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이들이 편집하고 배우가 되는 시대. 편집력은 이제 필수교양이다.
3년간 도쿄에, 교토, 브랜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이전보다 조금은 더 큰 세상을 관찰했다.
그곳에서 발견한 점은 언제나 ‘만드는 일’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친숙하게 말하는 브랜드라는 단어 안에는 각자마다 꿈꾼 갈망. 즉,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는 걸 느꼈다
요즘에는 데이터 분석과 데이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있다. 모든 게 낯선 AWS와 쿼리문을 익히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모든 것을 만든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식당과 카페에서 일하던 시절, 하루하루를 버틸 힘을 나눠준 건 새벽 5시부터 나와 그날 아침 입고된 재료들을 손질하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야채가 공장에서 나오는 줄 알아! 어떻게 맨날 신선할 수가 있냐고!" 하면서
볼멘소리를 하던 아주머니들. 부족하고 잘 모르던 나에게 언제나 많은 걸 가르쳐주신 분들이다.
아무리 데이터 기반 사회로 변하고 있다고 여전히 데이터를 만드는 일은 사람이 한다. 그걸 보고 분석하고 판단은 분석 프로그램이 할지 모르지만 분석 프로그램을 만든 이들도 역시 사람이다. 어느 곳을 가도 그곳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면 삶과 희망이 보인다.
데이터 기반이 대세다. 모든 것을 데이터로 해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언제나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이 더 이상 감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편집에 기인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 첫 번째 작품으로 평가받는 하우스 오브 카드는 대성공이었다. 이를 통해 콘텐츠가 나아갈 미래는 데이터에 있음을 증명했다. 데이터가 기반이 된 의사결정은 ‘감’이 아닌 구체적인 ‘기준’으로 묶고 엮는다는 걸 말한다. 감각이 아닌 데이터에 의존한 편집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창조는 ‘편집’에서 시작되었음을 넷플릭스는 지금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넷플릭스가 ‘데이터’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넷플릭스에서 콘텐츠 제작을 총괄하는 테드 사란토스는 ‘넷플릭스는 데이터를 근간으로 결정을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건 전적으로 연출가에게 맞긴다. 우리는 데이터에 근거한 판단만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이 나이와 국경을 넘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의 확장은 IT 업계 변화가 아니다. 미디어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이제 누구나 전문가에 근접한 영상물을 쉽게 제작할 수 있다. 가격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하드웨어. 쉽게 익힐 수 있는 소프트웨어 확산. 이를 쉽게 익힐 수 있는 영상들이 가득한 환경, 데이터 통신기술 발달은 유튜브가 급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유튜브는 경이로운 대변화를 이끄는 매체이면서도 동시에 시대를 발전시킨 기술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유튜브가 창작자들과 배분하는 수익모델은 단순한 창작 동기를 넘어 직업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튜브가 가져온 변화는 ‘미디어’가 장악하던 ‘편집권’을 모든 이들이 가지게 했다는 걸 시사한다. 유튜브를 기존 미디어와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튜브 메인 ‘피드’와 추천 콘텐츠를 배치하는 ‘알고리즘’이다.
방송국 같은 전통 미디어는 사용자가 특정 채널을 선택하는 선에서 끝난다. 반면에 유튜브는 사용자가 구독하는 콘텐츠는 물론 알고리즘이 알아서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지향하는 방향은 ‘개개인의 취향을 자동으로 편집’해서 추천 해유 튜브에 계속 머물게 해야 함에 있다. 이 말은 기존 미디어를 존재하게 만든 편성과 배급에 대한 권력이 구독자 ‘데이터’ 기반의 추천 로직으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편성하고 배급한다. 직업으로서 유투버가 떠오르면서, 유튜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편집력은 누구나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교양이 되고 있다. 점차 편집력이 바탕이 된 사회에서 이미 편집력은 ‘개인과 조직’을 이끄는 동맥이 되고 있다. 모든 플랫폼, 서비스, 배달, 유통 등 모든 분야에서 ‘편집’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콘텐츠 중심축이 영상으로 이동하면서, 영상을 만드는 가장 큰 축 중 하나인 배우들에게도 ‘편집력’은 이제 더더욱 필수가 되고 있다. 어쩌면 배우들이 선보이는 편집력을 우리는 이미 ‘연기력’이라고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배우들이 어떤 방법으로 연기를 하는지 솔직히 모른다. 하지만 배우란 '인물을 묘사하며 그 안에서 인간이 가진 다양한 속성들을 편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작품을 고를 때도 항상 자신만의 편집력을 통해 스스로 가진 가능성을 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게 만든 인물을 버리거나 혹은 그 이미지를 재편집해 자신을 편집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배우를 말한다. 그렇지만 정작 배우들. 그들이 추구하는 ‘배우’그 자체에 대한 글들은 생각보다 적다. 배우들의 많은 인터뷰에서는 대부분 ‘작품과 그 안의 화제성’를 가진 소재들만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배우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고민 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매체 성격도 있고, 지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고 해도 수많은 인터뷰에 퍼져 있다. 이 매거진을 준비하면서 배우들의 인터뷰를 적지 않게 찾아 읽어 보고 있다. 한 배우는 10년간 누적된 인터뷰를 읽고 또 읽어보기도 했다.
이 매거진에서는 배우가 추구하는 ‘연기’에 대한 생각. 이를 삶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작품에서 표현을 위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작품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편집, 표현, 꾸준함, 가치관이라는 네 가지 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배우를 서술하고자 한다.(하지만 나는 이쪽 관계자가 아니라서 배우를 직접 인터뷰할 수 없기에 현실적으로 찾을 수 있는 인터뷰와 작품을 직접 보고 이야기하라고 한다.)
이제 배우만큼 가장 많이 소비되는 대상도 없다. 많은 이들이 배우를 꿈꾼다. 유튜브에서 웹 드라마를 만드는 일은 이제 결코 낯선 일도 아니다. 자신만의 창작물을 위해 스스로 배우가 되는 이들도 많다. 이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고 유튜브에 올리면 된다.
지금은 친절함이 매우 부족한 시대다. 친절이 사라져 갈수록 우리 스스로가 친절, 인내심, 배려 같은 미덕이
더더욱 퍼지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