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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Nov 07. 2017

'제안'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다이칸야마 티 사이트(4)-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어머니 방에 갔다.

때 마침 어머니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계셨다.

나는 유심히 파운데이션 색을 보았다.

파운데이션 색을 보는 순간 어머니에게 새로운 립스틱 색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 사소하지만 60이 넘은 어머니한테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도전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향했도 가지고 있던 립스틱 하나를 드렸다.

립스틱을 받은 어머니는 너무나 기뻐하신다.

남자들만 키우신 어머니에게 립스틱은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물건이다.
어머니는 태어나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색이라고 하시면서 립스틱을 좋아하신다.

며칠이 지나서 어머니는 내가 드린 립스틱을 바르셨다.

한 번도 바르지 않은 새로운 색이라면서

어머니는 낯설어하시지만 아이같이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항상 립스틱을 색이 옅게 나오게 바르신다.

어머니의 립스틱을 고를 때는 항상 옅게 발라도

발색이 좋은 걸로 택한다. 나는 그저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이거 어때요? 한번 발라봐요? 이 색깔 보고 어머니 생각났어요'

우리는 어머니도 '여자'라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게 된다.

너무 늦기 전에 깨닫지 말자. 그 사실을 잊고 나서 너무 늦었을 때가 되었을 수도 있다.


때때로 제안은 사람과 사람 간 몰랐던 부분을 채워준다.

때때로 제안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거창하지 않더라고 말이다.


옳고 그름과 상식은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 된다.

반면에 개개인의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름과는 전혀 다르다.

단지 서로 다른 관심과 취미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단단한 논증으로 서로를 반박하는 것은 서로에게 성장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과 취미와 관심사를 말할 때 단단한 논증은 반갑지 않다.

(누군가 나이키 에어조던 11을 좋아하는 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있는가?)

개개인마다 취미를 가지는 이유가 각각 다르며 같은 취미라도 관심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제안은 어렵다.

제안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제안이 사납다면 우리는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 사이트는 제안에 대해서 그들만의 관점을 보여준다.

이 곳의 제안이 다소 밍밍할 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이

가슴에 콕콕 새겨들어와서 너무나 마음에 들 수 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 무엇을 느끼든지 간에 그것에는 완벽한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빠져들고 싶은 제안은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재즈 앨법중에서 취향과 관점은 분명하게 나눠진다.그것은 자원ㅅ러운 일이다.

티 사이트는  서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사실 기억하지 않아도 책들이 많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기 때문에

서점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게 된다.

도쿄를 돌아다니면 츠타야 서점이 꽤 찾아볼 수 있다.(츠타야 서점은 엄연한 도서 체인이다.)

특히 그 특유의 'T'자 로고 말이다.


이곳에서 제안이 시작하는 첫 포문은 책이다.

그렇지만 그 끝이 다른 책이 될지 티셔츠가 될지, 오디오가 될지, 음반이 될지,

그릇이 될지, 안경이 될지는 모른다. 모든 시작은 책이어도 끝나는 제안은 모두 다르다.

사람의 취향이 다르듯이 그렇게 이곳도 사람들 취향을 따라간다.

다만 그 제안을 결코 무례하지 않게 말한다. 사뿐히 흘러가듯이 가볍게 안내한다.

'우리는 이러한 제안을 하고 싶어요.... 가령 당신이 집밥에 관심이 있다면 집밥을 만드는 책과 그것을 함께 담아서 같이 먹을 만한 그릇도 보세요. 아! 그릇에는 젓가락도 필요하죠. 요리책과 요 그릇 그리고 이 젓가락은 어떤가요? 한번 보세요!'이런 식이다.

편집샵 같기도 하지만 책을 기점을 시작해 모든 제안이 연결되어있다.
어수선한 부분도 있지만 그 것을 잘 따라가보면 내가 몰랐던 나만의 취향을 찾을지 모른다.

수준에는 두세 개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이 존재한다.

실용적인 수준이 있는가 하면 감상적인 수준이 있고,

추상적인 수준이 있기도 하다. 구체적인 수준도 있다.

각 수준마다 그 나름 목적이 있고 나름의 철학과 관점이 있다.


개개인에 대한 제안은 수준에 따라서 구분이 될 수 있나, 하지만 그 안에서 우열은 없다.

우리가 우열을 가리고, 비교를 시작한다면 취미 혹은 취향은 비참함이 가득한 끝을 맞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즐겁기 위해서 취미를 가진다.

남과 비교하기 위해서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제안을 하거나 기획을 한다면 이것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니네!!'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수억의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제안들은 정확할 수도 있디.

그렇지만 데이터로 만들어진 제안은 정확은 할지언정

그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섣부르다.

내가 관심이 없던 분야가 어느 날 누군가와 대화로 인해서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다. 이것을 데이터만 가지고 예측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권유와 제안은 또 다른 영향력이 있다.

과연 데이터가 지배하는 팍스 데이터 혹은 팍스 알로니즘에서

우리의 취향은 어찌 되어야 할까?

같은 스타워즈상품 이라도 아키하바에서 파는 스타워즈상품하고는 사뭇다르다.

제안은 어렵다.

제안은 '지식이 향연'이 결코 아니다.

제안이 지식의 향연이 되는 순간 그것은 제안이 아닌 '오만'이다.

제안은 '다가가는 것'이다. 거절당해도 한결같이 기다릴 줄 아는 것이어야 한다.

'돈'을 위한 어떤 제안이 매력이 있을지 모르고  매출이 그것을 증명해 줄지는 모르나,

그 제안이 과연 영혼의 울림이 있을지는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연결되가는 사회이다.

손쉽게 손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대이다.

대부분 일상이 디지털화된다고 해도

'제안'은 지극히 아날로그이다.

제안은 관점이 뒷받침되어 있는 삶에 관한 묘사이다.

단순한 논리에 의한 물건을 제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정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제안 혹은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커피를 마시고 특정 컵을 쓰고 특정 차를 타는 것이 과연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확언할 수 있을까?

아니면 소비의 연장선인가?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 지금 시대이다.


누군가에게 제안을 하려면 우리는 철저하게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의견, 저 의견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하는 '우유부단'이라는 사슬과 속박을 잘라내야 한다.

분명하게 자신만이 가진  관점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나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남에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제안이 가능해진다.

물론 나의 이러한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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