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랑이란 게 뭘까

by 밍기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랑을 바라는 것 없이 오로지 당신의 행복을 빌며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조차도 ‘바라는 것 없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킨 적은 없다. 따라서 내가 정의한 사랑은 나도 한 적이 없는 셈이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사랑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릴 것이다. 문득 사랑이란 게 뭔지 생각해 봤다.


사랑은 어쨌든 엄청 짜릿한 것이다. 자극적이고 행복하며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감정적인 자극을 준다. 내 경우에는 사랑이 곧 인정욕구의 충족으로 이어져서 가장 좋았던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정감을 위해,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하다못해 물질적 결핍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글로 써놓고 보니 정말 로맨틱하지 않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


사랑에 대해 깊은 고찰 없이 드라마로 사랑을 배운 사람들도 있다. 경험상 이 사람들이 사랑할 때 더 불행했다. 드라마에서는 사랑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그리고 제일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섭외하며 은연중에 대중들에게 사랑의 조건 혹은 기준을 강요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드라마 같은 사랑을 구현할 수 있는 확률이 몇 프로나 되겠나.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이전에 외모부터가 모두 탈락일 텐데. 더욱이 SNS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더 자극적으로 각색해서 이런 종류의 사랑을 하지 못하거나 받지 못한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든다. 애초에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보여주며 불행해지기 싫으면 저 무지개를 잡으라고 사람들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꼴이다. 드라마와 SNS가 여러 인생을 조지고 있다!


더욱이 이런 드라마에서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많은데, 나도 한때는 이런 동화의 피해자였다. 사랑하려고 만났던 사람 중 공주님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를 왕자님으로 모셔주지 않으면서 자기는 공주님이 되어 대접받고 싶었던 당신들에게, 나는 일부러 종놈이 되어주지 않았다. 내 능력 이상의 것을 바라는 공주님에게 "내가 왜?"라며 용감하게 대들고 들들 볶이던 나도 힘들었지만, 나를 만났던 공주님들도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믿었던 공주대접을 받지 못했으니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 드라마와 SNS의 피해자다. 주더라도 능력이 부족해 충분히 주지 못하는 남자와 받더라도 성에 차게 받지 못하는 여자의 환‘장‘적인 콜라보라고 할까.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종종 나한테 진정한 사랑을 모른다며 은근히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했었는데, 지금까지 혼전순결을 외치며 성관계없이 했었던 연애가 보통 연애와는 출발점부터가 다르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논리력이 없었다. 그냥 부들부들 열만 받았었지. 여자친구가 예쁘긴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억울할 정도로 온갖 하대를 당하면서도 예쁘기 때문에 그 관계를 이어가는 당신은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인가. 뭐,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우겨야 그나마 마음이 괜찮아지는 것이라면 그 사람이 밉기보다는 안쓰럽다.


물론 사랑은 감정의 영역이므로 다른 기술처럼 노력으로 습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각 사람마다 정의하는 사랑이 다르고 그 사랑을 통해 얻고자 원하는 것도 다르므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더라도 그 방향성을 잡는 게 더 어렵기도 하다. 예전에는 사랑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내가 당신에게 더 맞추도록 나를 없애고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겠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잘 된 연애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오히려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헤어질 궁리만 했었지.


올바르게 사랑을 노력하며 연습하고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봤다. 에리히프롬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배려 책임 존중 지식을 강조했다.


배려 :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이때 배려는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이 수반되어야 함.

책임 : 각자 참고 인내해야 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 책임은 곧 인내로도 이어짐.

존중 : 상대방과 아무리 긴밀해지더라도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

지식 : 상대방을 알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인류를 이해하는 것,


이 중 나는 어떤 부분에 강하고 어떤 부분에 약할까 생각해 봤다. 존중, 배려, 책임, 지식의 순서대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내 경우엔 사랑을 하더라도 깊게 유대를 가지는 게 다소 어려워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존중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기 위해 힘이 닿는 대로 서포트해주는데, 이때 배려가 나온다. 어려서부터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한다면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는 건 잘했으니 책임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지만, 당최 왜 자꾸 상대방이 나에게 불만을 품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 지식은 없었다 하겠다.


상대방을 꿰뚫는 지식은 없었으면서, 내가 상대방이라면 이렇게 받고 싶을 거라는 판단으로 혼자 노력하고 혼자 지치고 혼자 서운해하고 혼자 마음을 정리한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사랑을 많이 연습해야 할 사람이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다. 필연적으로 사랑의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나도 상대방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이 무엇이며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혼자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누군과와 관계를 시작할 때, 혹시 상대방이 사랑을 어떻게 노력할지 모른다면 그 길을 알려주는 것도 내 역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선 나부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연습하려고 한다. 이정표가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게 물론 쉽지 않더라도 길을 개척하는 것보다는 훨씬 편하다. 나는 앞서 나가며 이정표를 그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시 모를 일이다. 지금 순례길을 걷는 내가 길에 놓인 수많은 이정표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듯, 언젠가 당신도 나의 이정표를 보며 사랑을 느낄 수 있을지도.

삶과 사랑에도 이정표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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