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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Jul 21. 2020

디자인은 어떻게 일상에 스며드는가.

더 콘비니: 브랜드는 어떻게 일상을 아름다움으로 묘사하는가

소니는 긴자 금 싸리기 땅에 공원을 지었다. 이름하여 소니 긴자 파크. 공원 옆에는 일본 유리 공예인 에도 키리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도큐 플라자 긴자가 있다. 반대편에는 화려한 에르메스 건물이 있다. 이 비싼 긴자 땅에 공원을 지은 소니는 정신이 나간 걸까? '비씬 긴자 땅에 공원을 FLEX 해버렸지 뭐야?'일까? 


소니는 우려와 다르게 긴자 소니 파크를 통해 브랜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2018년에만 500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소니 자체에서도 이미 긴자 소니 파크를 플레이스테이션과 동일하게 취급할 정도니까. 나무 바닥을 보다가 눈을 돌려보면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계단이 보인다.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음악과 함께 편의점이 하나 보인다.

'더 콘비니'라고 적힌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를 꺼낸다. 포장이 살짝 이상하다. 상관없다. 음료인 줄 알았는데 음료가 아니다. 티셔츠가 들어있다. 두 눈을 비비고 냉장고를 다시 본다. 삼각김밥 포장에는 타월이 있고 음료통에는 양말이 들어가 있다. 편의점인데 편의점이 아니다. 

더 콘비니의 물건은 편의점물건포장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옷이 음료통과 우유케이스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분명 편의점은 맞다. 물론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가 다시 한번 간판을 본다. '더 콘비니'. 분명히 편의점이 맞다. 편의점이라고 간판은 붙어있지만 '패밀리마트'같은 편의점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곳은 일본 스트리트 패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후지와라 히로시의 프라그 먼트 디자인이 만든 '더 콘비니' 팝업스토어다.


예술은 사회를 찬양하기도 하지만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팝아트는 후자다. 팝아트는 대량생산 상품을 실크스크린 혹은 캔버스에 경박스럽게 묘사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상업주의 사회를 비판했다. 특히 앤디 워홀은 메릴린 먼로, 모나리자, 켐벨 수프, 코카콜라를 통해 자본주의 속 매몰된 개개인의 개성을 꼬집었다.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 lalovingcup.com

이제 사람들은 경박스럽지만 냉철하게 사회를 비판한 팝 아트 그 자체를 변형시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다.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그린 명작이지만 모나리자가 그려진 머그컵은 무엇일까? 오히려 모나리자가 그려진 머그잔은 누군가에게는 예술을 삶에서 들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루브르 미술관에 방문한 기념으로 모나리자 머그잔을 구입했을 수도 있다. 모나리자 머그잔은 누군가에게는 컵. 누군가에게는 모나리자와 루브르를 추억하는 일지도 모른다. 앤디 워홀은 모나리자를 실크스크린으로 그려내며 대량생산 속에 매몰된 사회를 비판했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걸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맥북은 알루미늄 물성이 돋보이는 오브제, 공학도에게는 최고의 엔지니어 예술일지 모른다. 출처: 애플

누군가에게 맥북은 알루미늄 금속 덩이리. 하지만 누군가에는 예술품이다. 밀링머신으로 깎아낸 곡선은 알루미늄이 가진 물성을 고스란히 전한다. 엔지니어들에게 맥북은 현시대 최고 기술을 담은 아름다운 공학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 중심에는 맥북을 만든 '애플'이라는 회사가 있다. 맥북을 보며 사람들은 애플을 생각한다. 애플 제품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매우 구체적으로 투영한다. 구글에서 'apple'을 검색하면 과일이 아닌 'apple.co'가 먼저 나온다. 이런 면에서 브랜드는 아름다움을 일상 속에 실제적으로 스며들게 하고 있다. 예상과 다르게 예술은 실용성을 가지게 되었고 경계는 모호해졌다.


프라그먼트디자인을 이끄는 후지와라 히로시. 일본 스트리트 패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의 작업물은 일상을 '뒤틀어보는' 디자인이 많다. 피카추, 나이키, 스타벅스를 비롯해 많은 브랜드와 협업하는 그는 브랜드와 디자인이 어떤 방식으로 일상에 작은 즐거움을 주는지 알고 있다. '디자인이 어떻게 아름다움과 현실 간 틈을 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만큼 좋은 대답을 하는 이도 드물다. 소니 긴자 파크에 자리한 '더 콘비니'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안 중 하나다.

더 콘비니. 컨비니언스 스토어. 편의점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 가게에서는 모든 물건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형태로 진열했다. 더 콘비니는 '디자인이 일상을 어떻게 뒤집어 볼 수 있는가?'라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동시에 '더 콘비니'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통해 후지와 히로시는 는 ' 당연한 걸 꼭 당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다소 발칙한 질문도 던진다.

더 콘비니는 과격한 예술이 아니다. 티셔츠를 포장 통을 바꾸고, 수건을 삼각김밥 형태로 포장한다. 여기에 가격표만 붙였을 뿐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은 시도가 '예술'을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질문으로 변한다. 그렇기에 '더 콘비니'에서 물건을 사면 '예술품을 산 건가? 티셔츠를 산건가?' 분간하지 힘들다. 일상을 뒤집어 보는 시도. 이를 통해 느끼는 잠시나마의 새로운 경험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다.

'더 콘비니'는 브랜드가 어떻게 일상을 묘사하는지 보여주며 옷과 편의점이라는 요소가 어떤 디자인 형태로 일상을 구축하는 보여준다. 더 콘비니는 매장 그 자체로 '디자인의 역할, 편집, 정보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할 뿐이다. 이게 바로 '더 콘비니'가 추구하는 목표다.

이제 브랜드는 아름다움을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출처: 무신사,하압비스트.

예술과 디자인이 우리 안에 들어올수록 우리가 예술을 생각하는 관점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무신사가 진로하이트와 협업으로 가방을 만들고, 로우로우가 나사와 협업을 한다. 진로와 커버낫이 콜라보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 '실제로 그것이 일어났다!'라고 하지만 그 '실제'안에는 매우 구체화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프라드먼트디자인x나이키x사카이 LD 와플 콜라보. 왼쪽이 후지와라 히로시. 출처:nssmag.com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아름다움도 우리들 마음속을 더욱 비집고 들어온다. 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리셀가도 높은 지드래곤과 나이키의 협업 신발.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는 시간이 지날수록 에어포스 신발 겉면이 벗겨지게 설계되어있다. 신발 겉면이 벗겨지면 지드래곤이 추구한 '아름다움'이 신발 주인 앞에 펼쳐진다. 지드래곤의 생각이 '에어포스 1' 신발안에 설계된 셈이다. 브랜드가 만드는 아름다움은 조각, 회화보다 더욱 사람들에게 애착을 갖게 한다. 그 애착은 리셀가에 반영된다.


캡슐 컬렉션이 정례화되고 브랜드 간 경계를 파괴하는 다양한 콜라보가 익숙해진 요즘 시기에 '더 콘비니'는 새롭기보다는 '브랜드가 아름다움의 영역을 표현하는 경계는 제한할 수 없다'를 전한다. 그런 면에서 더 콘비니는 2020년대 팝아트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오히려 브랜드가 팝아트를 흡수해버렸을지 모른다.


최근 '프라그 먼트 디자인 X 사카이 X 나이키'의 와플 시제품이 공개되었다. 언제나 흥미진진한 협업이 넘쳐나는 스키커즈씬은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사카이와 나이 키간 협업 물인 'LD와플'이 워낙 반응이 좋았고 여기에 프라그 먼트 디자인의 합류는 스니커즈 마니아들을 흥분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다들 속으로 말한다. '이번에도 내 거는 없을 거야.' )

디올은 조던(나이키)과의 협업 캡슐 콜랙션으로 스트리트 패션이 가진 역동성은 온전히 흡수했다. 출처: 디올.

하지만 요즘 가장 뜨거운 협업은  '나이키 X 트레비스 스캇'과 에이 디올이다. 특히 에어 디올. 디올은 나이키와 협업을 통해 디올이 가장 부족했던 '스트리트' 이미지를 제대로 가지고 왔다. 물론 디올 남성라인 디자이너인 킴 존스는 이미 컨버스 신발 등을 선보이며 스트리트 문화를 점진적으로 디올에 가져오는 일에 성공했지만 '스트리트 패션'이 가진 역동성을 그 자체를 디올에 흡수시키지 못했다.


과거 에디 슬리먼이 디올에 록 음악을 가져오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스트리트 패션이 가진 자유로움은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에디 슬리먼은 록음악을 디올이 가진 우아함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킴 존스는 거칠지만 역동적이고 동시에 우아한 '스포츠 정신'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조던'을 통해 디올에 '스트리트 패션, 도전'이라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넣었다.

킴존스는 슈프림,아티시트 채프만 형제와 협업을 통해 루이비통 남성라인에 천천히 역동성을 집어넣었다. 출처:crfashionbook.com

이미 킴 존스는 루이뷔통 남성복 디자이너 시절 슈프림과 콜라보로 스트리트 패션이 가진 '역동성'을 가져왔다. 킴 존스의 시도는 루이비통에 새로운 흐름이 들어올 수 있는 주춧돌을 놓았다. 이는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을 보수적이면서도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브랜드로 나아가게 하는 포석이 되었다.


에어 디올을 통해 디올은  '변화에 대한 유연함'을 수혈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이키는 조던을 통해, 오프 화이트에서 디올까지 하이엔드 패션 하우스를 비롯한 많은 브랜드,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창구 그 자체가 되었다. 어쩌면 나이키는 자사를 대표하는 스니커즈를 통해 수많은 브랜드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는 힐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브랜드 가치는 신발 리셀가가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으니까.


예술가가 전하는 아름다움은 독립적이다. 하지만 브랜드와 브랜드가 전하는 아름다움은 서로 부족한 아름다움을 가져오거나 채운다. 브랜드 간 협업을 통해 누군가는 탱커가 되고 누군가는 힐러가 되는 셈이다. 브랜드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 어쩌면 예술이 가진 역동성은 오히려 브랜드가 더 많이 가져갔는지 모른다. 브랜드는 상품 혹은 서비스를 통해 삶을 유택하게 만드는 매우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전하니까.

디자인과 브랜드가 일상의 단면을 차곡차곡 쌓아갈수혹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더욱 구체화된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WMF function4의 우수한 열전도는 음식을 만드는 재미를 준다', 언더아머의 히트 기어 레깅스는 '숨 차오르는 환경에서도 땀과 열을 배출하며 보다 효과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게 돕는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사람을 향하기에 실용적이며 삶 속 기쁨이다. 삶 속 소소한 즐거움이 쌓여 삶 속 아름다움을 만든다. 브랜드가 아름다움을 전하는 방식은 예술과는 그 방식이 전혀 다르다.

이제 예술은 갤러리와 미술관에 머물지 않는다. 예술은 이제 갤러리에서 브랜드로 옮겨간다. 깊은 성안에 갇힌 라푼젤과 같았던 아름다움은 이제 토이스토리의 버즈가 항상 외친 '무한한 우주를 향하며~'라는 메시지를 같이 우리 삶 속으로 향할 뿐이다. 아마도 브랜드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가장 만질 수 있는 동화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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