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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Sep 01. 2020

큐레이션에 대하여.

큐레이션은 관점을 만드는 회색지대에 자리한다.

큐레이션은 사람에게 독립적인 관점을 세우는 계기를 만든다. 큐레이션은 고객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휘발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 돕는다. 큐레이션은 기초체력을 다지는 지식에서부터 관점을 끌어내는 지식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정보를 모두 다 조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선별해야 한다. 큐레이션 서비스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서비스 이용자의 '개인 지식 최적화'다. 이 같은 목표를 위해 위해 큐레이션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큐레이션은 구성요소, 연계 산업, 고객이 원하는 방향과 품질확보 등 고려해야 할 범위가 너무 넓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큐레이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발에서부터 선별'까지 조율하는 역할, 즉,  ‘컨트롤 타워'를  맡아야 한다. 이러한 역할은 주로 자신이 이미 어느 정도 충분히 자료를 선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맡는다.


큐레이션을 내세운 서비스 강점은 여전히 자신이 어떤 정보를 봐야 하는가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주식, 경제, 미디어, 마케팅, 요리 등등 관련 자료와 책을 읽고 싶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책과 정보에서 시작해야 할지 할지 막막하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료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큐레이션은 이 질문을 돕는 조력자다. 출처:unspalsh

대형서점에 가보자. 공간은 넓다. 책은 쌓여있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 포털 사이트에 가보자. 역시나 정보는 많다. 무엇부터 읽어야 하는가? 책과 정보기 너무 많으니, 어디에 가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결국 눈에 가장 잘 보이는 베스트셀러, 한눈에 들어오는 기사만 보는 수밖에 없다.


그 이전에 우리는 왜 큐레이션이 왜 주목받기 시작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큐레이션은 기존 정보를 그냥 전달하기만 했던, 우리가 12년 넘게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주입식으로 받은 지식에 대한 반발이다. 그렇다고 반발만 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건 아니다. 큐레이션은 그 해결책의 선두에 서서, 사람에게 스스로 정보를 선별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단순히 큐레이션만 하고 사라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큐레이션 서비스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초심자가 어렵다고 느끼는 정보를 읽을 수 있도록, 책이나 정보가 무섭지 않다고 안심을 시켜야 한다.

수많은 큐레이션과 뉴스레터가 나오는 이유는 단순히 마케팅을 넘어, 관점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큐레이션은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 많이 듣던 단어였다. 출처:unspalsh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기 전까지 '큐레이션' 개념은 희미했다. 그나마 큐레이션과 큐레이터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축에 속한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는 전시를 기획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큐레이터라고 불리었다. (자료 선별은 기본이었다.) 전시회 안에서 작품을 설명해주는 사람을 도슨트라고 명명해, 기획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큐레이터와 그 개념을 분명하게 나누었다. 큐레이터와 도슨트를 나누는 기준은 '편집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름대로 관점이 있는 이들은 오히려 큐레이션에 무덤덤하다. 일단 지식을 충분히 판단을 할 수 있는 이들은 큐레이션 자체가 매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대신 고른 ‘정보’를 선별한 서비스를 볼 동기가 약하다. 반면에 초심자들은 다르다.

그렇다면 큐레이션은 지식이 충분히 쌓인 사람들만 이용하나? 이런 생각이 더 위험하다.


많은 뉴스레터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관점을 정제한 결과물이다. 관점을 최적화한 후, 뉴스레터의 브랜딩과 버무려 구독자들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장단점은 상호보완적이다. 하지만 이 장점과 단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1. 큐레이션은 관점을 키워주지 않는다.

큐레이션은 '관점'을 만드는 건 보장하지 않는다. 관점은 자신의 생각이 만든다. 이건 결코 변하지 않는다. 출차:unsplash

큐레이션 서비스를 이용할수록 '나만의 관점이 자란다'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오히려 큐레이션을 통해 편집된 자료들은 누군가를 거친 '정체된 결과물'이다. 오히려 큐레이션을 통해 성장하는 이들은 정기적으로 전달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이다. 오히려  관점이 뚜렷한 이들에게 큐레이션 서비스는 '나와 다른 관점에 접근하는 이들 생각'을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반면에 관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큐레이션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을 다시 말하는 일은 남이 만든 관점을 다시 말하는 일에 불과하다.


큐레이션 된 내용을 본 후, '나의 관점이 자랐다'라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큐레이션 서비스로 오는 그 자료를 을 내가 '얼마큼 이해하는가? 꾸준히 잘 소화하고 있는 거?'에 주목해야 한다. 큐레이션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체크하는 게 더 좋다는 이야기다. 큐레이션 서비스는 자신을 극 개방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계기로도 삼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 비즈니스 인사이더를 오랜 시간 동안 보고 있는데,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남이 적은 관점을 자기 관점이라고 착각하면, 소위 '지식 소비자'에 머물 뿐이다. '관점이 있다고 착각하는 일'은 큐레이션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쉽게 '큐레이션 된 내용'이 나에게 전해진다고 해도, 그 너머에 담긴 '선제' 지식을 먼저 알지 못한다면 소용없다.  결국 스스로 무언가를 햐지 않으면 관점은 자라지 않는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큐레이션 서비스는 '해설서' 혹은 '인강'과 유사한 면이 적지 않다.


2. 큐레이션 서비스는 오히려 

쉽게 관점을 만들게 돕는 도우미다.


자칫 큐레이션 서비스를 비판하는 의도도 보일지 모를 수 있겠지만, 내 의도는 그렇지 않다. 큐레이션 서비스는 '나만의 관점이 있다'는 착각을 줄 수 있는데 이게 나쁜 건 아니다. 큐레이션 서비스는 '다른 이가 제시한 관점이 자신의 관점임을 착각하는 태도' 그 자체를 깨닫게 돕기도 한다.

현실 고증에 철저한 드라마가 때로는 새로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밀의 숲에서 다루는 검경 조사권 같은 경우가 대표적. 출처: 넷플릭스

편집된 뉴스레터를 보며, ‘이슈’를 알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슈를 기반으로 내가 일하는 분야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추적해 내 관점으로 최적화해야 한다. 비밀의 숲 시즌2에서는 검경 수사권을 다룬다. 이미 우리는 검경 수사권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형사소송법' 등. 법 내용을 우리가 모두 알기 어렵지만, 드라마를 통해 보다 말랑말랑하게 검경 수사권을 알았다면? 왜 그런지 스스로 찾아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난 국회에서 통과된 공수처 법안을 보며, 검경 수사권이 어떻게 조정이 됐는지 살펴보고, 이를 이해하고 생각하면 그 작은 생각은 내 관점을 만드는 주춧돌이 된다. 즉, 큐레이션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이를 주출돗 삼아 자신만의 관점을 점차 키워나가야 한다.

비밀의 숲 시즌2를 디딤돌 삼아 보자. 이 낯선 도표가 조금은 친숙해질 거다. 큐레이션은 낯섦을 친숙하게 바꾼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단어다. 출처:korea.co.kr

'관점'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들은 큐레이션을 통해 '선별된 정보'를 읽은 후가 더 중요하다. 항상 정보 그 자체를 비판하면서도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해야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큐레이션' 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다른 시각으로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큐레이션이 정보를 걸려줄지 몰라도, 관점을 길러주지는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동시에 그 중심에는 '내 관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극 개방적 태도가 먼저 있어야 한다.


큐레이션 서비스가 가진 강점은 ‘스스로 판단하고, 이를 비판할’ 계기. 개방적인 사고의 토대를 다지는 기초를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정보가 너무 많기에, 만일 관점을 충분히 가진이들이라도 흐름을 놓칠 수 있다. 누군가의 편집. 큐레이션을 보면서도, 이 의견이 내 관점과 어떻게 다른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오히려 큐레이션 서비스 자체를 보고 '이거 이미 다 아는 거!'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 이런 면에서 큐레이션 서비스가 도달한 도착지에는 '왜 질문을 해야 하는가? 질문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만이 있을 뿐이다.

턱걸이를 하기 위해서는 견갑골을 비롯한 전신 근육이 먼저 자라야 한다. 요령도 지름길도 없다. 출처:unsplash

운동을 처음 한 사람에게 시작부터 풀업을 하라는 건 미친 짓이다. 어깨 근육을 푸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한다. 풀업을 위해 어깨 근육을 열어주는 일부터 시작하고 밴드를 이용해 견갑근을 키워가는 방법부터 천천히 알려줘야 한다. 매달리는 과정을 거쳐 등근육이 자라야 비로소 풀업이 가능하다. 유튜브에 나온 수많은 운동 영상을 보라. 다들 같은 말을 한다.'어깨 깡패! 풀업이 최고예요! 하지만 풀업을 처음부 너 한다고요? 일단 매달리세요!'라고 말한다. 힘콩, 바벨 라토르, 빡빡이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 다 마찬가지다.


만일 우리가 특정 지식을 더 알고자 한다면, 그 지식을 아는 과정에서 생길 고통들을 전부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한다. 낯선 용어들, '시간'에 대한 투자 등등 말이다. 만약 당신이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그 시간을 줄여야 한다면? 줄여야 한다. 더 알고 싶은 그 과정에 발생하는 고통. 그 고통을 받아 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서브프라임을 포함한 2008년 금융위기를 더 심도 있게 이해하고 싶다면? 거시경제 기초지식과 모기지 채권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선순위 채권과 지급구조, 모기지 담보부증권, 자산유동화증권 등등 이와 관련한 모든 단어를 알아야 한다.


큐레이션 서비스는 관점을 키우기 위한 지식 허들을 낮추는 문턱으로 보아야 하며, 큐레이션 서비스 그 자제를 '전부'이자, 관점을 키워준다고 쉽사리 생각해서는 안된다. 큐레이션 서비스를 통해 잘 모르던 정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 이후 궁금한 건 스스로 찾아 소화해야 한다.

피드백은 뉴스레터 서비스가 구독자들 간 관점 차이를 0에 수렴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모든 큐레이션 서비스는 어찌 되었든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추어 콘텐츠를 최적화시킨다. 동시에 그 결과물들을 구독자들에게 보낸다. 동시에 자신들 콘텐츠와 구독자들 간 '관점'을 '0'에 수렴시키기 위해 지속해서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한다. 많은 뉴스레터 마지막에 '피드백을 주세요'라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은 '내 관점을 당신 관점에 좀 더 맞추고 싶다'는 의미다. 이런 면에서 큐레이션 서비스는 관점을 '소비'하는 일과 '생산'하는 회색지대에 존재한다. 만일, 당신이 큐레이션 서비스에서 보내는 뉴스레터를 본 후, 그 안에서 무엇인가 미진하다던가 혹은 단어 사용이 적확하지 않음을 느꼈다면? 그건 조금씩 당신 관점이 생기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다.


우리 모두 각자만의 통찰력을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순탄치 않다. 생각보다 귀찮다. 그렇기에 큐레이션 서비스는 누군가에게 관점을 키우기 위한 그 첫 단계로 유용한 서비스다.'큐레이션'은 지식을 최적화하는 일환 중 하나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동안 꾸준히 쌓아온 지식을 '최적화'할수록, 점같이 쌓인  당신의 지식은 어느 순간부터 선에서 면으로 커진다. 이를 묶어낸 결과물이 자신만의 관점이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양질의 정보를 골라내고, 그 정보가 제 가치를 발휘하도록 정리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명쾌한 아이덴티티를 갖게 하는 일이다. 최적화는 그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과정에 있다. 우리 모두 매일매일 자신을 최적화시키는 '최적화의 시간'속 어느 지점에서 살아간다. 큐레이션은 그 발견의 지평을 계속 넓히는 과정이며, 동시에 나 스스로가 '최적화의 시간'중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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