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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Oct 15. 2024

히가시아맨마루노우치, 분위기로 확장하는 취향.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곳이 위치한 도쿄 마루노우치 지구를 먼저 이해해야한다. JR도쿄역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마루노우치와 야에스다. 야에스는 버스터미널과 신칸센 터미널이 있는 교통요지이며, 오피스 지구인 니혼바시와 교바시로 이어진다. 이처럼 야에스가 교통과 비즈니스의 허브라면, 마루노우치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중심의 중심'이라는 뜻을 가진 마루노우치 지구는 고쿄를 비롯해 일본 대기업, 금융기관, 정부기관이 모여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미쓰비시, 도쿄 증권거래소, 일본은행 등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빌딩으로 가득한 마루노우치. 이 지역은 결코 사람을 보듬어주는 지역이 아니다. 오히려 '중심의 중심'이라는 마루노우치의 의미처럼 사람을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누르는' 느낌이 강하다. 깔끔하면서도 하늘을 향하는 마루노우치 빌딩가는 더더욱 그렇다. 수십 층 높이의 빌딩들이 늘어선 모습은 권력과 성공의 상징이면서도, 개인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기에 고층 빌딩의 1층에 자리한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는 빌딩가에 자리 잡은 다실에 가깝다. 이곳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중심부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 다실은 다른 사람과 시간을 나누는 전통적인 다실과는 다르다. 나 홀로 내 시간을 즐기면서 내 취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차를 마시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현대적 의미의 다실인 것이다. 이는 마루노우치의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내면을 찾는 작은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분위기를 통해 취향의 발견을 유도하는 오가타신이치로의 디자인


오가타 신이치로가 추구하는 미학은 그의 말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옛 일본의 아름다움을 현시대에 표현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일본 전통미는 과거로부터 구축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저의 디자인 철학은 형태 구축이 아닙니다. 어떠한 형태의 분위기를 만드는 일입니다. 분위기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일이죠. 이것이 제가 만드는 공간 철학입니다."

오가타 신이치로가 공간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무엇보다도 분위기는 개개인이 공간을 경험하는 정서를 만든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색, 소재, 도구, 공예, 공간, 차(tea), 음식을 먹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생활을 위한 방법 모두 균형감이 있게 다룬다. 예를 들어, 그가 디자인한 공간에서는 전통 일본 도자기와 현대적인 유리 제품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자연 소재인 나무와 현대적인 금속 재질이 균형을 이룬다. 레스토랑 안의 요리, 크고 작은 모든 식기들. 이 모든 세세한 디테일은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로 인해 분위기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만든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는 과자점이면서도 커뮤니티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과자를 사먹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경험하게 만든다. 더불어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에서는 긴장감,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분위기, 눈에 보이면서도 만질수록 느껴지는 일본 디테일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통 일본 건축의 간결함과 현대적 디자인의 세련됨이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메뉴와 장식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그는 '삶'을 누리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미식을 위한 디자인?'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관점을 제시하고, 그 관점에 퍼지기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에서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단순한 섭취를 넘어 공간, 도구, 분위기와 어우러져 하나의 총체적인 경험이 된다. 그렇기에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는 이 같은 그의 철학이 응집된 곳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일본의 전통미와 현대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편안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집중하는 히가시야 맨 마루노우치.

앞서 말한대로 오가타 신이치로는 공간을 만들 때 언제나 '분위기'에 집중한다. 그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 자체가 브랜드 철학을 '분위기'로 풀어내도록 한다. 예를 들어, 그가 디자인한 이솝 매장에서는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장식 대신, 심플한 선과 자연 소재를 활용해 브랜드의 본질을 표현했다. 벽면의 거친 질감, 천연 목재의 따뜻함, 그리고 미니멀한 진열대가 조화를 이루며 이솝의 자연주의 철학을 공간으로 구현했다. 이솝이 그에게 디자인에 대한 전권을 주면서 매장디자인을 맡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일본 전통의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 구성과 빛의 활용을 통해 '일본미'가 가득한 분위기를 가진 공간을 만든다. 예를 들어, 전통 일본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격자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공간을 구획하고, 이를 통해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패턴으로 일본적 정서를 표현한다.

오가타 신이치로가 만든 공간들의 특징은 

'빛을 조절해 그림자를 겹겹이 쌓아 '고요함'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림자가 연출하는 다양한 표정. 오가타 신이치로가 만든 모든 공간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중심이다. 이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찬'에서 언급된 일본의 미학과 맥을 같이 한다. 오가타 신이치로는 '일본인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어두움, 그림자에서 느끼는 잔잔한 어두움에 있다고 본다. 그림자를 중시하기 때문에 당연히 빛도 중시한다. 빛에 따라 그림자의 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에서는 천장에 설치된 간접 조명이 벽면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며 은은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또한, 창가에 설치된 얇은 블라인드는 외부의 자연광을 여과하여 실내에 부드러운 빛의 층을 만든다. 이러한 빛과 그림자의 조화는 하루 동안 변화하는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아침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저녁의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것이다.


그는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 안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을 겹겹이 쌓아서 분위기를 만든다. 아늑한 조명이 연출하는 불빛은 빌딩가인 마루노우치의 경직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 시작은 노렌이다. 흰색 노렌이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이 노렌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를 구분 짓는 동시에 연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바람에 살랑이는 노렌의 움직임은 도시의 딱딱한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고, 내부의 고요함을 암시한다.

노렌을 거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앞의 노렌이 잔물결을 일으켜서 매장안에 사뿐한 그림자를 만들고, 높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아늑한 불빛이 우리를 편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빛과 그림자의 조화는 고요하면서도 동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매장 내부의 고요함과 외부 도시의 활기가 노렌을 경계로 만나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곳의 공간색은 천장의 아이보리, 화과자 구역의 맑은 갈색, 차 진열장의 진한 갈색으로 나눠진다. 이러한 색채의 구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기능과 분위기를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아이보리 색상의 천장은 공간에 밝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따뜻함을 유지한다. 화과자 구역의 맑은 갈색은 제품의 색감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차 진열장의 진한 갈색은 차의 깊이 있는 맛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 공간에 중후함을 더한다.

사보의 검은색은 빛과 그림자로 인해 숯같이 보인다. 어느 곳에 가도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세밀함이 아늑하면서 고요한 분위기를 만든다. 겹겹이 비치는 그림자들이 만드는 그림자들이 분위기를 종종 몽환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오가타의 의도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사보 위에 놓인 화과자의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워져 마치 수묵화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화과자 진열장은 정갈하다. 전형적인 일본미를 분위기로 느낄 수 있다. 차분하고 정돈된 미니멀한 히가시야 패키징 디자인은 '일본미'를 '연출'하기보다는 간결한 상품 진열이라고 느껴진다. 이 패키징은 '일본'만이 가진 '고요함', 그 고요함을 연출하는 오브제에 가깝다. 화과자의 포장은 단순한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 계절감을 표현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제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봄에는 벚꽃 모티프를, 가을에는 단풍 잎 모양을 은은하게 표현하는 식이다.

고요하게 연출된 분위기 덕분에 상품진열이 다소 빽빽함에도 눈에 잘 들어온다. 매장 한쪽에 진열된 화과자 샘플은 고요한 매장에 활력을 넣는다. 계절마다 바뀌는 화과자의 색감과 모양이 공간에 미묘한 변화를 주는 것이다. 화과자 진열장 반대에 있는 차 진열장은 진한 갈색, 화과자 진열장은 밝은 갈색이다. 이 덕분에 진한 갈색과 밝은 갈색 간 강한 대비가 생긴다. 이러한 색채의 대비는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고, 각 제품의 특성을 강조한다.


화과자 진열장 앞에서 차 진열장을 바라보면 공간이 극적으로 변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시선이 이동하면서 마치 숲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천장에서 떨어지는 조명은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 안에 아늑함을 만든다. 창가에 앉아있으면 외부의 빌딩 숲과 내부의 고요함이 대비를 이루며, 도시 속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준다. 이처럼 오가타는 빛, 그림자, 색채, 재료의 세심한 조화를 통해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선 감성적 경험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공간에서는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 청각, 후각까지 모든 감각이 어우러져 완성된 경험을 제공한다. 차를 마시며 느끼는 향기, 화과자를 맛보는 순간의 즐거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는 공간의 분위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만의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림자를 부드럽게 만지는 소재:나무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는 '나무'다. 공간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분위기를 중시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은 부드러워야 한다. 당연히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을 부드럽게 만드는 소재인 나무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카운터와 테이블, 의자, 그리고 벽면 일부에 사용된 나무는 공간에 따뜻함과 편안함을 더한다. 가령 철에 비친 그림자는 차갑다. 반면에 나무에 비친 그림자는 아늑하다. 철보다 나무가 따뜻한 건축소재이기 때문이다.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의 창가 좌석에서 이를 잘 느낄 수 있다. 나무 프레임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만드는 그림자는 부드럽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는 일본 차문화를 다루는 브랜드이기에, 나무를 빠뜨릴 수가 없다. 또한 차를 우리는 데 사용되는 도구도 대부분 나무다. 차를 끓이는데 사용하는 주전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무다. 예를 들어, 차 숟가락, 차 통, 차 받침 등이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는 '차'와 '과자'를 취급하는 곳이기에 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는 일본 전통 다도 문화에서 나무 도구의 중요성을 반영한 것이다.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는 나무 색도 밝은 갈색에서 진한 갈색까지 골고루 사용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차에 사용하는 다기, 도구, 인테리어까지 사용한 나무들은 모두 '같은' 결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차 도구에 사용된 나무의 결이 벽면 장식이나 가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어, 공간 전체에 통일감을 준다. 이는 디테일에 대한 오가타 신이치로의 철저한 고집을 보여준다.


또한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에 사용된 모든 조명과 기구도 오가타 신이치로가 전부 직접 디자인한 것들이다. 천장의 펜던트 조명부터 테이블 위의 작은 스탠드까지, 모든 요소가 나무의 따뜻함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심하게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총체적인 접근은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게 한다.


‘분위기’을 연결시키는 오가타신이치로의 브랜드들.


수많은 여행객과 사람들이 오고 가는 도쿄. 그 안에서도 마루노우치는 유독 차분하다. 오가타 신이치로는 이 같은 차분함을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에서 '고요함'이라는 자신이 만드는 분위기로 잘 엮어냈다. 예를 들어, 매장 입구의 노렌(일본 전통 천막)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부의 고요함을 암시한다. 그 엮어내는 도구를 하는 역할도 그가 만든 브랜드들이다.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에서 모든 가구, 집기, 오브제, 인테리어는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나무로 만든 차 도구들은 단순히 기능적인 면뿐만 아니라 그 질감과 색감으로 공간에 따뜻함을 더한다. 오가타 신이치로가 만든 브랜드들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고요함'이다. 각 브랜드들은 같은 분위기를 공유하면서 공간 안에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가 직접 만든 공간에서 그림자는 언제나 공간톤과 분위기를 만든다. 창가에 설치된 얇은 블라인드는 자연광을 여과해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정갈하게 일렬로 서있는 상자, 기구들은 보는 이들에게 차분한 인상을 준다. 이는 일본 전통 건축의 '마(間)'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우리는 제일 고요하지 않은가? 우리가 집에 그리 신경을 쓰는 이유도 단순한 휴식을 떠나서 자신만의 고요함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를 통해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는 이러한 일상의 고요함을 공공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에서 사용하는 차와 판매되는 차는 SABOE에서 나온 차다. 'SABO'는 매우 인상적인 브랜드다. 'SABO'에서 그는 일본 각지에서 엄선한 차를 6가지 종류와 4가지 맛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예를 들어, 우지의 감미로운 녹차부터 큐슈의 진한 홍차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공한다. 사보에서는 이를 반영해 단일 농장, 각 지방에서 전통방식을 발전시킨 단일품종의 '싱글 오리진 녹차'를 소개한다.

'SABO'는 일본 각지에 남은 차와 전통을 다음 세대로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다. 일본의 아름다움은 예술품이 아니라, 일본인의 토양에서 나온다는 걸 전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차 생산자들과의 직접적인 협력을 통해 지역의 특색을 살린 차를 개발하고 소개한다. 그렇기에 'SABO'도 히가시야마에서 시작한 오가타 신이치로가 추구하는 철학의 연장선이다.

또한 이곳에서 사용하는 집기는 S에서 만든 것들이다. 차 거름망부터 찻잔까지, 모든 요소가 'SABO'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오가타 신이치로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브랜드 제품과 그것을 집약한 공간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 분위기는 현대적으로 해석한 일본미다. 전통적인 요소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을 창출해낸다.


그림자가 만들어가는 아름다움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의 사보를 고요하게 만드는 핵심은 그림자다. 이곳은 그림자로 시작해 그림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입구에서부터 은은한 그림자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매장 곳곳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공간에 깊이감을 더한다. 특히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의 유리창에 설치된 검은 망사 직물로 만든 얇은 스크린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마루노우치 지역 풍경과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를 분리한다. 게다가 빌딩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빛은 창가를 지나 검은 천 스크린을 다시 지나며 처음보다 흐릿해진다. 이는 마치 일본 전통 가옥의 '쇼지'(障子, 종이문)가 하는 역할과 유사하다.


이는 예로부터 밖과 안의 구분을 하지 않았던 일본인의 공간감도 나타낸다. 동시에 건물 내부와 외부 유리창을 막는 벽 역할도 겸한다. 이러한 설계는 일본 전통 건축의 '시키이'(敷居, 문지방)처럼 내외부를 구분하면서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사보에 있는 검은 천은 햇빛을 통해 아늑한 그림자를 만들고 그 그림자는 공간에 편안함을 더한다. 흐릿해진 빛은 사보에서 차를 마시는 나와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 매장에 놓인 제품을 모두 희미하게 비친다. 이는 마치 일본 전통 다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그 빛 속에서 모든 것은 갈색, 검은색으로 변한다. 이렇게 의도된 대비는 히가시야의 물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화과자의 섬세한 색감과 형태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더욱 돋보이게 된다. 이는 희미한 빛과 어둠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일본미'를 형상화한 것이다.

하지만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가 빌딩 1층에 있다보니 자연광만으로 공간에 빛을 채우는 건 어렵다. 이렇게 부족한 부분을 조명을 사용해 보충한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조명도 이 때문이다. 이 조명들은 전통 등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듯한 디자인으로, 공간에 따뜻함을 더한다. 이 빛은 히가시야의 모든 제품을 은은하게 비춘다. 희미한 빛과 어둠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일본 칠기를 히가시야 화과자로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계절 화과자의 섬세한 색감과 형태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마치 작은 예술 작품처럼 빛난다. 이는 일본의 '와비사비'(侘び寂び) 미학을 현대적 공간에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과자패키징.

히가시야는 모나카에서 비롯한 오랜 시간 변화가 없던 '일본 전통과자'를 현대적인 형태로 재해석했다. 이는 과자들의 형태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네모난 모나카, 바크초콜렛을 닮은 카린토 등이 그 예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원형이던 모나카를 정사각형으로 만들어 현대적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변모시켰다. 이는 단순한 형태 변화를 넘어, 도시 경관과 어우러지는 새로운 미학을 창조한 것이다.


오가타 신이치로는 오랜 기간 동안 이어온 맛은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에 맞도록 디자인을 변경해 '과자'를 새로운 관점으로 만든 셈이다. 형태를 바꾸어 일본과자의 경험을 현대에 맞추어 변주한 셈이다. 가령, 전통 화과자의 계절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표현을 추상화했다. 봄의 벚꽃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연분홍색 그라데이션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로써 전통의 맛과 현대의 감각이 공존하는 새로운 경험을 창출했다.

양갱을 먹기 좋게 리디자인한 토라야.

물론 이러한 접근을 오가타 신이치로만이 '유일하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토라야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 토라야도 양갱을 현대인의 식습관에 맞게 패키징을 통해 보다 더 현대적으로 만들었다. 토라야는 전통 양갱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한 입 크기로 잘라 개별 포장한 '미니 양갱' 시리즈를 출시했다. 이는 바쁜 현대인의 생활 리듬에 맞춘 혁신이었다.


토라야는 양갱을 보다 먹기 편하게 포장했다. 토라야는 양갱 포장을 조금씩 손쉽게 찢어 먹을 수 있게 디자인했다. 구체적으로, 포장지에 미세한 절취선을 넣어 손쉽게 개봉할 수 있게 했고, 한 번에 먹기 적당한 크기로 나누어 포장했다. 이는 전통 과자를 현대의 편의성과 결합시킨 좋은 예다.


과자는 일본에서 오마야게로도 팔린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히가시야의 시도는 더욱 의미가 있다. 오마야게 문화에서 과자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이다. 히가시야는 이점을 고려해, 과자 자체뿐만 아니라 포장에도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도쿄의 마루노우치를 상징하는 모티프를 포장에 은은하게 넣어, 지역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표현했다.


히가시야의 시도는 리디자인이다. 기존의 익숙한 디자인을 분해해 '점진적'으로 개선한 결과물이다. 이는 전통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요소를 가미하는 방식이다. 전통 화과자의 재료인 팥, 쌀가루 등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그 배합비를 조절하고 새로운 식감을 더해 현대인의 입맛에 맞췄다. 이러한 점진적 개선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다실의 츠크바이를 연상시키는 오브제.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 사보는 히가시야 긴자와 다르게 누군가의 방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공간 구성과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낮은 천장과 은은한 조명, 그리고 개인적인 공간을 연상시키는 가구 배치가 이러한 느낌을 준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사보에 들어가면 물이 떨어지는 오브제를 볼 수 있다. 이는 '정결함'을 상징한다. 이 오브제에서 떨어지는 물과 흔들림 없는 파동은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 안에 고요함을 만든다. 마치 작은 폭포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처럼, 이 오브제는 도시의 소음을 차단하고 방문객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동시에 츠크바이를 대신한다.


일본 다도에서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물이 담긴 나무통으로 씻는다. 다실에 들어가기 전 마음을 정돈하는 의식이자 일본 문화 중 하나다. 이걸 츠크바이 [혹은 츠쿠바이]라고 한다. 이 의식은 단순히 손을 씻는 것을 넘어서, 일상에서 벗어나 다도의 세계로 들어가는 정신적 준비 과정이다.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의 물 오브제는 이러한 전통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츠크바이' [츠쿠바이]는 교토에서 도쿄로 거처를 옮긴 일본 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한다. 마루노우치에는 고쿄와 일왕이 거처하는 궁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사실을 넘어, 일본의 근대화와 전통의 공존을 상징한다. 마루노우치라는 현대적 비즈니스 중심지에 위치한 히가시야맨이 전통 다도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다른 지역에 있다면 이 오브제는 그저 츠크바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마루노우치에 있음으로써, '일본역사'의 은유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이 오브제는 마루노우치의 현대적 고층 빌딩 사이에서 일본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이 오브제는 오가타 신이치로가 해석하는 현대적인 '일본미'를 전한다. 전통적인 나무 통 대신 현대적 재료와 디자인을 사용하면서도,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시각적 효과를 통해 전통적인 츠크바이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사보에 앉으면 따뜻한 물수건을 주며 손을 씻기를 권하는데, '츠크바이'를 접객 서비스로 재해석한 셈이다. 이는 전통적인 다도 의식을 현대적 카페 문화에 맞게 변용한 것으로, 고객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세심한 서비스는 히가시야맨 마루노우치가 단순한 카페가 아닌, 일본 문화의 현대적 해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음식은 모든 가능성의 밑바탕.


라이프스타일을 해석하면 생활양식이다. 생활양식을 구성하는 요소는 의식주다. 여기서 '식'이 바로 음식이다. 음식은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에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식습관은 그의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일상 리듬, 사회적 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좋은 음식이 있으면? 좋은 그릇이 필dygkek. 좋은 그릇이 필요하면? 그걸 놓을 좋은 가구가 필요하다 좋은 가구를 구비하면 그걸 놓을 좋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죠. 이는 마치 도미노 효과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가령, 정갈한 일식을 즐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미니멀한 디자인의 식기와 가구, 그리고 차분한 분위기의 공간을 선호하게 될 수 있다/ 음식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요소들을 연결하는 순간 나의 취향이 담긴 '의식주'가 모두 하나의 결을 이룬다.

동시에 그 결은 '의식주도', '의식주락', '의식주정' 같은 라이프스타일 철학으로 발전하게 한다. 예를 들어, 건강식을 중시하는 사람의 경우 '의식주도'라는 개념 아래 운동과 식단,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주거 환경을 함께 고려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지금 시대에 맞는 가치가 '의식주'제안에 반영됩니다. 최근 친환경,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가치관이 식재료 선택부터 주거 공간 설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사실 '음식'은 사실 라이프스타일, 취향의 기저에 위치하는 셈이다.


음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식재료가 필요하다. 그 식재료는 우리가 살아가는 토양에서 만들어진다. 식재료가 나오는 토양에는 그곳의 날씨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중해 연안의 올리브 오일이나 일본의 와사비는 그 지역의 기후와 지리적 특성이 만들어낸 독특한 산물이다. 또한 그 토양에서 식재료를 가꾸는 사람들의 삶도 닮기 마련이다. 

같은 식재료라도 서울, 도쿄, 뉴욕, 프로방스, 뮌헨 등 모두 다르게 음식을 만든다. 해외를 볼 필요도 없다. 흑백요리사만해도, 이것을 충분히 발견할수 있다. 나폴리 맛피아님은 편의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들로 밤 티라미수를 만들었다. 에드워드 리 쉐프는 미국에서 자신이 하던 요리를 최대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뿌리인 한국. 한국 식재료에 집중했다. 흑백요리사에서 모든 이들은 자신의 삶과 식재료와 관련된 요리를 다들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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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식재료는 모든 취향의 시작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식재료를 선호하고, 어떤 방식으로 요리하며, 어떤 환경에서 음식을 즐기는지가 결국 우리의 전반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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