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은 브랜딩의 기반를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 미니멀리즘은 '레디메이드'. 뒤샹이 선보이인 '변기'에서부터 시작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뒤샹은 변기를 통해 '존재 의미'를 물었다. 우리는 뒤샹이 만든 변기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고민해볼 수 있다. '우리는 생각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과연 이것이 변기인가? 변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화장실에 있으면 이것은 변기다. 그렇다면 화장실이 아닌 전시회장에 있는 변기는 과연 무엇인가?' 이건 '변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뒤샹의 변기'는 우리에게 '네 취향은 뭐니?'라는 생각의 확장을 가져다주었다.
브랜드는 개인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매체'가 되었다. 또한 각 브랜드 간의 다양한 협업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연결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미니멀리즘 아트가 사람들에게 '예술이 전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애플 매장에 있는 수많은 맥북, 아이폰, 아이패드를 생각해보자. 애플 입장에서 애플스토어의 물건들은 팔아야 하는 재고다. 아무리 애플 경영진이 멋지게 키노트 영상을 선보여도? 장부상에는 엄연한 재고다. 하지만 애플 제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애플 제품이 주는 의미는 각기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염원하던 소원. 어떤 이에게는 업무 도구다. 누군가에게는 스타일을 연출을 위한 도구다. 같은 물건도 각자가 추구하는 모양새. 개개인의 감각에 따라서 애플 제품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애플 제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뒤샹이 내놓은 변기와 애플스토어 내 물건은 '맥락'상 동일하다. 그렇기에 뒤샹이 낳은 개념. 그 개념에서 이어지는 미니멀리즘이 낳은 질문의 종착역은 한 곳이다. '과연 당신의 감각을 무엇인가?'
이제 사람들은 브랜드에 어떤 가치를 넣을지를 고민한다. 이건 브랜드들을 소유한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나이키는 자신들이 보유한 신발들을 협업 플랫폼으로 바꾸고 있다. 버질 아블로는 나이키가 협업 플랫폼이 될 수 있는 확고한 위치에 올려놓었다. 그는 '더 텐'을 통해 나이키의 협업 디자인 논리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그다음부터 나이키는 신발 협업 시 자신들의 디자인 요소를 해체하는 경향이 무척이나 강해졌다. 심지허 버질 아블로는 '더 피프티'를 통해 덩크로우를 팝아트로 만들어버렸다.
나이키는 협업 시 자신들이 소유한 신발의 디자인을 상당 부분 해체한다. 동시에 해체를 통해 만든 신발 디자인 안에 협업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넣을 수 있게 했다. 올해 최대 히트작인 사카이와의 협업에서는 밑창에서의 디자인을 해체해 사카이 감성이 들어오게 한 부분이 강하다. 에어 디올도 마찬가지다. 디올의 킴 존스는 자신이 소장한 여러 개의 조던 1 신발을 보면서 에어 디올을 만들었다. 킴 존스 스스로가 조던 1의 디자인에서 디올이 들어갈 충분한 공간을 찾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매튜 윌리엄스가 선보이는 줌 MMW에서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실험하고 있다. 며칠 전 발매한 줌 MMW는 50만 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1분 만에 다 팔렸다.
물론 나이키가 버질 아블로와 협업 이전까지 협업을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이키는 이미 슈프림과 SB 덩크[2002], 에어 폼포짓[2014], 업템포[2017]를 통해 성공적인 협업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러한 협업은 그저 '이벤트'와 마케팅에 불과했다. 오히려 협업을 통해 브랜드가 강화된 건 나이키보다 슈프림이었다.
슈프림은 이미 10년 넘게 제임스 제비 아가 쌓아온 '드롭'이라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키는 드롭이라는 문화가 아예 없었다. 그렇기에 슈프림에게 있어서 나이키와 협업은 브랜드 확장이었다. 나이키는 상대적으로 그 영향이 덜했다. 나이키와 슈프림의 협업은 이벤트성이 강했다. 하지만 요즘 나이키 SKNR를 살펴보면, 마치 '드롭'처럼 출시 예정시간까지 적어두고 있다. 이런 면에서 앞서 살펴본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충분함과 '본질'을 묻는 미니멀리즘 간의 조화는 많은 브랜드에서 효과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미니멀리즘 혹은 미니멀리즘을 추종하는 관점에서 '빈틈'은 반드시 발생한다. 애초부터 미니멀리즘은 '빈틈'을 발견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두었다. 당연히 그 빈틈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만든다. 오히려 미니멀리즘 아트는 예술작품을 '물리적인 무언가'에서 '생각을 깨우는 매체'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브랜드는 '취향'을 물리적으로 제한할 수 없는, '인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호캉스의 경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조던 1을 색깔별로 수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런 면에서 지금 시대의 미니멀리즘이 가득한 곳은 단연코 브랜드와 브랜딩이다.
도널드 저드가 선보인 미니멀리즘 아트는 '나만의 감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저드가 만든 금속 덩어리를 보면서 서로 다른 감각으로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한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이 스스로 사유하기를 권할 뿐이다.
이와 다르게 무인양품은 '감각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다.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충분함은 일상 속에 담긴 '감각'들을 편집하는 일에 가깝다. 어제와 오늘 간의 세밀한 차이를 계속 성찰하는 일. 이는 일본 정원에 앉아 편집된 자연을 바라보면서 감각을 수양하는 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 개선에는 현재와 과거에 대한 분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전자는 사유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후자는 현재를 분석해 '편집'에 집중한다. 둘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를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감각은 계속해서 쌓아가는 일이다. 그 쌓인 감각을 지속적으로 편집하면서 감각을 다양하게 정리하고 구현해야 한다. '무엇인가의 충분함'을 찾는 과정은 편집을 끌어온다.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 과정을 겪게 되면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스스로 묻게 된다. 미술은 이런 면에서 '사유'의 순간. 그렇게 우리의 생각을 톡톡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