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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Oct 27. 2021

로컬스티치. 공간은 사람이 채워요.

공간은 꼭 세련되야할 필요는 없다.공간을 채우는건 사람이니까.

로컬 스티치 서교 2호는 로컬 스티치 서교와 성산 사이에 위치한 [코워킹&리테일] 공간이다. 1인 가구와 동네 주민을 위해 기획된 곳이다. 오랫동안 동네슈퍼가 자리했던 건물을 개조한 로컬 스티치 서교 2호. 1층에는 동네슈퍼를 개조한 슈퍼 스티치가 있다. 이곳은 1인 가구와 동네 주민을 위한 신개념 동네슈퍼다. 슈퍼 스티치 안에는 주문 즉시 조리하는 신선한 도시락, 카페 요호, 말레이시안 레스토랑 아각아각, 이탈리아 정통 티라미수를 선보이는 아이엠 티라미수가 입점했다. 또한 로컬 스티치가 큐레이션 한 생필품 판매한다. 지하 1층에는 바로고'와 함께하는 '도시 주방'의 일곱 브랜드가 입주해 있다. 2층에는 2-5인 규모의 오피스와 라운지, 회의실을 포함한 업무 공간이 있다. 또한 반려동물 동반입주 및 방문도 가능하다.

로컬 스티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기획, 표현, 편집력을 어떻게 극대화할지 고민한다. 이에 대한 자신들만의 비전과 제안을  ‘로컬 스티치’라는 공간에 담아 개척하고 있다. 로컬 스티치가 생각하는 거주공간과 일터는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그들은 로컬 스티치 안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을 전하는  ‘미디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방문객들이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공간. 이것을 위해 로컬 스티치 속 모든 기획들은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동시에 그 제안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렇기에 로컬 스티치는 솔직하고 연결을 지향하는 느슨한 공간에 가깝다.

세련됨. 화려함과 거리가 먼 날것의 공간이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의 첫인상이다.

[이번 글은 서교동에 위치한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에 한정된 글이다. 그렇기에 로컬 스티치가 지향하는 방향을 모두 담지 않을 수 있다. 로컬 스티치는 '로컬'에 집중하다 보니, 각 지점마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로컬스티치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로컬 스티치는 공유. 그 중심에 있는 사람에 집중한다. 출처:로컬스티치 홈페이지.

로컬 스티치의 시작은 동네 호텔이다. 동네 호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동네 호텔을 운영하는 동안 그들은 기존과는 다른 일과 삶이 생겨나는 것을 보았다. 동네 호텔에 머물던 사진작가는 그곳을 자신의 집. 혹은 작업실처럼 이용했다. 단기 숙박을 하던 프리랜서는 다른 멤버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에서 로컬 스티치는 일과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다.

2층 코워킹 공간도 느슨함이 흐른다.

호텔은 아니다. 그렇다고 셰어하우스도 아닌 공간을 생각했다. 그들은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공간에 코 리빙, 코워킹을 더하기로 했다. 이렇게 생겨난 게 로컬 스티치다. 로컬 스티치는 멤버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원하는 방식과 모습으로 일하는 기를 원한다. 도시를 살아가는 개인. 그 개인이 가진 콘텐츠가 도시를 창의적으로 채우기를 원한다. 이를 지원하는 공간.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일. 이것이 로컬스티치가 지향하는 공간이다.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의 공간감:느슨함.

느슨하고, 청량하다. 홍대에서 사라진 이 감성은 서교동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서교동에 위치한 로컬 스티치 서교 2점. 이곳은 서교동의 정서를 품었다. 특히 서교동은 홍대가 개발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과정에서 사라진 차분함과 청량한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로컬 스티치는 이 같은 서교동 정서를 기반으로 한 로컬커머스, 업무공간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다. 

로컬 스티치가 만든 슈퍼인 슈퍼 스티치는 묵직함으로 우리를 반긴다.

물론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만나는 풍경들. 세련됨과 거리 간 거친 벽. 마감을 하다 멈춘듯한 공간을 보고 놀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머물러 보자. 어느 순간 낯섦은 서서히 사라진다. 어느 순간 창가를 통해 들어는 빛들. 이 빛이 이곳에 온 사람들을 편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로컬 스티치는 주변과 열린 관계를 지향한다. 이는 입구에서부터 시작한다. 입구는 작다.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내가 그랬다. 사람들은 동네 슈퍼 가듯이  슈퍼 스티치로 들어간다. 슈퍼 스티치는 동네슈퍼니까.

경계가 없는 공간. 그 속은 사람이 채우면 된다.

로컬 스티치가 추구하는 공간은 1층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경계 없이 연결된 슈퍼 스티치의 공간들. 자연스럽게 노출된 콘크리트와 벽돌들. 어색하지만 느슨하게 공간이 연결되어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로컬 스티치가 지향하는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서로 어울리지 않거나, 연결시켜보지 않은 부분들을 연결하자. 기존에 보지 못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의 아이디어를 연결해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 거야'


느슨한 공간을 어떻게 표현할까?

노출 콘크리트가 만드는 비움, 차가움, 건조함은 사람으로 채우면 된다.

노출 콘크리트가 많은 공간은 차갑고 건조하다. 로컬 스티치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이 부분을 상쇄하기 위해 나무를 활용해 노출 콘크리트가 가진 건조함과 차가움을 나무에 흡수시킨다. 차가움은 나무에 흡수되고 공간에는 부드러움만 남는다. 하지만 공간의 차가움을 모두 제거하기에는 나무만으로 부족하다. 이를 위해 로컬 스티치는 2가지를 더 활용한다. 식물과 흰색 진열장이다.

노출 콘크리트가 만든 차가움과 건조함은 나무벽들이 흡수한다.
나무로 마감한 공간은 쾌적하고 깔끔하다. 동시에 따뜻하다.

식물로 끌어오는 계절감

나무가 미처 상쇄하지 못하는 부분은 식물로 채운다.

노출 콘크리트로 나무를 막는 건 한계가 있다. 공간이 단조롭기 때문이다. 이를 보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식물을 공간에 놓는 거다. 식물은 공간에 계절감을 가져온다. 블루보틀 같은 경우 전담 플로리스트를 통해 주기적으로 매장 꽃꽂이를 바꾼다.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은 건물 앞에 가로수가 가득하기에 식물을 사용해 계절감을 끌어오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로컬 스티치는 이러한 지역 특징을 활용한다. 공간 안에 많은 화분을 놓아 계절감을 끌어온다. 이를 통해 나무를 통해 제거한 차가움을 더 세밀하게 없앤다.


차가움을 더 상쇄시키는 흰색 진열장.

흰색 진열장은 공간에 다양한 변주를 가능케한다.

1층 슈퍼 스티치는 기둥이 노출 콘크리트. 바닥은 콘크리트 바닥에 에폭시 마감이다. 에폭시로 바닥을 마감하면 바닥 질감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바닥 전체가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강해진다. 슈퍼 스티치는 벽도 노출 콘크리트다 보니 바닥과 기둥 간 차가움이 더 강하다. 로컬 스티치는  이를 상쇄하기 위해 일부 벽은 나무로 막았고, 식물을 가져오고 유리창을 통해 빛을 끌어온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는 공간감을 만드는 선에서 그친다. 무언가 부족하다. 로컬 스티치는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흰색 진열장을 통일감 있게 배치했다. 유리창을 통해 빛은 흰색 진열장과 부딪치면서 다양한 색깔로 변한다. 다양하게 변하는 색깔은 1층 공간을 최대한 부드럽게 만든다.

시부야에 위치한 트렁크호텔도 마찬가지.

이러한 방법은 트렁크 호텔에서도 본 부분이다. 트렁크 호텔은 주변이 무광 검은색 철골 프레임이 가득하다. 입구 주변에 나무가 가득하지만, 역시 금속이 가진 강력한 차가움을 상쇄하기란 쉽지 않다. 트렁크 호텔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트렁크 스토어의 모든 진열장을 흰색으로 통일했다. 물론 슈퍼 스티치 공간과 트렁크 스토어가 같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흰색을 사용한 목적은 동일하다.


빛으로 끌어오는 서교동 정서.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의 정문에 들어가는 문은 작다. 주변 서교동 거리의 동네 상점에 들어가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길가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정문. 가로수를 마주하는 유리창을 통래 햇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햇빛. 이를 통래 로컬 스티치가 지향하는 ‘자연스러움’ 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시간대로 들어 자연 자연스러운 빛은 공간 안에 서교동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다양한 빛들이 로컬 스티치의 공간감을 만든다.

로컬 스티치 1층에는 슈퍼 스티치, 카페 요로 간 경계가 없다. 경계가 없기에, 공간은 자연스럽다. 또한 슈퍼 스티치 전체에 의도적인 비움을 넣어 그 비움을 사람이 채우도록 의도했다. 여기에 시간대별로 들어오는 빛들은 1층 공간을 자연스럽게 매시간마다 변화시킨다. 이는 블루보틀 역삼점과 블루보틀 산겐자야점에서도 관찰한 부분이다. 오히려 슈퍼 스티치는 공간 맥락면에서 ‘지역 커뮤니티성’을 살린 블루보틀 산겐자야점과 더 비슷하다. 슈퍼 스티치가 세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공간을 만드는 건 인테리어가 아닌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로컬 스티치 1층은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공간이다.

로컬 스티치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을 수 없는 '로컬 가치'에 기반해 공간을 만들었다. 마감하지 않은 거친 벽, 에폭시로 마감한 바닥, 낮은 천장. 파티션으로 나눈 공간. 다소 공간이 뭔가 완성되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느낌은 '사람'이 공간에 개입할 여지를 충분히 만든다. 말끔한 공간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은 다소 낯설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서교동과 연결된 홍대 지역은 ‘날것’이 강한 동네였다. 로컬 스티치 서교 2점 주위를 둘러봐도 동네를 깔끔하기보다는 날것 그대로다. 정겨운 옛 골목길 정서. 오징어 게임에서 나온 구슬치기 세트장과 비슷하다. 이런 면에서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은 지역정서에 잘 스며든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로컬 스티치가 구성한 공간들은 로컬 스티치만의 가치가 담겨있다. 이를 위해 로컬 스티치가 '로컬'을 접근한 방식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그들이 제안하는 모든 중심에는 언제나‘사람들의 관점’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들이 만든 공간 안에는 따스함이 있다. 

로컬 스티치가 공간을 구축한 방식 은근처에 자리한 워시 타운과 매우 흡사하다. 커뮤니티 세탁방인 워시 타운도 ‘기능이 중심인 공간’과 ‘정서가 중심인 공간’ 사이에서 그들만의 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무엇보다 워시 타운을 만든 이현덕 대표님은 ‘공간’과’ 연결’을 매우 중시한다. 같은 지역에 위치하는 공간들은 자신들의 의도와 다르게, 서로 닮아가는 경향이 있다. 지역이 가진 정서에 공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건 외부인보다는 지역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로컬스티치 근처에 위치한 워시타운. 두 공간은 다르지만 공간감은 비슷하다.

그렇기에 워시 타운과 동일하게 로컬 스티치의 공간도 기본 방향은 ‘연결’이다. 하지만 두 공간이 표현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워시 타운은 동네 정서에 기반에 세탁이 가진 의미. 예부터 빨래터에서부터 만들어진 ’ 정서적인 만남’에 집중한다. 즉, 위시 타운은 ‘세탁’이라는 공통된 일상으로 사람들을 연결한다. 이와 다르게 로컬 스티치는 공통된 일상이 아닌 ’ 개개인의 생각’으로 사람들을 연결한다.

공간의 물성과 문자는 공간안에 정서를 만든다.

우리가 ‘물성’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은 대체로 ‘정서’를 만든다. 물건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사용한 재료들이 사람들과 만나면서 정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삼성동에 위치한 프레인 빌라는 밖에서 보면 차가운 금속 건물이다. 하지만 내부는 전혀 다르다. 금속이 둘러싼 외면과 다르게, 프레인 빌라에는 빛이 다양한 곳에서 들어온다. 주변에서 흘러들어오는 다양한 빛. 이 빛들이 공간을 따뜻하게 만든다.  나이키 서울은 재활용 소재로 만든 옷과 상품들을 1층에 배치했다. 멋진 구호가 아니다. 재활용한 소재로 만든 옷이 사람들을 반긴다. 그렇기에 나이키 서울에서 ‘지속가능성’은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재활용 소재 제품이 눈앞에 있기에, '재활용', '여정'이라는 단어들은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서교동의 정서. 과거 홍대 놀이터가 이런 분위기였다.

로컬 스티치는  서교동 와 합정동이 마주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서교동은 옛 홍대를 많이 닮았다. 도시개발로 없어져버린 홍대 정취는 서교동에 아직 남아있다. 옛 홍대 거리는 각자만의 다양한 취향을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지역이었다. 내가 보았던 홍대. 종종 하교하면서 들린 홍대 주변은 언제나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곳이었다. 

청량함. 홍대, 상수, 합정을 잇는 공간감. 현재의 홍대에서는 이 청량감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주변 정서를 고스란히 공간으로 가져온 로컬 스티치는 사람들에게 '스며듦'을 지향하는 전형적인 공간이다. 이런 관점에서 로컬 스티치는 '로컬'에서 시작한다. 이는 서교동이라는 지역이 가진 정보와 주제에 접근해 찾기 때문이다. 이곳의 공간감은 철저히 서교동에서 나온다. 근처에 위치한 워시 타운과 비슷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로컬 스티치 서교 2점이 이 생각하는 소셜라이징은 서교동이라는 공간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로컬 스티치는 시부야에 위치한 트렁크 호텔을 연상시킨다. 시부야는 도쿄를 대표하는 거리 중 하나이자 '젊음'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곳이다. 특히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는 언제나 전 세계 방문객으로 발을 디딜 틈이 없다. 해가 지고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긴자는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시부야는 오히려 사람들이 더욱 몰려든다. 시부야는 에도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만들었던 지역이다. 그 당시에는 일본 각 번의 연락소가 있었다. 또한 간사이와 간토지방 물건이 오고 가던 공간이었다. 

서울에 홍대와 신촌과 가장 비교하기 좋은 공간은 도쿄의 시부야.

도쿄가 메트로폴리탄 도시 성장하면서 시부야에는 더더욱 다양한 문화가 유입돼 다양한 서브컬처가 만들어졌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러한 서브컬처가 반영된 시부야 스트리트 패션은 서울의 스트리트 패션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시부야의 서브컬처는 신주쿠, 시모키 타자, 기치 쵸지 등으로 뻗어나갔다.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카페, 빈티지샵, 극장들은 시부야가 만들어낸 결과물 중 하나다. 문화를 만들어내는 구심점. 도쿄 젊은이들이 마주한 삶을 문화로 발전시켜 순화하는 역할을 하는 공간. 이것이 시부야가 가진 '로컬 가치였다'

시부야와 비슷한 지역은 단연코 홍대다. 홍대입구는 ‘신촌’과 함께 강서 쪽에서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끌던 곳이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가 위치한 신촌. 신촌과 홍대 사이를 연결하는 서강대, 홍익대와 연남동과 남가좌동을 이어주는 명지대까지 이 지역권은 한국 안에서 서브컬처가 발전한 곳 중 하나였다. 2000년대만 해도 홍대입구역에서 홍익대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인디밴드와 버스킹 공연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문화의 결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홍익대 주변 상권이 개발되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기 전까지, 홍대는 언제나 젊은 문화가 넘쳐났다. 그러나 홍대가 주요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홍대 문화는 점차 상수동 근방으로 밀려나갔다. 홍대를 지키면 공간들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그 흔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러한 변화가 가장 극심하던 2005~10년대에 이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다.


로컬스티치는 단순히 ‘로컬'을  품은 게 아니다. 자신들만의 '관점'으로 편집한 로컬을 지향한다. 이러한 홍대와 서교동이 가진 역사성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로컬 스티치의 겉면. 눈에 보이는 브랜딩, 공간 콘셉트만 보일 뿐이다.


지금은 공간을 보는 생각이 변화는 시기.


온라인 소비가 주를 이루는 시대다. 그 반대편은 ‘오프라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온라인 소비가 주를 이루는 시대에 정반대는 '감성’이다. 온라인에서는 ‘효율’이 단연코 먼저다. 빠른 트래픽, 빠른 결제속도, 간결함, 더 효과적인 바이럴, 사람들을 유입시킬 아이디어 등등.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각종 앱에서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등장한다.

식물은 코로나 이후 가장 많이 주목을 받고 있는 매체 중 하나다.

혹자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프라인은 암울하다”라고 말이다. 우리는 온라인이 더더욱 성장해 오프라인을 완전히 압살 하리라 생각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그 역할이 보다 선명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은 온라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사람들의 결핍을 채웠다. 무엇보다 코로나는 우리가 주거공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집에 오래 있다 보니 사람들은 오히려 집을 가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공간'이란 무엇일까? 기능을 넘어선 공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공간'이란 무엇일까? 기능을 넘어선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 이전보다 집은 더욱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비대면 업무와 수업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개인별로 영상을 시청하는 게 보편화되었다. 이로 인해 거실 속 TV는 존재감이 사라졌다. 집안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거실은 TV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행동을 집에서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삶을 표현하는 공간. 취향을 온전히 반영하는 곳으로 변했다. 집은 일터이면서도 카페가 되기도 한다. 또한 취미를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코로나는 오히려 개개인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더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모든 공간은 미디어가 된다.


공간이 '미디어'가 된다는 말은 '관점'을 공간 안에서 '경험'으로 구현한다는 말이다. 오프라인 공간들은 언제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를 만들면? 그것을 전파해야 한다. 지루함이 없어야 한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메시지와 이미지를 전해야 한다. 동시에 정직해야 한다.  즉, 세계관을 가진 공간이 되어야 한다. 세계관이라는 건 메타버스에서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공간은 다섯 가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1. 상점이 아니라 ‘미디어’를 지향해야 한다.
2. 손님이 물건을 사지 않아도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콘텐츠가 기반이 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3. 모든 공간은 ‘당신이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4.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지 혹은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5. [1-4]까지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즉, 꾸준해야한다.


이 다섯 가지를 통해 다른 공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가치'를 '제안'해야 한다. 이 가치는 누군가가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함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간을 비롯한 모든 영역을 콘텐츠로 바라보며 편집해야 한다.


개인이 크리에이터가 되면서 개개인이 손쉽게 관점을 전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모든 개인은 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기획자가 된 개인이 ‘미디어’가 된다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과거 우리는 미디어라고 하면 '뉴스'부터 생각했기에 '미디어 = 언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언론과 미디어는 다르다. 미디어는 자신의 관점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한다. 공간은 그 방법 중 하나다. 당연히 공간이 미디어가 되는 일. 관점을 담는 건 지극히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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