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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May 25. 2020

'또! 오해영': 서현진만의 크리에이티브

필요 없는 것들을 빼자. 서현진의 창의력은 그렇게 시작한다.

'또! 오해영'은 ‘자존감과 사랑’ 이 두 가지가 축을 이루고 있는

‘또! 오해영’은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가는'지금 사람들 이야기'다.

드라마는 존재하면서도 일부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담는다. 일부는 가짜고 일부는 진짜다. 그렇지만 배우는 언제나 진짜 세상에 대한 욕망을 잡아내야 한다. 실제 의식주와 생활에 영향을 받아 이를 드라마라는 세계에서 구현해야 한다. 배우가 드라마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연기자가 아닌 디자이너가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또! 오해영'은 서현진이 그동안 해온 연기의 합, 경계 없이 디자인 결과물이다.


배우는 대본 속에 담긴 인물의 외모, 특징, 목소리, 습관, 표정 등 한 인물의 정체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설계한다. 이를 통해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작품이 추구하는’ 페르소나를 만든다.

tvN 자백의 등장인물 소개. 

대본에 적힌 인물 설정은 작가에 따라서 다르지만 텍스트로 만들어졌을 뿐 그걸 구체화하는 건 철저히 배우 몫이다. 출간된 대본을 기준으로 판단해본다면, 작가가 쓴 대본에는 인물 설정, 묘사. 장면에 대한 묘사가 전부다. 배우는 이 설정에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더해 인물을 살아있는 존재로 설계한다. 그렇기에 배우가 “캐릭터 디자인에 ‘줏대’가 없으면 작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비록  드라마 마무리는 연출자 몫이지만, 그 안에서 인물에 대한 디자인 및 모든 부분을 총괄해 관리해야 하는 건 전적으로 배우다.


드라마에서 인물을 키우는 건 아이를 기르는 일과 같다. 영화와 다르게 드라마는 첫 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인물이 일관적이거나 다각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이야기가 분리되면 외모와 내면이 다른 이중인격의 아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배우, 감각을 가진 배우, 나아가 두 가지를 넘나들면서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배우’가 돼야 한다. 이 매거진에서 일괄적으로 말하는 편집력은 이러한 부분을 말한다.


배우란 모든 영역의 합, 경계는 없다.



라이프에서 예진우(이동욱)는 환자를 살리는 일만이 거의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시나리오에서 캐릭터 지나치게 빽빽하면 사람들이 공감을 얻거나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캐릭터에  마음을 넣을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찾아볼 수 있는 드라마가 JTBC ‘라이프’다. 극에서 예진우(이동욱 분)는 상당히 무기력하다. 그의 능력은 응급의로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게 전부다. 구승효 사장 같은 인사권도 없다. 하지만 라이프에서 예진우의 무기력은 상국대병원이 마주하는 ‘상황’을 시청자들이 보다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반면에 병원 내 모든 결정권을 가진 구승효 사장(조승우)은 두뇌회전이 빠르며 일만 한다. 캐릭터가 가진 감정이 잘 노출되지 않는다. '빽빽' 하다. 

라이프에서 구승효의 구조는 빽빽하다. 시청자들이 감정적으로 들어갈 여지를 상대적으로 내주지 않는다.

그는 대안이 될 시나리오 몇 가지를 같이 생각하며 의사결정을 한다. 의사들이 감정에 기반한 주장을 할 때도, 그는 데이터와 수치로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단칼에 잘라버린다. 구승효가 맞는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공감’보다는  ‘동의’ 정도밖에를 할 수 없다. 구승효 자체가 시청자에게 공감할 틈을 주지 않는 빽빽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캐릭터 구성은 구승효와 예진우라는 두 인물이 서로 대립한다. 그 대립은 '가치'이며 이를 통해 라이프가 추구하는 주제를  드러내는 게 기여한다.

뺄셈이 강한 캐릭터, 덧셈이 강한 캐릭터, 이 둘의 합은 라이프라는 드라마 시나리오의 균형을 맞춘다.
데이터, 수치, 적자, 흑자는 라이프의 시나리오는 구축하는 핵심이다.

 그 중간에 있는 주경문(유재명), 이노을(원진아), 오세화(문소리)는 이 둘 사이에서 시청자들이 감정을 넣을 만한 다른 여지를 만든다. 특히 이노을(원진아)을 통해 구승효 안에도 분명 감정이 있고 공감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전한다. 시청자들은 구승효가 아닌 이노을을 통해 '병원, 의사, 자본주의'를 고민하게 만드는 가교다. 회가 지나갈수록 이노을을 통해 보는 구승효의 '감정'도 커지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구승효가 냉혈한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노을(원진아)은 구승효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하며, 구승효라는 캐릭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다

이렇게 이노을은 그 자체로도 캐릭터성이 있으면서도 구승효를 엿보는 망원경 같은 셈이다. 그렇기에  라이프는 ‘무미건조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미묘한 작품이다.‘또! 오해영’은 그런 면에서 아예 사람들이 캐릭터에 감정을 집어넣을 틈이 많다. '사랑'과 '자존감'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서현진이 택한 '빼는' 연기는 오해영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전략이다.

카라바조 그림은 빛의 대비를 이용한 주제 강조. 그리고 선명한 인물 묘사다. 출처: 위키디피아

표현 관점에 따라 결의 차이가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점을 배울 수 있는 매우 좋은 사례가 있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렘브란트와 카라바조다. 두 화가 모두 ‘빛’을 활용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 하지만 카라바조와 렘브란트. 두 사람이 그린 그림의 결은 전혀 다르다. 카라바조는 빛이 만들어내는 ‘대비’와 ‘선명함’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카라바조는 빛이 만들어내는 사실을 '더하는' 예술에 가깝다.

렘브란트는 빛의 파장을 그림의 중요 요소로 사용한다. 출처: 위키디피아

반면에 렘브란트는 빛이 만들어내는 대비와 이를 통해 생겨나는 ‘파장’에 더 주목한다. 유년시절 풍차에서 흘러오는 빛의 파장과 대비에 많은 영감을 받은 그는 은은한 빛의 파장과 퍼짐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그림 속 빛은 강렬하기보다는 잔잔하며 따뜻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같은 바로크미술이지만 빛에 대한 접근이 다르기에 그림내 묘사도 달라진다.(촤:렘브란트,우: 카라바조), 출처: 위키디피아

이처럼 두 화가는 빛이 가진 속성을 적극 활용하지만 빛이 가진 특징 전부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관점에 따라 빛이 가진 속성 일부를 빼서 그림 속 감정을 표현한다. 두 거장의 그림의 결이 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기준을 두고 ’ 빼거나 더하는 일’은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지금 소비자는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다. 장르가 아닌 취향에 근거해 판단한다. 소비자들도  배우에 대한 느낌의 합을 가질 뿐이다. 예컨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이제 밥만 보지 않는다. 인테리어부터 메뉴판, 음식, 서비스 등 모든 것을 살펴본다. 소비자에게 닿는 느낌에서 각 영역은 하나로 섞인다. 

스튜디오 드래건 IR자료만 보아도 현 영상 콘텐츠 산업 흐름을 단숨에 알 수 있다. 출처: 스튜디오 드래건 20년 1분기 실적보고서.

영상 콘텐츠 자체가 '구독과 스트리밍'서비스 형태로 바뀌면서, 제작사는  소비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구현할 사람을 찾으면 된다. 드라마에서 ‘이런 인물과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느낌을 시청자에게 주는 것. 동시에 이러한 콘텐츠로 가득한 플랫폼을 만드는 일. 영상 콘텐츠가 나아가는 방향은 이러한 방향이다.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은 대상을 이해하는 일이다. 크레이티브의 핵심은 일단 많이 보면서 어떤 게 좋은지 알아야 한다. 많이 보다 보면 점차  알아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관점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걸 점차 결과물에 넣어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생각과 대상에 대한 이해가 섞인 디자인이 나온다. 이게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의 접근법이다. 서현진은 자신이 맡았던 캐릭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오해영을 디자인한다. 동시에 매회마다 오해영에 맞게 필요한 걸 넣고 뺄 수 있는 이유도 그동안 자신이 쌓은 다작 때문이다.


오해영은 '공감'의 공간이 큰 캐릭터.


서현진은 오해영을 부족함과 과하지도 않게 묘사한다. '식샤를 합시다'에서 백수지를 통해 보여준 '평범함'을 보다 더욱 세밀하게 손질해  연기한다. 서현진은 오해영을 묘사함에 있어 한 가지를 제거하고 다른 한 가지를 더하며 매화마다 이야기에 정말 꼭 맞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넣은 오해영을 만든다. 서현진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을 오해영에게 더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 충분함'. 이러한 연기를 보여주는 서현진의 농밀한 편집력은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연기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준다.

오해영의 모든 면면에는 서현진의 모든 필모그래피가 투영되어있다. 하지만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이 제거한 건 캐릭터에 대한 '강한 묘사'다. 동시에 다작으로 쌓아온 테크닉 한 요소를 오해영을 구축하는 뼈대로 전부 세우지 않는다.  


대본 속 캐릭터를 공간으로 비유하면 '캐릭터 묘사'는 벽과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에서 벽이 가진 의미는 막강하다. 단순한 막 이상이다. 분류 혹은 분할 그리고 디자인 경계를 정한다. 

'또! 오해영'을 사진 속 공간이라고 한다면 주인공 '오해영'은 벽이나 가구가 아닌 바닥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오해영을 느끼고 공감한다. 출처:deezon.com

캐릭터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분류가 필요하다. 서현진은 오해영을 특별히 분류하지 않는다. 대신 오해영에 대한 묘사를 바닥으로 만든다. 벽이 아닌 바닥이기에 오해영에 대한 묘사. 그래서 오해영을 통해 드러나는 '평범함'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또! 오해영'을 사진 속 건축 공간이라고 한다면 주인공인 '오해영'은 벽이나 가구가 아닌 바닥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오해영을 느끼고 공감한다.  

오해영을 묘사하기 위한 기술적 요소를 철저히 감춘다. 식샤를 합시다에서의 시도는 또 오해영에서 완성에 수렴해간다.
기술적 요소를 빼고 사람들이 오해영에 공감하게 만들기 위해 힘을 뺄수록 서현진의 연기는 더욱 돋보인다.

극에서 오해영을 볼 때마다 뭔가 불안 불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묘사라는 '벽' 대신 더한 건 오해영의 감정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빈 공간이다. 이를 통해  오해영만의 '자존감'을 만든다. 이 공간을 통해 서현진은 사람들이 오해영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많은 여지를 만든다.


오해영을 포함해 서현진이 맡아온 시나리오 캐릭터들의 자존감은 낮다. 그리고 극 후반으로 갈수록 자존감은 회복된다.

'식샤를 합시다'의 백수지에게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그려온 캐릭터의 공통된 감정을 투영했다. 그 이전 작품 캐릭터인 백수지에게서 활용한 모든 면들을  '또! 오해영'안에서도 그대로 활용한다. 하지만 오해영이 백수지보다 더 한걸음 나아갈 수 았던 이유는 백수지보다 오해영이 사람들과 공감하는 감정 고리가 더 촘촘했기 때문이다.

백수지에서 보았던 면들은 오헤영에서 더욱 세밀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출처: 티빙.


그렇기에 백수지에서 얻는 확신이 오해영에서 더 커진 건 당연한 셈이다. 서현진은 오해영을 연기하면서 그동안 자신을 막아놓은 테크니적인 벽을 모두 허물어 내는 동시에 서현진이라는 '배우'가 추구할 연기 언어를 공간으로 더욱 구체화시킨다.

수백향에서부터 식샤까지 관찰해보면 꾸준히 표정연기에서 완급조절이 유연해지는걸 발견할 수 있다.
수백향에서 오해영까지, 서현진의 연기력은 더더욱 탄탄해지며 자신만의 디자인 관점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제왕의 딸, 수백향'에서 서현진이 주인공으로서 드라마 한 편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면, '또! 오해영'은 그동안 '점'처럼 흩어진 서현진의 연기를 '크고 선명한' 면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기획, 표현, 편집력이 세 요소가 오해영에서는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또! 오해영'은 평범한 모두를 이야기한다.


사실 이 세상에서 평범한 이들은 없다. 오해영 안에는 누구나 깊게 느끼는 감촉과 용기가 있었기에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그만큼 오해영은 서현진의 모든 연기가 모두 응집되어있는 캐릭터다. 오해영이 유독 설득력이 강한 캐릭터인 이유도 누구나 한 번쯤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를 가진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또 오해영은 같은 상처를 가진 두 남녀의 자존감에서부터 시작한다. 출처: 티빙.

오해영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자칫 남녀 간의 사랑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존감'을 다루는 면이 더 크다. 오해영과 박도경 모두 결혼식 전날 당일날 차였고, 이를 통해 깨진 '신뢰'와 '자존감의 하락'은 '또! 오해영' 시나리오를 끌어가는 탄탄탄 토대다. 우리 모두의 고민도 인간관계. 특히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이에 영향을 만든 자존감이다. 그렇기에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은 '보통의 ‘누군가’다. 오해영은 ‘여성’이지만 사실 오해영은 여자이기도 하고 남자일 수도 있다.


오해영은 결혼 전날 차인 이후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을 ‘제가 잠시 미쳐서 그래요.’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결혼식 전날 차인 게 전부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동명의 ‘예쁜 오해영’때문에 받은 트라우마도 있다. 트라우마와 상처로 인해 오해영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매일매일을 힘겹게 이겨냈다.

'또! 오해영'은 사랑 이전에 '자존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존감과 사랑’ 이 두 가지가 축을 이루고 있는 ‘또! 오해영’은 자존감은 낮지만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고 싶어 하는 '지금 사람들 이야기'다. 오해영은 항상 누군가에게 비교당하고, 주눅 들고, 표현에 서툴고 승진에 누락된다. 이건 오해영만이 아니다.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열등감과 부족함. 이를 대변하는 이가 오해영이다. 뿐만 아니라, 오해영은 슬픔을 감추기 위해서 웃으려고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오해영은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먹는다. 

열등감, 부족함, 결핍 등 존재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오해영은 어떻게든지 이겨나가기 위해 조금씩 노력한다. 부정적인 분위기에 매몰되더라도 잊고 털어가려고 노력한다. 3화에서 '난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아닌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말이다. 우리 모두 자신이 애틋하고 잘되기를 바라니까

반면에 박도경은 지나치리만큼 일에 매달린다.

박도경. 그는 오해영보다 단단하고 강인해 보인다. 겉모습이다. 사실 행동만 다를 뿐이다. 오해영과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3화에서 '그게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이 나에게 사망선고 내린 기분. 우주에서 방출된 기분. 쫓겨난 우주에서 아양 떨면서 빌붙어 살아야 되는 기분. 그게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야? 난 결혼식날 차였어'라며 말하는 모습 '이를 통해 박도경은 오해영에게 '내 겉과 방식이 당신과 다를 뿐' 나도 당신 처지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잊고 그냥 이겨내려고 일에 몰입하는 자세. 이를 통해 감정을 소모할 틈 자체는 주지 않는 것 비단 박도경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일이다.

'잠시 한대 얻어맞아 쓰러진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건 박도경의 방식이다. 모든 걸 용감하게 극복하고자 하는 오해영과 다르게 박도경은 상처를 참고 감정을 억제하며 일에만 몰두한다. 모든 에너지를 일에 쏟아붇는다. 스스로에게 아픔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그에게 감정이 파고드는 일은 매우 불쾌한 일이다. 감정이 파고들수록 '감정'에 대한 아픔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는 감정을 ‘소모하는 일에 피곤함'을 느껴 일에 몰입한 사람들을 대변한다. 오해영에게 ‘너 왜 자꾸 보이는데! 너 뭔데!’라고 소리 지르며 불편한 내색을 하는데 이는 그만큼 '감정' 그 자체 대한 상처가 크고 깊기 때문이다.

오해영을 챙기는 감정 속에서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이 사이에서 시청자가 몰입한 감정의 공간은 커진다. 출처: 티빙.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도경은 오해영의 집안에 자기 신발을 놓으며 여자 혼자 사는 집처럼 보이지 않게 챙겨준다. 생일선물을 주면서도 감정이 최대한 들키지 않게 하려고 ‘있던 거야’라고 하며 무심하게 오해영을 챙긴다. 우리가 ‘오해영’과 ‘박도경’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 언제나 ‘오해영과 박도경’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드라마 시나리오는 캐릭터 자체로 공감을 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또! 오해영'에서는 오해영과 박도경은 그들이 가진 결핍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결핍이 커졌기에 시청자들은 더더욱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오해영과 박도경은 우리가 아픔을 어떻게 마주하는지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결핍이 노출되는 만큼 캐릭터에는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에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하여 공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해영은 평범하다. 그러나 사실 평범한 이는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또 오해영은 지극히 평범함을 상징하지만 사실 평범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 모두 제각기 색깔만 다를 뿐이다. 출처: 티빙

오해영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만 사랑 앞에서는 누구보다 용감하다. 상사 앞에서 사람은 ‘밥’보다 ‘사랑’이라고 말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해영 같은 인물들을 '평범녀'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누구나 사연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 누구도 평범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사실은 ‘평범’을 가장한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오해영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건 많은 이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지만 쉽게 내뱉지 못하는 이야기’를 용감하게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나온다. ‘할까 말까’하다가 내뱉지 못한 이야기들. 우리 각자 삶 속에는 항상 많으니까. 용기 내어 뱉은 말 한마디가 특별함을 만드는 경우도 많으니까.


'공감의 공간'을 많이 가진 '또! 오해영'. 

주인공 오해영은 가장 많은 공간을 캐릭터 속에 넣어야 한다.


애틋한 대사.

서현진은 오해영이 흘리는 눈물. 목이 메는 표정과 대사 목소리 하나하나에 자신의 감정을 모두 쏟아 넣는다. 단순한 감정이 아닌, 자신의 기억마저도 모두 투영한듯한 장면들을 보면 이게 ‘오해영이야? 서현진이야?라고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니까 오해영 자체에 ‘서현진’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각 기억들을 시나리오에 내용에 맞게 적절하게 묶어서 채워 넣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오해영을 만드는 딕션

오해영에서 서현진 배우의 딕션은 찰지면서도 정확하다. '식샤를 합시다’에서 백수지가 이상우(권율)에게 주사를 부리는 장면에서는 딕션이 뭉개졌기도 했지만 오해영에서는 그런 게 없다. 망가지는 상황에서도 딕션만큼은 정확하고 명확하다. 서현진은 하이톤에서 저음까지 오해영의 거침없는 표현들을 정확하게 전한다. 여기에 좋은 시나리오는 마치 서현진 배우가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을 맡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렸다는 인상을 준다. 


독백과 혼잣말.

서현진배우가 참여한 드라마에서 ‘독백’은 언제나 극에서 중요하다. ‘제왕의 딸, 수백향’에서는 연모, 그리움, 다짐, 아픔 등 설난이 마주하는 감정들을 독백을 통해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식샤를 합시다 2’에서는 백수지의 혼잣말을 보면서 ‘째 때문에 못살아!’라는 탄성이 나오기도 한다. 놀이동산에서의 독백은 백수지의 자존감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려줄 정도의 호소력이 짙은 독백을 선보인다. 

'사랑의 온도’에서의 독백은 답답한 이현수의 마음은 언제쯤 바뀔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다른 얼굴로 변한 한 세계의 '마음'을 듣는다. 블랙독에서는 처연한 고하늘의 독백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한다. 이처럼 서현진배우가 맡은 인물의 독백과 혼잣말은 이야기 흐름과 인물 감정을 유기적으로 만든다. 건축으로 치면 공간을 따뜻하게 채우는 햇빛으로 볼 수 있다.


오해영도 마찬가지다. 오해영의 혼잣말은 극 전개에서 중요하다. 혼잣말로 상사를 욕하다가 걸린다. 박도경이 음향기사라서 매일 녹음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혼잣말을 하다가 ‘좋아하는 마음’을 들킨다. 그걸 수습하려다가 실수만 더 한다. 오해영에게 혼잣말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도구이자 극 안에서 상황을 만드는 요소다. 또한 오해영의 민낯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눈빛.

또 오해영에서 그동안 서현진이 했던 모든 표정들이 각 상황에 맞게 완벽하게 선보인다.

‘식샤를 합시다 2’에서도 서현진은 털털한 30대 여성 백수지를 연기했다. 백수지는 종종 오해영과 겹쳐 보이긴 하지만 백수지와 오해영은 분명 다르다. 오해영은 백수지보다 훨씬 기분이 다운되어 있고 구대영(윤두준) 같은 우군도 없다. 오해영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말하기 전까지 기분이 굉장히 흥분되어 있다가도  그 ‘흥분’으로 자신을 가리려고 한다. 

삼총사와 식샤를 합시다와 비교하면 표정에서도 힘은 빠지고 자연스러움이 더욱 강해졌다.

서현진 배우는 자칫 같을 수도 있는 백수지와 오해영을 구분하기 위해서 오해영이 우는 장면과 무표정해지는 부분에 차이를 주었다. 그게 바로 눈빛과 눈동자다. 백수지는 뚱한 눈빛과 처연함이 있다. 반면에 오해영은 눈빛이 반은 풀려있거나 멍하다. 오해영은 상황에 따라 기분이 롤러코스터다. 언제나 불안 불안하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행복해야 해~’하며 웃으며 헤어지지만, 곧장 혼자 길을 걸어가며 서럽게 운다. 언제나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선명한 눈동자는 어느 순간 흐리멍덩해지며 무표정하게 변한다. 직장동료들과 친구에게는 ‘나는 괜찮아. 잘 이겨내고 있어!’하며 무척이나 센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이 결혼식날 차인 사실’을 다시 기억하면 한없이 낮아지는 자신을 마주한다.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해진다. 이러한 부분. 감정과 감정 사이의 공허함을 순간적으로 묘사한다. 서현진이 보여주는 한 끗 다른 디테일이다.


카메라 앵글

오해영에 대부분 영상은 노란 톤이 기본이다.

오해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단연코 영상이다. POV, 카메라 클로즈업, 아웃포커싱 등 ‘또! 오해영’은 극 안에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 영상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유독 왼쪽 사이드 컷 촬영이 많다. 이는 서현진배우가 왼쪽 사이드 촬영이 가장 잘 좋기 때문이다. 

왼쪽 사이드 컷 촬영이 유독 많은 또 오해영
바닷가로 여행을 가는 장면은 자동차정면, 드론을 이용해 촬영하고 노란색 톤으로 영상 통일성을 유지한다.

여기에 ’ 엘로우 필터’를 넣어서 영상 전체에 따뜻한 느낌을 넣기도 했다. 이러한 영상은 오해영의 감정 묘사를 매우 정확하게 잡아낸다. 뿐만 아니라 드론을 이용한 샷, 롱샷을 통해 오해영과 박도경 두 사람 감정을 은유적으로 잘 묘사한다. 

화면 전환도 카메라 클로즈업, 중간과 롱샷을 순차적으로 반복해 묘사가 아닌 '상황과 감정'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처럼 다채로운 촬영한 이유는 인물을 담는 방식 그 자체야 스토리라인으로 활용하는 tvn방식이 첫 번째이고,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인물 촬영이 내용 전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이 같은 영상 묘사가 극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비교해보려면, 서현진 배우가 참여한 ‘뷰티 인사이드’하고 비교하면 좋다.'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빠른 화면 전환, 카메라 클로즈업의 반복이 많은데, 이는 나중에는 극 몰입에 종종 방해가 될 정도다.


서현진만의 크리에이티브.

작품에 자신의 연기를 어떻게 녹여내고 디자인할지는 배우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출처: 티빙. 넷플릭스.

오해영을 통해서 서현진은 자신의 연기를 스스로 리브랜딩 한다. 오해영을 본 후에 과거 작품을 보면 적응이 쉽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빽빽이 더하는 연기를 추구하는 면이 강한 MBC와 다르게 tvN에서는 '더하는 연기'에서 점진적으로 '빼는' 연기를 지향한다. 이를 통해 인물 묘사와 공감할 틈을 만들기 때문에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빼는 연기를 지향하다 보면 결국 남는 건 당연히 자신의 철학이다. 창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기에 ‘제왕의 딸, 수백향’까지는 더하는 디자인이 주축이 되며 ‘식샤를 합시다’부터는 빼는 디자인이 주축이 되기 시작한다. 삼총사는 그 과도기적인 면이 강한 작품이다. ’ 식샤를 합니다’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본 후에 ‘빼는’ 디자인으로서 관점을 정립한 작품이 ‘또! 오해영’이다. 

'또! 오해영'은 서현진의 '빼는'연기의 시작점이자, 자신만의 연기 언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 오해영’ 이후 ‘낭만 닥터, 김사부’부터는 '빼는' 연기가 주축이 된다. 이는‘연기력’을 저울질하는 관점이 아니다. 오히려 연기력이 바탕이 된 형태, 기본기가 탄탄한 상태에서 편집력을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에 대한 문제다.


연기는 감성적이지만 비논리적이기 십상이다. 반면에 캐릭터 분석은 논리적이지만 감수성이 떨어진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배우는 감성과 논리의 밸런스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영상 콘텐츠 유통구조가 다양해지다 보니, 이러한 밸런스를 잘 구축하는 일이 작품의 품질에 그대로 반영이 되기 때문이다. 

서현진 스스로 깊이 좋아할 오해영’을 중심으로 오해영을 생각하고 이를 만들었기에 오해영은 모든 면에서 완벽에 수렴한 작품이었다. 출처: 넷플릭스, 티빙.

확실한 건 브랜드 감각을 갖춘 사람들이 연기에서도 점점 더 두각을 낼 거라는 점이다. 여기에 탄탄한 기본기가 기초가 되는 건 분명하다.‘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의 연기는 거의 캐릭터 설계에 있어  '완전함'에 수렴한다. 하지만 오해영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드라마를 통해 보면 스스로 '연기를 디자인'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을 손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크리에이티브’라는 말에 사로 잡혀 기발해야 하고 남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도 기발하고 남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인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필요 없는 것을 걷어버리는 과정이다. 오해영을 표현하면서 서현진은 오해영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이걸 볼 시청자들도 무엇을 보아야 할지는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필요 없는 것들을 걷어낸다.


오해영이 여전히 서현진을 수식하는 캐릭터인 이유는 간단하다. '남이 좋아할 것 같은 오해영이 아니라, 서현진 스스로 깊이 좋아할 오해영’을 중심으로 오해영을 생각하고 이를 만들었으니까. 그 안에서 홀연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서현진만의 창의. 그녀만의 Creative가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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