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비어있다. 그걸 채우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공간'의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라는 뜻'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가 된다.'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를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공간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채우는 일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공간을 채우는 방법은 무수히 많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공간에 물건을 놓거나 음악, 빛 같은 요소를 통해 공간에 다양한 느낌을
넣어 연출하는 일도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우리가 공간에 느끼는 매우 다양한 느낌들.
따뜻하거나 차갑거나 고요하거나 답답함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간은 비어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왜 그럴까?
모든 공간이 이야기를 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공간에 대한 논의는 그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다.
그 이야기는 무겁지 않다. "방을 좀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청소할까?'라는
작은 질문에서도 얼마든지 시작한다.
나는 항상 건축이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한 중요한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건축은 단순히 어떤 '건축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축'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부분을 말한다.
가령, 계단,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마트, 상가,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공원 모든 곳을 의미한다.
우리를 둘러싼 건축물, 조경, 경관은 건축을 만들고자
건축가에게 의뢰하거나 자금을 조달한 이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다. 그곳을 이용하는 사용자와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준다.
몇 달 전 집 앞 폐가가 있던 공터에 구청에서 공원을 지었다.
모래밭, 놀이터 그리고 의자가 전부였다. 불과 날씨가 따뜻하던 1달 전까지만 해도
동네 아이들은 저녁 늦게까지 그곳에 시끌 북적하게 놀았다.
서울 패션위크가 시작하면 DDP는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의 성지로 변한다.
12월 31일 밤이 되면 보신각 앞은 새해를 기념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찬다.
대부분의 건물과 조경, 도시지역 수명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
건축물이 한번 들어서고 나면 그곳에 관여한 사람들과 그 이후 세대에게 건축물의 영향력이 이어진다.
잘 만들어진 건물은 찬사를 듣지만 그렇지 않은 건물은 비판과 비난을 계속 듣게 된다.
지금은 아름다운 도시라고 불리는 파리도 조르주 오스망이 파리 정비사업의 결과물이며,
교토의 기요미즈데라 인근 기요미즈자카, 산겐자카도 역시 일본 문화재 보호법과
교토 시민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취향 전성시대. 이제 우리 모두 공간을 논한다.
문에서부터 페인트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논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본 삼성전자 비스포크 광고 속 벤자민 무어 페인트를 보고
공간에 대한 사람들 관심이 정말 디테일해졌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렇지만 우리는 얼마나 공간을 논하고 있을까?
이 글을 적는 나 조차도 '공간'에 대해 모다 더 신중하게 생각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브랜드가 만들어가는 공간을 찾고 글로 적는 과정에서 그 속에 사람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을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