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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Jun 15. 2020

서현진의 연기 속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 맥락들

[Context] 서현진의 연기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 맥락들.

q이번 글에서는  서현진배우의 연기 속에서 

은유적으로 발견한 맥락들을 뽑아보았다.


안톤 체호프(BOOK)

안톤 체호프의 글은 일상을 비범함으로 끌어올린다. 출처:http://tonsoffacts.com/

안톤 체호프의 작품세계는 소박하고 평안하다. 

평범하나 그 안에는 다양한 인물들과 감정들이 스며들어가 있다. 

체호프는 항상 사람 사이의 다양한 관계들 그려나갈 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와 

여기서 비롯되는 감정들을 차분히 적어간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와 다르게 체호프는 '일상'에 더 집중한다. 

문학이 현실 세계를 정확히 재현하는 건 아니지만, 

체호프 작품에서는 모든 사소한 일상이 조화를 이루고 

그 덕에 실제 사람들 삶 그 자체와 호응한다. 

서현진이 맡았던 작품 중에서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어딘가에 평범하고 사소한 사람들을 다룬 작품이 많다. 

그녀가 맡은 캐릭터 때문에 그녀의 연기는 화려하지 않고 

얼핏 보면 매 작품마다 비슷해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거창함보다는 '평범함'과 '사소함'을 표현하는 일이 

오히려 어려운 법이다. 평범함을 담아내는 그 자체만으로 

메시지가 될 수 있으니까.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 중

'단단함'이 있는 이유도 아마도 이 같은 연기 색채 때문일 것이다.


조선백자 달항아리.(오브제)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백자 달항아리는 절제와 담백함으로 빚어낸 

순백 빛깔과 둥근 조형미가 일품이다. 

백자는 청자보다 기술적으로 한층 진보된 자기다. 

백자를 만드는 재료는 백토. 

철의 함량이 거의 없이 깨끗하게 정선된 백토로 성형한 후 

청자보다 높은 온도인 1250도 이상에서 굽는다. 

백자라고 하면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백자는 도자 기술의 끝이자, 완성이라고 할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기술이 축적되어 만들어졌다.

자기 반죽 성형 두 개를 붙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완벽한 대칭이 아니다. 출처: 문화재청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다른 백자와 다른 점은 

가운데 이음 부분이다. 조선시대에는 백토 품질이 좋지 않아 

하나로 성형하면 주저앉아 버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두 부분을 만들어서 붙었다. 

이 이음 자국은 두 개를 성형해 붙이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있다. 

완전한 하나의 항아리 형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지러진 형태로 인해 다른 멋이 난다.


백자의 우윳빛 표면에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손으로 만지면 절로 달라붙는 질감, 그 온기와 자연미. 

예리함 뒤에는 온유와 겸손함이 담겨있다. 

그 멋은 각도, 햇빛,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청화백자의 화려하고 강렬한 멋과 

다르게 ‘한결같은 부드러움’ 멋을 내뿜는다.


JTBC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한세계 (서현진)를 청화백자에 비교하는데,

서현진의 연기가 추구하는 결은 청화 백자보다 백자에 더 가깝다.
대본에서 충실한 연기. 오랜 시간 동안 단단하게 다져진 내공.

 여기서 나오는 서현진의 한결같은 연기는 백자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닮았다.


콘크리트(오브제)

출처:unsplash.com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물, 모래, 자갈 그리고 강도를 위한 골재 및 혼화재료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굳힌 혼합물이다. 로마시대부터 콘크리트 기술을 활용해 건물을 만들었으며, 철근을 넣어 강도를 높이는 건 일반적이다. 콘크리트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했으며 여전히 건물을 만들 때 사용한다.


인류 역사는 콘크리트를 통해 건물을 만들었다. 동시에 점진적으로 콘크리트 기술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제약을 극복했다. 콘크리트는 시멘트, 물, 모래, 자갈이라는 단순한 재료를 사용하기에, 철과 유리를 사용한 건물에 비해 덜 역동적이고 단순하게 지을 수밖에 없다는 제약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 때문에 콘크리트는 고요하거나 차분한 고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 같은 경우  콘크리트는 그의 건축을 대변하는 단어인데, 자신만의 콘크리트 배합을 만들어 사용해 콘크리트가 가진 멋을 극대화한다.


콘크리트는 건물 골격이자 각종 외력들을 이겨내야 한다. 건축물의 구조기준 등에 관한 규칙의 제1절 구조설계의 원칙[개정 2009. 12. 31.] 제2장 구조설계 제1절 구조설계 원칙 제4조(안전성)에서 따르면 모든 건물은 고정하중, 적재하중(활하중), 지붕 적재하중(지붕 활하중) 적설하중, 풍하중, 지진하중 등을 견뎌야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건물 내력이 외력보다 강해야 건물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빌라 사보이에서 선보인 필로티는 콘크리트가 가진 내력을 다양한 환경에서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열었다.  archdaily.com

이를 사람에게 확대해보자. 사람도 무너지지 않으려면 내력이 강해야 한다. 자신의 내력을 어떤 방식으로 단단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외력을 견뎌내며 발전할 수 있다. 콘크리트 같은 경우 재료 배합과 골격에 따라서 하중을 견디는 내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콘크리트 배합처럼 우리도 각자마다 자신을 견고하게 하는 내력이 있을 거다. 이를 어떻게 배합하는가에 따라 내력. 즉, 자신만이 가진 견고함은 더더욱 커진다. 수많은 배합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체력은 모든 내력에 들어갈 거 같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외력(겉에 보이는 결과물)에 지나치게 관심을 많이 요구하다 보니 내력이 가진 중요성과 이를 기르는 시간이 생각보다 간과되는 면도 적지 않다. 자 이 글은 배우에 관한 글이니 이를 배우에 적용해보자.

드라마 스토리가 탄탄한 내력을 가지는 경우 '이미지'가 강한 배우 이미지를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반대의 경우 드라마 흥행과 무관하게 드라마 구조는 무너진다. 출처: 넷플릭스

어떤 배우는 그 자체로 드라마 영상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일부다. 단지 드라마 자체가 그 배우의 내력과 잘 맞았을 뿐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만드는 그 자체는 철저한 팀플레이이다. 즉 내력 와 외력이 조화를 이루는 견고함이 필요하다. 아쉬운 점은 요 근래 배우 그 자체가 드라마 콘텐츠 판매를 위한 브랜드로만 인식하는 시각이 적지 않기에, 드라마에 강한 압력을 가하는 외력이 되어 드라마 자체를 흔드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대표적인 예가 최근 종영한 '더 킹: 영원의 군주') 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이를 말하지 않는다. 드라마 판매 잘되기 때문이다.

배우의 내력은 드라마에게는 강력한 외력이 된다. 그 사이 균형을 잡는 일은 배우에게 매우 중요하다. 출처: 티빙

콘크리트 배합은 드라마 스토리 속 모든 요소이며, 철골과 거푸집은 배우, 카메라, 조명, 메이크업, 의상 등은 대본을 영상으로 바꾸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의 핵심인 스토리를 영상으로 바꾸는 일은 콘크리트를 잘 배합하고 이를 철골과 거푸집에 잘 붇고 굳히는 일과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드라마(영화)에 더더욱 필요한 건 드라마 내력을 단단하게 해 줄 배우들이다.

드라마 자맥(2019)은 드라마 내력이 강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도 그 안에서 풍성하다. 출처: 티빙.

드라마에서 보는 화려함과 스펙터클은 지극히 일부다. 드라마(영화) 속 화려함을 걷어내 보자. 오히려 그 안에는 거푸집, 철골 같은 역할을 지향하는 배우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드라마가 흔들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아는 대로 서현진은 화려함보다 거푸집, 철골 같은 배우 쪽에 속한다.


가라몬드 서체(오브제)

우아하고 세련된 고전 서체는 가라몬드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출처:medium.com

가라몬드서체는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가진 전형적인 고전 활자체다. 가로와 세로획의 굵기 대비가 상당히 낮아 서체를 사용하면 페이지에서 밝은 느낌이 난다. 문서 디자인 본문 글꼴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다. 가라몬드서체는 여전히 아름다운 본문용 서체뿐만 아니라 품격 있고 부드러운 서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5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다 보니 각기 다른 방식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튀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디자인으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디자인에 무척이나 좋다. 그렇다고 개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라몬드 서체는 변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단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서체다. 이러한 명성과 전통에 힘입어 오늘날에는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한 디지털 가라몬드 폰트를 만나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루브르 박물관, Adobe사의 'Garamond’, ‘애플 전용 서체로서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만든 'Apple Garamond’ 서체가 있다. 작품 안에 튀지 않으면서도 오랜 시간 안정적이면서도 단단한 연기을 보여준 서현진배우에게서 가라몬드서체를 떠올릴 수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창문 앞에선 젊은 남자. 구스타브 카미유보트, 1875.(PAINTING)

창문 앞에선 젊은 남자. 구스타브 카미유보트, 1875. 캔버스의 유화. 출처: 위키디피아.

구스타브 카미유보트는 예술학교 출신이 아니다. 엔지니어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공간 기하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그림에 그대로 반영했다. 그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극적인 시점, 엄격한 원근법이 두드러진다. '창문 앞에서 선 젊은 남자'에서 카미유보트는 등을 올리고 있는 인물을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그가 보고 있는 시각에 정신을 집중시킨다.


그는 이 그림에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바라본 도시 공간들. 밝은 햇빛, 강한 그림자, 닫힌 덧문, 펼쳐진 차양, 발코니와 장식 등 당시 파리의 일상 모습들을 조화롭게 묘사했다. 또한 그림 안 시점을 정확하게 컨트롤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림 구성과 관람자의 경험을 모두 계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자체는 전통적인 기법에 가깝고 구스타보 카미유보트만의 화풍을 상대적으로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인상주의가 추구한 ‘즉흥’과 ‘일상’은 그림 속에 모두 담겨 있다.


서현진은 작품이 캐릭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도에 집중한다. 작품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캐릭터를 설계하며 대본 안에 존재하는 시점에 집중해 연기한다. 그녀는 이러한 밑바탕을 가진 채로 언제나 일상 속 평범함, 그 안에 담긴 '감성'을 연기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이 그림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J.M.W. 터너, '눈보라, 항구 어귀에서 표류하는 증기선',1842.(PAINTING)

'J.M.W. 터너, '눈보라, 항구 어귀에서 표류하는 증기선',1842. 출처: tate. britain

윌리엄 터너는 자연을 관찰해 이해한 결과를 시각적 효과로 결합시키려고 무척이나 애썼다. 그는 파도든 구름이든 섬광이든 자연이 가진 힘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자연이 가진 변화무쌍함을 ‘색’으로 재현하는 일이야말로 풍경화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배우에게 적용하면 자연은 작품이며, 그 안에서 파도, 구름, 섬광은 캐릭터다. 작품에서 변화무쌍하게 변화는 캐릭터를 자연스러움으로 재현하고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배우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닐까?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산중의 십자가',1808.(PAINTING)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산중의 십자가',1808. 출처: 위키디피아

이 그림은 숨이 막힐 정도로 먹먹하다. 그림은 단순하다. 바위 산 위로 십자가가 높이 치솟아 있다. 그렇다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부각한 십자가도 아니다. 19세기 유럽을 여행하던 사람들이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다. 게다가 방향을 어색하게 돌리고 있다. 바위에서 힘차게 솟아 나온 전나무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인다. 쉽게 해석할 수 없는 그림이다. 전체 풍경도 시선을 고정할 전통적인 원근도 없다. 주제를 암시하는 뚜렷한 표시도 없다. 지극히 평범한 십자가. 그러나 이 그림에는 평범한 속에 담긴 숭고함이 있다.


세상에는 어떤 평범한 사람도 이야기도 없다. 오직 시선과 묘사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은 오히려 평범한 일상이 얼마든지 우리에게 새로운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음을 전한다. 평범함이 가진 아름다움. 보통이 가진 비범함 그것은 화려함도 아닌 가뿐함과 차분함이다. 서현진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은 받는 건 이러한 '평범함'이 가진 아름다움을 작품에서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루도비코 아이나우데 Four dimension(MUSIC)

루도비코 아이나우데의 음악은 한결같이 고요하며 섬세하다. 고요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음색과 선율. 차분히 퍼지는 윤슬 같은 선율. 그는 음악을 통해 평범한 일상 속에 담긴 우아함을 선율로 가져온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놀친 일상들이 새롭게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nvnGOAqe6aU

레인보우 99의 ‘Night bus’&박혜지(MUSIC)

영상에서 그들은 어두운 밤거리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몽환적이면서도 처연한 선율. 지나가는 자동차,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불빛.‘주차금지’ 표시판. 더러워진 갓길 벽. 이러한 풍경을 선율로 묶어내 특별한 영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평범하다고 느낀 일상에서 낯섦과 새로움을 느낀다.


서현진의 연기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작품을 거듭할수록 감정을 담아내는 폭이 깊어지고 있다. 단단하면서도 세밀한 묘사.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친 순수한 감정을 포착하고자 한다. 마치 조용한 밤하늘 같은 면이 적지 않다. 밤하늘의 별이 하나씩 하나씩 빛나며 전하는 촉촉함. 평범함을 새롭게 묶어내는 서현진 배우의 연기를 이 음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9Cs8_WJ7rI


서정적인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Sufjan Stevens의 Carrie & Lowell와 'Should Have Known Better'(MUSIC)

수프얀 스티븐스는 영화 <Call Me by Your Name> 사운드트랙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뮤지션으로,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일렉트토닉, 바로크 팝, 오케스트라 세션 등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음악적인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힙스터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 평론계에서 인정받는 뮤지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GTgkRCp89M&t=366s

<Carrie & Lowell>(2015) 앨범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계부를 주제로 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음악으로 담담하게 표현한다. 수프얀의 음악들은 감미로우면서도 부드럽고 차분하다. 앨범 수록곡 중에서도 'Should Have Known Better'는 유독 잔잔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가졌다. 서정적이면서 시적인 고요한 정서를 가진 음악이다.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는 유독 서정적이다. 튀지 않지만 조용한 감정을 담은 그의 음악은 평범함속에 담긴 소중함을 무척이나 차분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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