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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Nov 28. 2017

우연히 깨달은 아날로그.

도쿄역에서의 깨달음.

일본 근대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도쿄역. 

도쿄역은 아주 잘 만들어진 미로이다.

미로는 규칙을 익히고 길을 하나씩 찾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도쿄역 주변 길을 익히는데 오래 걸린다.

도쿄역 출구는 총 7개이다.

(마루노우치 남쪽, 중앙, 지하 중앙, 북쪽과 아예스 남쪽 중앙 북쪽)

그렇지만 이제 막 도쿄에 온 나에게 어디가 '마루노우치'인지 '아예스'인지 그건 알 수 없다.

출구를 정확하게 찾기 위해서는 도쿄역구조에 대한 규칙을 찾아내야 한다.

시간이 난다면 인터넷에서 도쿄역 구조를 검색해보자.

'일본인지 작성한 일본 지하철 던전 레벨'이라는 재미난 글이 나온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곳을 경험해본 입장으로서 던전이 맞다.

글로 보면 웃음이 나오겠지만 그곳에서 길을 잃은 경험을 떠오르면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레벨 1이 신오쿠보역이다. 다음으로 높은 레벨이 시나가와역, 아키하라바역, 우에노역, 이렇게 이어진다.

가장 높은 레벨에는 도쿄역, 신주쿠 역이 자리 잡고 있다. 개인적으로 신주쿠 역보다는 도쿄역 미로이다.) 

이것은 신주쿠, 시부야역도 마찬가지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도쿄역은 사람들 규모가 신주쿠나 시부야역과 완전히 다르다.

(물론 시간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도쿄역에 갔단 오전 9시는 신주쿠와는 비교가 불가능 그 자체였다.)

출처: http://www.jreast.co.jp/e/stations/e1039.html

도쿄역이 선사하는 복잡한 길들은 나를 여행자에서 실종자로 만든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나를 압도한다.

아마도 도쿄에서 "미안합니다"와"죄송합니다"를 가장 많이 사용할 곳을 기억한다면 

그곳이 도쿄역 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나를 절대로 기다려주지 않는다.

무수히 파도같이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를 피하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

미로 같은 길에 밀려오는 사람은 지하철역에서 사람은 다급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보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면 생각이 바뀐다.

밀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불안감과 다급함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사람들 표정을 한국과 비교해보자.

도쿄역에서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주 흥미롭게 변 할 것이다.

꼭 서울이라고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여행을 갔었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보자.


나는 아주 호기 있게 도쿄역에 도착했지만 그 호기와 자신감 5분도 되지 않아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구글 맵스는 출구들를 알려주지만 그 출구들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같은 길은 하나씩 짚어보면서 걸어가지만 계속 왔던 길만 반복해서 다닌다.

그렇게 길을 헤매면서 20분이 흘러간다.

도쿄역 안내판을 보면서 각 출구를 찾아 나서지만 길은 보이지 않다.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만 보인다.

어디가 마루노우치 출구이고 어디가 아예스출구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마루노우치 중앙, 지하 중앙 남쪽, 북쪽은  찾을 수 있는데 아예스출구는 보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도쿄역은 길을 가다가 멈추어서도 안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길을 조금이라도 막으면 역무원이 길에서 비켜야 한다면서 다가온다.

또한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도쿄역은 한창 공사 중이다.

지하철역 파이프와 천장을 다 헤집어 놓은 상태라서 마음속 혼란함은 더 커진다.

여기에 낯선 일본어 지하철 방송과 사람들 발걸음은 길을 찾지 못하는 내 모습을 들쑤셔놓는다.

평정심은 어느 순간 초조함으로 변해버린다. 맑은 물이 탁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정신을 온전히 다듬고 마음을 다 잡는 것이었다.

내가 그 순간 먼저 할 것은 지도를 보면서 차근히 지리를 익혀나가는 것이었다.

여행이 고행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렇게 1시간가량 혼자서 헤매면서 짜증과 분노가 폭발할 무렵

지도를 보던 와중 한 가지 규칙을 발견했다. 

마루노우치 지하 중앙 출구에서 이어지는 아케이드가 아예스로 연결시켜주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 통로를 지나가 보면  아녜스 중앙 개찰구와 유니클로가 보인다.

이곳이 내가 그리도 찾던 아예스 출구이다.

도쿄역에 온 목적은 사실 로쿠렌사 츠케멘을 먹기위함이었습니다.

종이지도를 보고 그 길을 그 길들을 하나씩 체크해 나가면 도움이 된다.

스크린으로 보는 구글 맵스에서는 이것을 할 수가 없다.

GPS가 위치를 오해할 수도 있다.

오히려 아주 혼란한 곳에서는 종이지도가 구글 맵스보다 더 효과적이고 유리하다.

때로는 기술보다 아날로그가 가진 장점이 더욱 부각되는 순간이 있다.

의외로 그 순간은 우연히 조용히 찾아온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조화를 잘 유지하는 것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조그마한 손바닥 크기 화면이 모든 도움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한 가지에만 의지한다면 오히려 예상치 못한 취약점에 쉽게 무너지기 십상이다.

긴자에 위치한 이토야문구 매장모습. 모든것이 디지털화되어서 종이가 주는 아날로그보다 우리 가슴을 녹이는 것은 없다.

도쿄역에서는 종이지도가 유용하다. 

종이지도를 보면서 머릿속에서는 도쿄역 지도를 떠올리면서 한 걸음씩 움직이자.

한국 지하철역에서 우리가 지도를 들고 다닌 기억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에서 지도를 펼쳐서 찾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새로운 경험이다.

만약에 혼자가 아닌 일행이 있다면 도쿄역에서만큼은 일행 중에서 누군가를 답사를 보내고 기다리자. 

그러면 새로 길을 헤매다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넌 왜 길을 못 찾냐고! 아우 짜증 나!!!"이러지 말자.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이곳에 처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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