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르 라종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
태풍 제비가 일본 간사이 지방을 할퀴고 있었다.
간사이공항은 폐쇄되고 인명사고도 발생했다.
제비의 바람은 크고 날쌔고 거칠었다.
같은 시각 다이칸야마에 있던 나도 제비가 몰고 온 바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놀라움이 사라지기도 전에 직원이 와서 음료 주문을 물었다.
와인을 주문했다.
지금도 맛은 기억아 나는데 와인 이름이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야콥....으로 시작하는 와인이고 포도종은 피노 누아였다.
와인을 주문하고 바람소리가 궁금해 잠시 나갔다.
거센 바람과 나무가 쓸리는 소리는 간사이 지방에 불고 있는
바람이 몇 배나 더 강할지 가늠케 했다.
몇 분간 바람소리를 듣다가 라운지로 돌아왔다.
와인은 이미 잔에 담겨서 나와있었다. 한 모금 마셨다.
썁쌀한 느낌과 풍부한 포도만의 향과 시트러스 내음이 무척 달콤했다.
씁쓸한 맛이 지나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단맛.
포도를 들고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여인이 떠올랐다.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도쿄 모노레일을 기다리면서 맥주와 하이볼을
친구와 마셨다. 호기심에 산 산토리 하이볼을 2모금을 겨우 먹을 동안 친구는 맥주 3캔 마셨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자까야에서 500CC 맥주를 삼분의 일 정도 마셨을 무렵
친구는 이미 2잔째 마시고 있었다. 친구는 나를 그저 신기하고 재밌게 보았다.
"와 형 진짜 신기하다! " 녀석이 말했다. 웃음이 나왔다.
도쿄에 동행한 친구는 맥주를 무척 사랑한다. 도쿄 여정에서 내가 못 마시고 남긴 맥주를 모조리 마셨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도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맥주를 다 마셨다.
내 맥주를 가져가면서 슬쩍 웃는 녀석의 미소는 잊히지가 않는다.
그 덕에 나는 다양한 맥주를 맛보았고 친구는 맥주를 더 먹을 수 있었다.
에비스 맥주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든 맥주 메뉴를 다 주문했다.
난 내가 마실 수 있는 정도까지 맛만 보고 나머지는 친구가 마셨다.
다이칸야마에서 와인잔을 보며 친구의 얼굴을 보는데 녀석과 맥주가 더 생각났다.
참으로 신기했다. 어쩌면 맥주는 술이지만 그 속성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요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참으로 웃기다. 와인을 보고 맥주를 생각하다니...
잔에 담긴 와인은 맥주보다 도수는 높았지만 양이 많지 않아서 마실만 했다.
나는 술에 약해서 금방 취기가 올라왔지만 와인이 전하고자 하는
하는 맛과 향의 스펙트럼을 느끼기는 충분했다.
난 와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와인에 대한 용어가 이제야 조금 익숙한 수준이다.
수많은 와인을 설명하는 용어를 보면서 다양한 와인에 놀랐다.
와인 품종마다 다른 잔이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디
켄터를 이용해서 와인맛을 열어주는 사실도 신기했다.
자신이 일구는 땅에서 나온 포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농부들과
와이너리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와인과 음식 간의 마리아주까지 알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와인을 알아갈수록 와인은 문화, 삶, 예술, 인내였다.
"와인을 위한 에세이"의 저자 제라르 마종은 프랑스 요리계의 거장인
알랑 듀카스와 20년 넘게 호흡을 맞춘 소믈리에다.
그는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출신이며 포도와 와인에 관해서라면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지식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와인에 대한 지식보다는
와인에 대하는 태도와 삶을 더 비중 있게 서술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와인과 함께한 삶에 대한 고백이 진솔하면서
따뜻한 단어로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냈다.
와인에 대해 머리가 아닌 마음과 경험에서 기반한 내용을 읽으면서
오히려 와인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서 피어난다.
표지는 멀리서 보면 블루보틀 책으로 착각하기 쉽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책 내용은 블루보틀 커피만큼 깊고 풍부하며 신선하며 상큼하다.
와인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의 글은 무엇보다 진솔하고 친절하다.
와인을 알지 못하는 이도 이 글을 읽는 순간 와인을 사러 와인가게로 향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수사를 달 필요가 없을 만큼 간결하고 깔끔하다.
머리말 일부를 적으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와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와인에 대해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일말의 호기심이나 정보는
배제된 채 기계적인 소비만 남았다.
소믈리에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지식을 토대로 책을 써보 수 있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 잭에서는 와인의 상표를 언급하며
어떤 와인을 사라는 식의 추천은 하지 않는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와인에 대해
더 깊은 지식과 취향을 갖게 되고,
또 발전시켜 나가게 되길 바랄 뿐이다."
-제라드 마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