 중의 오덕인 씹덕은 아키하바라도 이케부쿠로도 아닌 나카노에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레어 아이템과 빈티지 상품의 보고로, 진정한 콜렉터들의 천국이다.
이 세 지역은 도쿄브랜드가 왜 다양한지를 알려주는 곳이며, 흥미롭게도 모두 주요 교통 요지다. 아키하바라는 JR야마노테선, 케이힌토호쿠선, 츄오-소부선이 만나는 역으로, 도쿄의 중심부와 직접 연결된다. 이케부쿠로는 도쿄 서쪽의 3대 도심 중 하나이자 서북부의 관문으로, 사이타마 방면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나카노는 도쿄 서쪽 끝으로, 도쿄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인 기치죠지로 가는 관문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각 지역의 오타쿠 문화가 발전하고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세 곳은 오타쿠문화를 이끄는 지역이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보자.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들을 브랜드로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나루토'나 '원피스'는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타쿠 문화에서는 일본인들이 브랜드를 접근하는 취향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러한 면모가 가장 잘 반영된 브랜드는 단연코 만다라케다.
만다라케(Mandarake)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중고 서적 및 만화 상점 체인 중 하나다. 만다라케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일본인의 성향과 브랜드를 보는 시각을 제공해 주는 곳이다. 그 기준은 바로 '리셀'이다. 만다라케를 크림이나 스탁스 같이 브랜드 중고상품을 사고파는 곳으로 접근해 보자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정판 피규어나 초판 만화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투자 상품이 되기도 한다. 1980년대 출시된 희귀 건담 프라모델이 수십만 엔에 거래되는 것이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리셀' 개념으로 보면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 나카노의 수많은 가게들은 단순한 피겨샵 혹은 애니메이션가게들이 아니다. 오히려 피겨나 프라모델을 매입하고, 이것들은 오타쿠들에게 공급하는 중개자들이다. 예를 들어, 아키하바라의 라디오회관에 있는 가게들은 각자 특색 있는 상품들을 선별해 판매한다. 이는 편집샵들이 어떤 브랜드를 매장에 가져놓는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리셀'의 개념에서 아키하바라의 라디오회관과 도버스트리트마켓은 별반 다를게 없다.
나카노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만다라케는 리셀 개념이 가장 발전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없이 비싼 장난감들도 수두룩하다. 만다라케의 각 점포들은 각기 다른 주제의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커다란 진열장에 매장만의 '컬렉션'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미술관의 전시실을 연상케 한다. 만다라케 나카노에서도 사람들이 몰리는 점포들은 따로 있다. 드래곤볼, 나루토, 원피스, 슬램덩크를 다루는 곳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다. 이는 이 작품들의 글로벌한 인기를 반영한다. 고가제품은 철도에 많은데, 예를 들어 정교한 디오라마 세트가 수십만 엔에 팔리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원화만을 취급하는 매장도 사람이 많은데,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대한 팬들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아키하바라는 '수집'의 성격이 강한 지역으로, 고가의 피규어나 빈티지 상품이 많다. 아키하바라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은 대부분 남성팬덤 중심이다. 피겨, 프라모델 등 및 캐릭터 수집에 굉장히 강세를 보인다. 아키하바라의 많은 가게들은 피겨나 프라모델을 매입하고 매각한다. 특히 라신방같이 아키하바라의 구석에 자리한 곳은 그들만의 독특한 컬렉션을 갖추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아이템을 리셀한다. 그렇기에 리셀의 개념으로 아키하바라를 보면, 아키하바라의 가게들은 단순한 피겨 상점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각 가게의 독자적인 경쟁력이 피겨나 프라모델 매입의 중심이다. 그 외에도 아키하바라역 앞에 위치한 라디오회관은 각 층마다 수많은 피규어와 프라모델을 판매한다. 이곳에서도 개인에게 공간을 대여해 주고 대신 물건을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업체들이 있다. 물론 메이드카페도 많다.
이케부쿠로는 여성중심팬덤과 캐릭터 유통이 모인 곳으로,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분위기에 더 집중한다. 이는 이케부쿠로의 가차폰, 뽑기, 카드게임 등의 상품 구성에서 잘 드러난다. 이케부쿠로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부분은 이케부쿠로에서 가장 큰 상업시설인 선샤인시티다. 선샤인시티의 모습은 도쿄의 일반적인 상업시설과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서 볼 층은 선샤인시티의 2,3층의 반다이남코크로스스토어다. 11월에 리뉴얼을 끝낸 남코 크로스보더스토어는 대체로 다양한 캐릭터 상품에 집중하는 게 많다. 그렇지만 캐릭터 상품의 비중은 아키하바라와는 다르다. 이케부쿠로가 여성팬덤이 강하다는 점은 이곳에서 알 수 있는데, 아키하바라와 다르게, 상품비중이 프라모델, 피겨보다는 엽서, 필기도구, 가방, 액세서리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 오히려 이 애니메이트 이케부쿠로 본점과 마찬가지로 아기자기한 상품이 많다.
결국, 중요한 건 어느 지역이 오타쿠문화가 강하다는 게 아니다. 도쿄는 이렇게 다양한 취향들을 수용하며, 이로 인해 브랜드들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패션 브랜드, 식품 브랜드 등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유니클로의 'UT' 라인에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티셔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컵라면 브랜드에서도 애니메이션과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자주 볼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다양한 취향의 브랜드들이 도쿄의 주요 교통지에 산재해 있다는 점은 도쿄의 문화적 다양성과 접근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 나카노 모두 주요 철도 노선이 지나는 곳에 위치해 있어, 팬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문화의 확산을 촉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