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브랜드는 시선의 차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브랜드 제품이 예술작품보다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이유는 높은 완성도 때문이다. 특히 높은 완성도를 가진 제품은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 완성도는 제품 디자인에서 UX까지 모든 부분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UX가 가진 위력은 넷플릭스를 사용할 때는 잘 모른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사용한 뒤, 디즈니 플러스를 사용하면 UX차이에 따른 경험 차이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예술작품이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자 한다면? 작품이 가진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하지만 예술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작품의 의미를 잘 볼 수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한정된다. 여기서 예술과 브랜드 간 차이를 알 수 있다.
기업이 만든 제품은 공학적인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예술작품과 달리 ‘아름다움’을 쉽게 발견하는 이유도 당연하다. 자동차 같은 경우 단차가 없어야 한다. 테슬라자동차가 훌륭하다고 해도 단차에 대한 비판을 받는 부분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테슬라는 이러한 부분을 소프트웨어 기술로 만회한다. 아이폰같이 예술과 공학이 높은 완성도를 가질 때, 우리는 이것을 혁신제품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여전히 에어컨을 최고 혁신제품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술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경험’을 다양하게 해석할 기회를 제공하는 면에서 그친다. 미술전시회에 가면 작품과 나 혼자 마주하게 된다. 작품과 나와 홀로 마주하기 때문에 불편하거나 편안하기도 하다. 가령 인상주의 그림은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다. 복잡한 설명도 크게 필요 없다. 모네의 그림을 보는데 도상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브랜드 제품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해 경험으로 이어지는 모든 면. 이게 더 중요하다. 예술이 브랜드 제품에 끼치는 영향은 디자인만이 아니다. 디자인은 겉모습이다. 요리, 잠, 음악 듣기, 게임, 세탁 등등. 경험을 매우 다양하다. 이 모든 경험을 한곳에서 할 수 있는 곳이 호텔이다. 수많은 기획자들이 꿈꾸는 제안이 호텔로 귀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만일 예술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꾸준히 경험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손쉽게 스며들어야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예술이 사람들 삶에 스며드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림이 놓인 방은 생각이 진열된 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안에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누군가의 그림을 방에 걸어놓는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기반은 자신이 지향하는 취향이다. 동시에 그 취향은 구체화된 자신만의 창조성이다. 그렇기에 창조성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창조성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러기에 남이 제시하는 생각보다 내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게 자신에게 더 유익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브랜딩은 기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만드는 과정도 브랜딩이다. 브랜딩에 창조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걸 매우 잘한 인물이 버질 아블로다.
예술이 브랜드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은 단연코 [고] 버질 아블로다. 그는 뒤샹, 마그리트, 앤디 워홀 같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방법을 고스란히 차용해 자신만의 메시지와 상징을 만들었다. 정확하게는 자신을 상징하는 ‘디자인’을 만들었다. 그는 뒤샹과 앤디 워홀이 사용한 '레디메이드'와 마그리트가 사용한 '사물에 대한 은유적인 질문'을 디자인 작업에 고스란히 가져왔다. 또한 여기에 헬베티카 서체를 사용했다. 그는 스니커즈를 비롯해 자신이 만든 모든 물건에 [“헬베티카”]를 넣었다. 이 부분은 데리다와 마그리트를 차용했다.
마르셀 뒤샹은 화가, 조각가, 철학자였다. 뒤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은 그 자체보다는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것이다.”여기서 시선은 ‘감각’에 대한 해석이다. 감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감각이 가진 의미가 변한다는 말이다.
뒤샹은 끊임없이 예술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왜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나?’ ‘왜 예술가가 만든 작품만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이 같은 질문에 ‘레디메이드’라는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 그는 ‘레디메이드’인 ‘샘’을 통해 그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변기’를 보면서 샘이라고 하는 건 철저히 ‘시선’의 문제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감각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첫 시작점이었다면? 뒤샹이 선보인 ‘레디메이드’는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립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금 우리가 접하는 물건에서도 동일하다.
그가 개척한 레디메이드는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아이 웨이웨이, 뱅크시 등 수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렇기에 뒤샹은 우리에게 창조성은‘감각’을 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또한 뒤샹은 누구든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단지 그는 이것을 보여줄 도구로 순수예술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방식은 모든 영역에서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는 그는 가만히 멈추어 자신의 감각이 반영된 삶과 가능성이 예술의 기반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버질 아블로로 돌아오자. 그가 예술을 어떻게 자신의 브랜딩에 반영했는지는 시카노 아트 인스티튜트와 진행했었던 개인 전시회에서 잘 볼 수 있다. 그는 전시회에서 출시되지 않는 나이키와의 협업 시제품을 전시했다. 그중에서 나이키의 러닝화인 '줌 플라이' 밑창을 보자. 그는 신발 밑창에서 "NOT AIR"라고 적었다. 실제로 줌 플라이에 밑창 소재는 탄소소재다. 나이키의 전매특허기술인 '에어'가 아니다.
그는 "NOT AIR”라는 말로 ‘나이키’ 제품에서 ‘나이키’를 의도적으로 부정한다. 하지만 이 문구를 통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이키'를 더 생각하게 된다. 마그리트가 파이프 그림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파이프를 더 강조했듯이 말이다. 이 순간 버질 아블로는 브랜드에 담긴 브랜드 철학을 의도적으로 해체한 셈이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해체' 나이키의 브랜드 철학을 '은유'적으로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나이키 줌 플라이 XP에 적힌 "NOT AIR"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이키를 더 떠올리게 만든다. 이와 다르게 에어맥스에 적힌 "AIR"는 에어맥스 신발과 나이키를 더욱 강화시킨다. 이렇게 문자화 된 각 요소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나이키'라는 브랜드에 관한 은유를 찾게 된다.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더욱 코끼리를 생각하듯이 말이다.
영어 단어에서 "AIR"는 그냥 공기다. 하지만 항공사에 "AIR"라고 쓰여있으면? 사람들은 ‘비행기'와 '하늘'을 생각한다.‘Korean Air’라고 하면 우리는 ‘대한항공’과 비행기를 떠올린다. 반면에 신발에 "AIR"라고 쓰여있으면 사람들은 나이키를 생각한다. 만일 아디다스 혹은 뉴발란스에 ‘AIR’ 적혀있다면? 우리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다. ‘어? 아디다스는 에어가 아니잖아?’이렇게 말이다.
버질 아블로는 단어를 통해 브랜드를 해체했다. 동시에 ‘은유’를 문자화해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다. 동시에 그렇게 각인된 단어는 그걸 처음 만든 이에게 유일한 존재감을 만든다. 이를 통해 버질 아블로는 ’ 오프 화이트’를 디자인을 구축하는 플랫폼 성격을 가진 하이앤드 브랜드로 발전시켰다. 그는 예술을 단순히 '디자인'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인지언어학과 현대미술을 결합해 이를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는 데 사용했다. 그렇기에 19세기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이 두 가지를 이어서 나온 수많은 현대미술들. 특히 뒤샹이 정립한 레디메이드는 기본적으로 ‘브랜딩’의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슈프림과 예술가들.]
기획자들은 예술을 문화로 만드는 역할에 집중한다. 이로 예술적인 결과물이 제품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슈프림을 만든 제임스 제비야가 대표적이다. 그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스케이트보드 협업을 통해 거리문화와 예술을 합쳤다. 익히 알려진 대로 슈프림은 초창기부터 크고 작은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해왔다. 슈프 임의 스케이드 보트 데크 협업은 1997년도쯤에 시작했다. 초창기 슈프림은 로고 위주로 스케이드 보드 덱을 디자인했으며, 1년에 한 번 정도 슈프림만의 스케이트 데크를 발매했다.
슈프림은 2000년도 지나서부터 좀 더 깊이 있는 작업을 시작했다. 슈프림이 처음 같이 협업한 아티스트는 라멜지 (Rammellzee)였다. 그 이후, 슈프림은 라이언 맥기니스, 카우스, 무라카미 다카시, 제프 쿤스랑도 작업했다. 데미안 허스트와의 협업 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데크는 캔버스처럼 취급되며 미술품 경매에서 수천 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슈프림의 스케이드 보드 데크 협업은 작은 현대미술관이라도 보아도 무관할 정도다. 슈프림의 협업 스케이트보드 덱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래리 클락스와의 협업이었다. 래리 클락스와 협업으로 만든 스케이트 보드 데크는 작품에 예술계 쪽 손님과 일반 손님들에게 모두 인기 있었다.
스케이트 보드 데크 협업을 무척 좋아한 건 제프 쿤스였다. 제프 쿤스는 몇몇 멋진 디자인 협업을 슈프림과 진행했다. 제프 쿤스는 슈프림에게 완전히 빠져서 디자인과 일에만 열중했다. 그에게 있어서 스케이트보드 데크는 ‘스케이트 문화’의 핵심이었다. 무엇보다도 제프 쿤스에게 스케이트보드는 캔버스이자 자신의 감각을 표현할 훌륭한 소재였다. 게다가 그는 팝아트가 세상을 뒤바꿀 거라 예상했다. 그의 예상대로 시장은 팝아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슈프림은 협업 제품을 만들 때 '얼마나 팔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얼마나 더 멋지게 만들까?'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아티스트들과 일하기 쉬웠다. 그들도 '젊은 층이 뭘 좋아할까? 어떻게 해야 그들이 이 멋있어 보이게 할까?'라고 생각했다. 슈프림과 협업 아티스트들은 예술을 ‘문화’ 발전시키는 촉매제로 보였다. 그들은 젊은 세대들이 그들이 만든 제품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슈프림의 브랜드 철학이었다. 그렇기에 협업을 대하는 슈프림의 자세에도 이러한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부분이 협업 아티스트들을 편하게 했다.
협업이 늘 순탄한 건 아니었다. 몇몇 아티스트들은 "내 작품을 스케이트보드에 넣을 순 없어."라고 말하며 협업을 거절하기도 했다. 물론 제프 쿤스 같은 같은 아티스트들은 예술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제프 쿤스는 키치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였고, 스케이트보드 데크는 오히려 제프 쿤스를 새로운 지경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였으니까.
슈프림은 항상 유명한 아티스트와만 작업하지 않았다. 슈프림은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아티스트와 작업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제임스 제비야가 언제나 신경 쓴 건 거리문화만의 특징인 ‘평등’이었다. 그는 슈프림이 물건을 만들면,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할 것을 알았다.
그는 언제나 슈프림이 기반이 되는 스테이트 보드 문화와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오히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느끼는 감정들. “야! 이거 멋진데?”같은 반응에 초점을 두었다. 제비야에게 관심사는 언제나 거리의 젊은이들과 문화였다. 어떤 면에서 슈프림의 브랜딩은 거리문화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카라바조가 거리 사람들의 얼굴을 자신의 거리에 반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목할 건 과거 예술은 현재에 다른 방식으로 ‘응용’된다는 점이다.
제임스 제비야는 언제나 균형을 생각했다. 유명한 아티스트와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들. 슈프림은 모두와 골고루 작업했다. 제비야는 “슈프림은 유명 아티스트와 함께 비싼 제품만 만들어."란 느낌을 받는 걸 싫어했다. 오히려 ‘그건 슈프림과 더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슈프림을 언제나 스트릿 브랜드였으니까. 종종 몇몇 예술 쪽 사람들이 와서 왜 아티스트의 작품을 ‘특별 에디션’이라고 안 하냐고 화냈던 적도 있었다. 그는 슈프림이 잘 나가지 않던 시기와 그렇지 않던 시기에도 슈프림이 추구하는 가치를 타협하지 않았다. 제비야는 오히려 특별 에디션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이건 그냥 70불짜리 물건일 뿐이야! 특별 에디션? 우린 진짜 원한다면 이것들을 1000불 넘게도 팔 수 도 있어.”
제임스 제비야는 슈프림이 마음만 먹으면 스케이드 보드 데크를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제비야는 ‘ 젊은 친구들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격대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게 스트리트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슈프림을 키워준 건 그들이었으니까요. 지금의 슈프림 제품 가격은 대부분 리셀가이기에, 이러한 시각은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기저' 찾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삼성은 갤럭시 Z플립을 통해 우리가 마땅히 직각형태의 스마트폰을 접을 수 있다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갤럭시 Z플립과 폴드는 스마트폰이 가진 물리적인 감각 '접을 수없다'를 '접는다'로 바꾸고 있다. 우리가 가진 기존 감각에 대한 관념을 바꾼 셈이다. 삼성은 오랜 시간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이 도전해야 할 '감각'이고 할 수 있는 '접는다'에 도전했다.
삼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간의 시력에 도전하고 있다. 인간 눈은 대략 6억 5천만 화소라고 알려져 있다. 삼성의 이미지센서 브랜드인 '아이소셀'은 현재 2억 화 소까지 촬영 가능한 센서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삼성전자는 기술력이 있어요. 그러니까 가능한 거죠"라고 말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감각을 만드는 회사들은 항상 '감각의 기저'에서 문제 해결을 시작한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만일 스스로가 불편을 느낀 무언가가 있다면? 그 불편에 대한 기저와 감각을 고민하면 된다.
만일 애플스토어 매장을 애플 갤러리라고 바꿔보자. 그 안에 오직 아이폰, 맥, 애플 워치만 더욱 정갈하게 배치한다면 어떨까? 그건 애플 갤러리가 선보이는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운즈 한남에 위치한 가나아트나, 삼청동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와 무엇이 다를까? 디스트릭트가 만든 아르떼 뮤지엄과 비교하면 어떨까? 따져보면 맥락은 같다. 단지 그것이 어떤 ‘기능’을 가졌는가라는 ‘기준’에서 우리가 예술과 ‘기계’로 구분할 뿐이다. 그렇기에 예술이 우리를 ‘톡톡’ 두드리는 순간은 비단 전시회에 가야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브랜드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간들'[밀리의 서재로는 ‘공간, 하다’로 출간되었다.]에서 마케터를 화가로 비유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라이프스타일 안에는 예술이 항상 우리를 ‘톡톡’ 두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