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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Dec 02. 2019

브랜드는 공간과 사람을 잇는다.

브랜드가 관점은 공간을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경험으로 바꾼다.

고대 그리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리스가 만든 유산은 로마제국을 매료시켰고 로마예술에 흡수되었다.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그리스 미술은 다시 한번 태어났다. 그 이후 19세기까지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서 예술을 정의하는 기준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이 모든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루브르 박물관이다.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인상주의 등 각 시대의 미술을 잘 모아서 엮은 루브르는 미술관중에서도 단연코 최고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아부다비에 루브르 분관이 생기고 이를 만든 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프랑스 건축가인 장 누벨이다. 어떻게 보면 '프랑스'라는 국가 브랜드를 확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출처:acrhidaily.com

프랑스는 언제나 유럽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이는  '럭셔리 패션 = 프랑스'라는 인식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일본 패션 디자이너들은 프랑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명품 럭셔리 브랜드 반열에 입성하지는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꼼데 가르숑. 꼼데 가르숑을 아방가르드한 '관점'이 분명한 패션 브랜드라고 할 수 있지만, 꼼 데 가르숑을 샤넬, 디올, 루이뷔통, 에르메스 같은 럭셔리 브랜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루브르 미술관과 대영 미술관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결코 이 '지적'에 자유로울 수 없다. 대영 미술관과 루브르의 많은 유물들은 두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노획물이다. 그리스 정부가 파르테논 신전 유물을 반환 요청했을 때 대영 미술관은 "파르테논 신전은 이제 모두의 유물이다. 대영박물관이 지금까지 더 보존을 잘하고 있었다."라고 말하며 거부했다.

출처:unslplash

루브르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나 사모 드라케의 비너스' 등 루브르에 있는 수많은 유물은 원래 프랑스에 있지 않았다. 루브르 내 많은 유물들은 프랑스가 다른 나라로부터 가져온 것들이다. 루브르 미술관은 과거에는 궁궐이었으나 프랑스혁명을 지난 후 대중을 위한 미술관으로 개방되었다. 냉철하게 보자면 루브르와 대영 미술관은 프랑스와 영국이 피를 흘려가며 만든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루브르는 매우 불쾌한 곳이기도 하다. 반면에 다른 이에게 예술 그 자체일지 모른다. 공간은 이렇게 역사를 비롯한 정치 및 경제 상황에 따라서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렇기에 공간을 한 가지로 정의한다는 건 매우 힘들다.


루브르 미술관 에어비앤비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의 브랜드 철학은 루브르와 만나 '역사'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루브르에서의 하룻밤'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으로 만들었다. 눈으로 보는 선에서 끝나는 박물관이 아닌 오감을 모두 느끼며 만질 수 있는 미술관. 호스피텔리티라는 관점에서 루브르를 재해석했다.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식사가 특별한 건 그 안에 에어비앤비의 철학이 같이 녹아들어 갔기 때문이다. 출처:에어비앤비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식사는 단순한 식사일까? 그 앞에서 먹는 식사 중에서는 반드시 그리스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폴레옹의 아파트 안에서 휴식은 어떠할까? 당시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에어비앤비는 루브르가 가진 '역사성'을 브랜드가 해석하는 '공간'이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시킨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건 호텔, 호스텔, 민박 등 정형화된 여행 숙소 개념을 '현지인의 집'으로 확장시킨 에어비앤비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처럼 브랜드는 공간을 단순하게 브랜드로만 채우지 않으며 하나의 필터로서 공간에 생명을 부여한다. 앞서 말한 에어비앤비가 가진 브랜드 철학은 루브르와 만나 '역사'를 보다 구체적인 공간으로 바꾼다. 이와 다르게 뉴욕 현대미술관은 나이키, 오프 화이트와 함께 에어포스 1 스니커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지드래곤, 트레비스 스캇, YEEZY 같은 스니커즈 협업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뮤지션들의 철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칸예 형 누구나 이지를 신게 해 준다면서요! 근데 왜 항상 내 거는 없나요?'라는 스니커즈 커뮤니티 내 게시글은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오늘도 나의 이지 350은 없었다. 출차: unsplash.com

이미지가 지배하는 지금 시대에는 '구체적이고 디테일해야 하고 만질 수 있어야 한다. 뷰 맛집, 미술관 맛집, 옥상 맛집 등 맛집이 보다 더 디테일하게 뻗어나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로 검색하면 추상적인 모호함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변한다. 이 모든 일은 누가 하고 있는가? 사람과 브랜드가 같이 하고 있다.


브랜드가 공간에 개입하는 순간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은 매우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바뀐다.


브랜드가 지금 시대에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니는 존재로 부상한 이유는 공간을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유지하는 힘은 일단 매출이다. 매출 없이 브랜드를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가령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준다는 말보다는 '125,000 rpm의 초고속 회전을 통해 먼지를 빨아드린다'라는 말이 보다 더 와 닿는다. 이를 설명하고 전하기 위해서 브랜드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이야기한다. 막연한 제품을 사람들은 결코 사지 않는다. 제품 구매 시에 리뷰를 참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브랜드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사람들과 쌓는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 규모가 커지면 더 효율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 미디어, 데이터, 디자인, 심리학, 건축 등 모든 걸 다 동원한다. 누군가는 치킨을 이야기할 때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라며 배달의 민족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이처럼 브랜드는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능숙하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니까.

런던 킹스크로스 역은 해리포터가 거대한 브랜드로 상장하기 전까지는 단순한 기차역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이제 런던에 갔을 때 킹스크로스 역을 가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10년 전 런던에 갔을 때 킹스크로스 역은 공사 중이었다. 하지만 9와 4분의 3 승강장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설치한 상태로 놔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전장치 속에서도 영화 장면과 비슷하게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해리포터를 모르는 이들에게 9과 4분의 3승 승강장은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해리포터 팬들에게 킹스크로스역는 소설과 영화를 느끼는 새로운 관계다. 메가박스에서 만든 스파이더 팬 파 프롬 홈 티켓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그냥 종이쪼라기리이지만 마블 유니버스 팬들에게는 취향을 공유하는 구심점이다. 오설록이 아모레 성수에서 티 클래스를 여는 일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브랜드가 이끌어가는 공간은 항상 편집이 뒤따라간다. 여기서 공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온라인 서비스, 상품을 모두 망라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브랜드 자체가 한 사람의 생각 혹은 같은 생각을 공유한 이들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들었기에 브랜드는 사람들이 추구한 가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오히려 브랜드는 그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가치관을 더욱 정제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브랜드가 만들고자 한 공간이 브랜드를 담아내는 건 당연하다.

언젠가는 네 조던 11도 찾을 날이 올 거야. 출처ㅣ nike.com

지난주에 발매한 조던 11도 마찬가지다.(이번에도 추첨에 떨어진 한 명.) 마이클 조던은 당시 조던 시리즈의 디자인을 담당하던 팅커 핫 필드에게 정장에도 어울릴만한 농구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마이클 조던의 요청과 농구장에서 마이클 조던을 모두 관찰한 결과로 나온 신발이 버로 조던 11이다. 그 특유의 에나멜 앞부분은 정장에도 어울릴 요소를 찾는 과정에서 나왔다.


최근 스타벅스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이미 충분한 매출이 나오는 스타벅스다. 그럼에도 스타벅스가 생각하는 커피에 대한 모든 것을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라는 공간에  쏟아붓고 있지 않은가? 우리 스스로 방을 꾸미기 위해서 수많은 아이템을 찾아 나서는 일과 조그마하게 시작한 브랜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긴  공간을 만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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