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야선 히로요역.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고소한 버터 향내가 코를 자극했다.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길수록 그 냄새는 더욱 강렬해졌다. 개찰구를 통과하자 버터 향이 온몸을 감쌌고, 동시에 또 다른 향이 코를 스쳤다. 무언가 버터 향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드는 향기였다.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그 향기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역옆에 작은 빵집이 있었기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빵집이 아니었다. 벽돌로 지은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고,건물 뒤편에는 '트러플 베이커리'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렇다. 도쿄에서 트러플 소금빵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트러플 베이커리 '히로요 매장이었다. 버터와 트러플의 고소하고 풍미 가득한 향내가 지하철에서부터 코를 자극했던 것이다.
쇼핑은 이제 재미없어졌다. 엄지손가락 몇 번을 누르면 다음날 새벽 집 앞으로 장바구니가 도착한다. 탄탄한 물류와 자본으로 무장한 플랫폼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온라인 쇼핑과 새벽배송은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동네마트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배송을 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무엇을 다 하던 시대가 되자, 동네생활은 재미없어졌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물건을 사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 음식을 맛보는 재미도 터치 몇 번에 사라졌다. 쇼핑은 이제 재미없어졌고,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재미도 덩달아 사라졌다.
삶 속에서 효율성은 늘어났지만, 삶 속에서 경험의 밀도는 줄어들었다. 편리함과 신속함을 얻은 대신, 우리는 일상에서 느끼던 소소한 즐거움과 다양한 체험을 잃어버렸다. 쇼핑의 편리함이 늘어난 만큼, 우리 삶의 색다른 경험은 줄어든 것이다.
트러플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회사는 유럽 전문 식재료를 판매하는 이커머스 브랜드인 '하이식재실'를 운영하고 있는 드레스테이블이다. 이 회사는 단순히 식재료 판매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해 있는 종합 식품 기업이다. 하이식재실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라쿠텐 쇼핑몰의 식품 부문에서 'Shop of the Year'를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식재료 전문점임을 인정받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과 2021년에는 매출이 각각 14억 엔, 20억 엔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해외 사업과 라이선스 관리 등 글로벌 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해 있다. 무엇보다 이 회사가 자랑하는 것은 최고 수준의 품질 관리다. 요리사들도 인정할 만큼 엄선된 식재료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드레스테이블을 만든 대표인 마루오카 테케시 대표는 대대로 이어진 식품가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식품에 둘러싸여 자랐다. 그의 친척, 가족, 친구들 대부분도 음식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음식은 먹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다는 사실과 맛있는 것들이 인생을 바꾸고 매일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들을 보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기쁨을 전하는 일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드레스테이블의 이념이 '이 사회에 재미있게 연결해 공헌하고 싶다'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은 트러플 베이커리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드레스테이블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전문 식재료를 매일 주방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고급 식재료를 부담 없이 맛볼 수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특히 맛있는 것을 더 맛있게 만드는 식재료가 있다면 먹는 일이 더 즐겁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지속 가능성이 있는 식재료를 선택하면?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안심하고 먹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런 식재료를 찾던 중 트러플을 발견했다. 트러플은 어른이라는 이미지가 강할 뿐만 아니라, 트러플의 풍성한 향이 아이들의 감각을 더 키워줄 수 있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트러플베이커리의 시작이었다.
트러플베이커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트러플을 손쉽게 동시에 부담 없이 동시에 트러플을 확실하게 즐길 수 있을지, 매일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평소 거의 관련이 없는 전문 식재료를 더 가까이 느끼는 방법을 비틀어서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한 건 빵이었다. 빵을 식재료로 접근하면 어떨까? 트러플베이커리의 시작은 트러플의 재정의에서부터 시작했다. 트러플이 비싼 건 사실이지만, 트러플이 모든 음식에 다 필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트러플 베이커리는 트러플을 일상의 좋은 식재료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자 새로운 방향이 나왔다. 트러플을 일상생활에 합치자, 트러플은 미식만을 위한 고급식재료가 아닌 음식을 표현하는 디테일로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트러플을 사용한 이유는 일단 트러플 자체가 맛이 없기 때문이었다. 트러플은 오로지 향으로만 즐기는 식재료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설적인 레스토랑 '엘불리'를 만든 페란 아드리아는 트러플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러플은 맛이 없어요. 향으로 즐기죠'. 이 말은 트러플, 푸아그라, 캐비어와 다르게, 트러플은 특별한 조리가 필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엘불리에서 트러플버섯을 가득 썰어 유리그릇 안에 향을 잔뜩 가둔 뒤 그대로 레스토랑 음식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캐비어와 푸아그라는 재료의 메인으로 많이 사용하지만 트러플은 아니다. 특유의 향으로 다른 재료들의 풍미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
트러플베이커리는 이 부분에 집중했다. 트러플은 빵맛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빵맛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러플의 본질은 향였기 때문에, 트러플은 스페인요리엔 빠에따에 쓰이는 샤프란같은 향신료와 다를 게 없었다.
드레스테이블은 이렇게 재정의된 트러플을 '트러플베이커리'라는 이름의 전면으로 내세웠으며, 빵 중에서 식재료를 듬뿍 사용하는 빵을 찾으면서 발견한 소금빵으로 만든 화이트 트러플 소금빵을 시그니처로 내세웠다. 그렇다고 트러플베이커리 매장에서는 빵과 트러플 냄새가 진동하지만 모든 빵에 트러플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트러플소금빵, 트러플소금빵을 이용한 러스크 등, 향기 강한 트러플에 어울리는 빵들에 한정해서 트러플을 사용하기로 했다.
트러플베이커리의 빵은 일반적인 '주식'으로서의 빵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들은 밀가루와 같은 기본 식재료에서 시작하여 빵의 본질에 천착한다. 인스타그램 등 브랜드 비주얼 메시지를 통해서도 '맛있는 빵' 그 자체보다는 '좋은 식재료로 만든 빵'에 방점을 둔다.
무엇보다 트러플베이커리의 모든 기획은 언제나 식자재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도라야키와 모나카 전문점 긴자소라야와의 협업 제품인 '앙버터샌드'는 빵 자체가 아닌, 팥소를 빵의 주요 식재료로 활용했다. 이처럼 그들은 식재료의 가치와 활용 방안을 탐구하며 기존의 관념을 넘어선다. 이러한 고민은 다양한 빵과 에코백 등의 굿즈로 이어지며, 자연스레 브랜드 철학이 제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특히 트러플이라는 고급 식재료를 일상적이고 캐주얼한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미식 문화를 대중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식재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통해 빵과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식재료는 더 이상 빵의 단순 재료가 아닌, 우리 삶의 디테일이자 정수(精髓)로 자리매김한다.
트러플베이커리는 단순히 빵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그들은 음식을 매개로 사물과 사람, 삶 전반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제시한다. 소비를 넘어 보다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트러플베이커리가 지향하는 바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단순한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든다. 하지만 트러플베이커리는 이러한 소비 문화에 대한 기존 관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들은 식재료, 음식, 사람 간의 관계를 재조명하며 궁극적으로 빵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탐구한다.
이 곳에서 '트러플'은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음식과 사물, 사람 간의 유기적 관계를 대변한다. 트러플베이커리는 빵 그 자체보다는 이러한 관계성에 주목하며, 우리가 소비하는 대상과 맺는 연결고리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실제로 그들의 대표 메뉴인 트러플 소금빵은 값비싼 식재료인 트러플을 사용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으로 프리미엄 가치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코스파(Cost Performance)'라는 일본의 트렌드에도 부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코스트 퍼포먼스(Cost Performance)를 뜻하는 '코스파'는 지금 일본이 마주하는 소비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제품의 가치와 가격 간의 균형을 중시한다. 이를 토대로 구매를 결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트러플베이커리의 전략은 시대흐름에 부합한다. 소금빵을 먹는데 트러플풍미도 느낄 수 있다면? 그 소금빵은 코스파가 아주 좋다고 할 수 있다.
트러플베이커리는 고가식재료인 트러플을 활용하되,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코스파를 실현했다. 하지만 트러플베이커리가 트러플을 브랜딩 요소로 활용한 더 큰 이유는 트러플을 '미식'의 영역에서 벗어나 훌륭한 '식재료'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트러플은 고급 식재료가 아니라, 풍부한 맛과 향을 선사하는 즐거움을 전하는 식재료일 뿐이다. 이를 통해 트러플베이커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미각과 취향을 더욱 발견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러한 관점은 트러플베이커리를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첫째, 트러플베이커리는 고급 식재료를 대중화하여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둘째, 식재료 본연의 가치에 주목함으로써 삶의 작은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결과적으로 트러플베이커리의 브랜딩 전략은 미식을 넘어 일상 속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다.
트러플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드레스테이블은 원래 유럽 전문 식재료 업체였기에, 식재료에 대한 오랜 노하우와 철학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트러플베이커리 역시 식재료 본연의 가치에 주목하는 빵집이라는 정체성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그들은 신제품을 소개할 때 '맛'보다는 '왜 그 식재료를 사용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2023년 출시작인 '앙버터샌드'와 '덜스 버터 소금빵'이다.
'덜스 버터 소금빵'은 프랑스 브리타니 해안에서 자생하는 해초 '덜스'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트러플베이커리는 덜스 버터의 맛에 매료되었지만, 높은 가격과 수입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현지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유기농 덜스를 직접 구했다. 이를 일본으로 가져와 다시마를 더해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리고, 홋카이도산 버터를 활용해 덜스 버터를 만들었다. 빵 반죽 역시 탕종, 쌀가루, 홋카이도 호밀가루 등을 섞어 덜스의 향을 극대화했다.
'앙버터샌드'는 긴자의 도라야키와 모나카 맛집인 긴자소라야와의 협업 제품이다. 두 브랜드는 '딱딱한 빵에는 어떤 팥앙금이 가장 잘 어울릴까?'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팥앙금을 테스트했다. 그들은 맛있는 빵에 집중하지 않았다. 맛있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는 식재료를 골라, 맛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빵을 만들었다. 빵이 만들 경험을 설계한 뒤 빵을 만든 셈이다.
트러플베이커리는 맛있는 빵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식재료 하나하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최적의 비율로 조합하여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사한다. 바로 이 점이 트러플베이커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브랜딩 전략인 셈이다.
트러플베이커리의 브랜딩 전략은 빵 그 자체를 넘어선다. 그들은 빵을 단순한 식품이 아닌, 다양한 식재료가 어우러진 하모니로 인식한다. 이에 따라 빵 속 식재료 하나하나의 가치를 발굴하고, 최적의 조합을 찾는데 집중한다. 이 조합이 트러플베이커리만의 고유한 경험을 만든다. 이러한 철학은 지속적인 콜라보레이션 제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본 편의점 로손산하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세이조이시와 협업한 '화이트 트러플 버터'나 디저트 브랜드 피에르에르메와 함께 선보인 발렌타인데이 기념 소금빵 등이 그 예시다. 트러플베이커리는 파트너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새로운 식재료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들은 빵을 만들기에 앞서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한다. 앞서 언급한 덜스 버터 소금빵이나 앙버터샌드 등의 작품은 모두 이러한 사고의 결과물이다. 트러플베이커리는 고객에게 맛있는 빵 그 이상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트러플베이커리는 단순한 베이커리 매장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따뜻하면서도 모던한 매장 분위기와 식재료 중심 제품 철학은 이러한 브랜딩의 핵심 축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빵을 대할 때의 고정관념을 깨고, 일상 속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