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ction] 5가지 문장으로 정리한 서현진의 연
짝패에서부터 '불의 여신 정이'까지 서현진 배우는 작품이 원하는 방향과 요구 조건을 성실히 수행하는 배우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수동적인 배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작품이 원하는 방향과 요구조건에 맞게 연기한다는 건 드라마 내력에 강한 하중이 되는 외력이 아닌, 내력으로 되는 일이니까요. 짝패에서부터 블랙독까지 서현진배우의 연기는 작품의 내력과 외력 간 균형을 지향합니다.
'제왕의 딸, 수백향'은 서현진배우의 기초를 완성한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초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내력과 외력 간 균형점을 찾는 걸 의미합니다. tvN의 '삼총사'와 '식샤를 합시다'는 이를 스스로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또! 오해영'은 탄탄한 기초와 시도를 바탕으로 만든 튼튼한 집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이후 작품인 '낭만 닥터 김사부', '사랑의 온도', '뷰티 인사이드'는 주택단지 혹은 빌딩을 짓기 위한 프로젝트, 리모델링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자신만의 관점이 담긴 건물을 짓기 위한 내력과 외력 간 조화룰 찾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죠.
서현진배우의 모든 게 녹아있는 블랙독은 '직업으로서 배우 서현진'이라는 도시에 걸맞은 랜드마크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블랙독에서는 서현진 배우는 연기 기저에서부터 시작하는 모든 것을 작품 안에서 골고루 배치합니다. 블랙독 구성과 고하늘이라는 캐릭터를 보면 서현진 배우가 '지금까지 가장 기다려온 작품'이라는 이라는 말이 결코 쉽사리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죠.
블랙독에서 서현진은 작품 안에서 어떠한 외력도 가하지 않으며, 오히려 작품 속 내력이 되어 드라마를 탄탄하게 만듭니다. 그동안 단단하게 쌓아온 기획, 표현, 편집력을 통해, 드라마 내력과 외력 사이를 컨트롤합니다. 작품에 담긴 디테일도 끌어냅니다. 블랙독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기적인 구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내력과 외력 간의 밸런스가 맞으면서도 내력이 더 강한 작품이죠. 이를 통해 서현진은 좋은 배우의 기저에 무엇이 있을가에 대해 스스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줍니다.
연기에서 '극단치'를 보여주면 배우가 가진 연기폭이 커집니다. 예를 들어 같은 배우가 스릴러물에서 멜로물로 방향을 바꾸는 경우 장르 간 진폭이 크기에 연기폭도 커집니다. 연출과 카메라 촬영도 이를 뒤받침 하고요. 그러나 서현진배우의 연기폭은 극단치가 적은 편입니다. '극단'이라고 하기에는 잔잔한 편이죠. 그렇기에 그녀의 연기는 변주를 조금만 크게 주어도 연기 자체가 큰 방향성을 가지는 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입니다. 윤서정은 의사로서의 나름 커리어를 잘 쌓아가는 도중 눈앞에서 약혼자를 잃고, 후유증으로 자살기도까지 하죠. 게다가 의학드라마가 가진 감정의 진폭은 '윤서정'이라는 캐릭터가 가 진폭을 더더욱 크게 만들죠. 이와는 다르게 '제왕의 딸, 수백향'에서는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연달아 나옵니다.
그녀의 연기 방향과 흐름 그 자체는 드라마틱한 모습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현진의 연기는 '편집력'이 개입할 여지가 크며, 자연스럽게 연기 폭도 조심스레 바뀌는 편이죠.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아도 '극단'의 변화를 가진 캐릭터를 고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극단의 캐릭터라고 한다고 할지라도 그 수준은 감당할 수준이죠. '묵직함'보다는 한결같음. 이러한 모습은 서현진만의 스타일이며 좋은 배우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제 아름다움이라는 말 대신 스펙터클이 그 자리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짧은 콘텐츠, 이미지 등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가 강한 시대죠. 모든 콘텐츠들은 빠르게 전파돼야 하기에 축약하거나 압축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펙터클을 추구하죠.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자연스럽게 배우뿐만 아닌 모든 이에게 ‘스펙터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걸 '인터넷 밈'이라고도 하죠. 뿐만 아니라, 스펙터클 하게 만들어진 콘텐츠들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다양한 미디어 채널로 많이 공유되어야 하며 조회수도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는 현재 사회가 경험보다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모습은 마치 도심 속 빼곡히 서있는 빌딩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서로 자기가 가진 존재감을 뽐내며 주변을 압도하는 빌딩들. 홀로 빛나는 빌딩 속 공간들. 이러한 모습을 '이기는 건축' 혹은 '승리하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라고 하면 무엇인가 주변을 압도하는 개념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실제로 엄청난 비주얼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작품을 빛내는 압도적인 비주얼과 놀라운 연기력. 저는 이걸 '이기는 연기'라고 말합니다.
이와 반대에 있는 연기는 약하고 부드러워 외부의 다양한 힘을 받아들이는 '약한 연기'입니다. 약한 연기는 배우 그 자체보다는 드라마 안의 다양한 요소들을 흡수해 드라마를 부드럽게 밝히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약한 연기'는 드라마의 내력을 강화시키고 외력을 분산시키죠. 하지만 건축과 다르게 이기는 연기와 지는 연기는 우열함을 논할 수 없습니다. 단지 방향이 다를 뿐이니까요.
서현진의 연기는 '눈에 확 띠는' 강렬함과는 거리가 먼 '약한 연기'에 가깝습니다 한결같이 시나리오에 충실한 캐릭터를 묘사하는 전천후 배우죠.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일관성이 있게 묘사한 후 유유히 사라지죠. 만약 드라마에서 모든 걸 제거한다고 생각한다면 드라마 안에서 반드시 남겨야 하는 건 드라마 안에 존재하는 감정들입니다. 서현진 배우는 항상 그 감정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죠. 또한 그녀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눈앞의 대본을 최고로 생각하고 작품에 최선을 다하기에, 매 작품마다 진심이 담긴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녀를 좋은 배우로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죠.
사람이 무엇인가 시작하는 포인트를 '1'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매일 1%씩 더해 1.01, 1.02 이런 식으로 키운다면 어느 순간에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합니다. 당장은 잘 보이지 않지만 하루하루의 점진적인 개선은 어느 순간 큰 산을 만듭니다. 이러한 발전과 개선은 내력을 튼튼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짝패에서부터 블랙독까지 서현진은 꾸준히 배우로서의 내력을 점진적으로 키워왔습니다. 조연, 주연, 특별출연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작품이 온전히 원하는 방향에 맞추어 세밀하게 설계해왔습니다. 단순하게 캐릭터를 잘 설계하고 묘사하는 성장이 아닌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해석에 기반한 성장이었죠. 무엇보다 '또! 오해영'이후 '낭만 닥터 김사부'와 ' 사랑의 온도'는 점진적인 발전을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현진은 언제나 ‘어제의 서현진’을 뛰어넘고 싶어 합니다. 블랙독에서 서현진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전형적인 주인공에서보다 더 설득력 있는 ‘사회적 초상’을 표현합니다. 고하늘은 지극히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 그 자체입니다.서현진 배우는 이러한 고하늘을 위해 딕션, 표정,감정묘사 에서 그동안 블록처럼 쌓아 올린 연기들을 적절히 더하고 빼며 '어제의 서현진'을 뛰어넘습니다.
‘고하늘’은 서현진 배우가 맡은 배우중 힘이 가장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히려 강하고 유려한 캐릭터입니다. 간결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조선백자 달항아리처럼 말이죠. 서현진 배우는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단단한 연기력을 기반으로 블랙독을 이끌죠. 무엇보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감정'을 다른 어떤 작품보다 극대화합니다.
서현진 배우는 변화를 싫어한다고 인터뷰에서 여러 번 말했는데요. ‘연기’에서 만큼은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성장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블랙독을 통해 우리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한정된 분야를 넘어 그동안 자신을 수식하는 단어에서 스스로 변하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좋은 배우는 더 좋은 드라마를 그리고 더 좋은 경험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그 배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을 느끼죠. 서현진 배우는 그러한 배우중 한 명입니다. 작품을 항상 최우선으로 두며 연기의 기교가 인물, 감정, 이야기 전체를 덮지 않게 경계합니다.
믿고 볼 수 있다는 배우가 있다는 건 언제나 좋은 경험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 관점에서 생각하고 정리한다면 '믿고 보는 좋은 배우'는 즐거운 경험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근사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에요. 어느 자리에서 무얼 하든 상관없어요.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는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는 어느 정도 이루었고 여전히 진행 중인 듯합니다.
'지난 과거를 바탕으로 최선의 미래를 만들라'는 괴테의 말처럼 과거를 바탕으로 탄탄히 만들어진 자신만의 스타일이란 쉽사리 시들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우아함이기 때문입니다. 발행자의 글에서 적었듯이 '이 매거진'에서는 이리저리 흩어진 서현진배우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제 관점으로 모아 엮은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서현진 배우뿐만 아니라 '배우를 보다 더 '직업'혹은 다른 '관점'으로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슈 1을 적어갔습니다.
이슈 1을 마무리하면서 제 관점으로 정리한 서현진 배우에 대한 다섯 가지는 언제든지 사라지거나 서로 합쳐지거나 새로운 스타일로 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제가 살펴본 서현진배우의 궤적들은 모두 과거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서현진배우가 어떤 궤적을 그려갈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건 서현진 배우만이 알겠죠.
**ePUB파일과 PDF 파일은 디자인 정리 후 업로드하고자 합니다.
-브런치 글은 5개이지만, 매거진에서는 4개의 단어로 나누어서 내용의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