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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30. 2021

100일 글쓰기를 마치며

끝이라 생각했는데, 비로소 시작점에 섰다

 

'설마 이걸 못하겠어? 100일 까짓 거 금방이지.'

100일 글쓰기 도전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이건 평생 꾸준함을 경험해보지 못한 게으른 자의 어리석은 착오였다.     


2주쯤 지나면서부터 고비가 시작되었다. 매일 무얼 써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밤늦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고, 올해 시작한 새벽 기상의 루틴은 단번에 어그러졌다. 그래도 지금껏 경험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어찌어찌 써왔는데, 50일째가 되니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걸 내가 ‘왜 쓰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힘들게 쓰는 게 과연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왕 시작한 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38년을 살면서 100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언가를 한 것은 ‘숨쉬기’ 빼고는 없었다. 선택은 항상 실패하지 않을 만한 쉬운 쪽으로, 싫증 내기는 바람에 날아가는 마른 나뭇잎보다 빨랐고, 포기는 솜털보다 가볍게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삶을 산 사람인지라 꾸준함이란 단어와는 연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렇기에 아이가 학교에서 ‘가족의 장점’을 알아 오는 숙제를 하기 위해 아빠와 의견을 나누던 중에 엄마의 장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음……. 엄마의 장점은, 숨을 잘 쉬어.”라고 한 게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걸 한다고 나에게 물질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한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나도 꾸준할 수 있는 사람’ 임을 스스로에게 자각시키고 싶었다.


50일 이후부터는 포기할까 말까 수십 번 고민을 하다가도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뭐라도 쓰고 보자 싶어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바로 어제인 99일까지도 포기를 고민해가며 글을 써냈다.

결국, 글 쓰는 내내 포기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는 오늘로써 100일을 맞이했다. 시원섭섭한 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내일부터는 글쓰기 고민을 안 해도 되겠구나 싶어 후련하다가도, 글을 손에서 놔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 이렇다. 올해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은 이후로 글은 쓰고 싶은데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금방 싫증 내고 포기하는 나에게 강제성이 부여된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침 100일 글쓰기를 다른 작가님들과 함께할 기회가 생겨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이 도전을 할까 말까도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나태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잘 알기에 해낼 수 없을게 뻔해 보였지만, 글이 쓰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못 먹어도 Go!’라는 마음으로 발을 드리니 그때부터는 100일 정도야 쉽게 해낼 줄 알았다. 환웅이 인간이 되고 싶은 곰에게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동굴에 있으라고 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게 뭐가 어렵다고. 사람 되기 쉽네.’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100일 동안 꾸준히 해보니 사람 되는 건 쉽지 않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변화를 느꼈다. ‘아, 이 정도면 글쓰기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알아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여전히 내가 뭘 쓰고 싶은지 뚜렷하게 모르겠고 글쓰기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글을 쓰면 본인의 내면에 대해 알게 되어 치유의 시간이 된다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의 글쓰기는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쓰다 보면 분명 좋은 글을 쓰는 날이 올 거라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누구나 알고 있듯 꾸준함의 힘은 언젠가 강력하게 빛을 볼 날이 온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실천하지 못하는, 절대 만만하게 보지 못할 어렵고도 강한 힘.




이 글을 발행하면 100번째 글이 완성된다. 내일 밤에도 책상 앞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며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섭섭한 마음을 달래며 오늘이 끝이 아님을 되새긴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의 100일은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위한 ‘준비단계’였다 생각한다. 끝이라 생각했는데, 비로소 시작점 섰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쓰다 보니 완성도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고, 그 글을 누군가 본다는 게 부끄러웠다. 시간이 많다고 완성도 있는 글을 썼을 거라는 자신은 없지만, 심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조회수가 낮으니 어느 날은 ‘그냥 되는대로 쓰자’ 싶다가도, 알 수 없는 자존심에 그러지 못했다. 수준 떨어지는 글일지언정 막 쓰지는 않았다. 브런치에 그만 올리고 새로 블로그를 만들어 아무도 모르게 올릴까도 싶었지만, 적은 수라도 누군가는 읽어주고 라이킷도 눌러 주고 댓글도 써주시니 힘이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브런치는 나의 글쓰기 연습장이 될 거다.


혹시나 글쓰기뿐만 아니라 '100일 도전'을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진행 과정 동안 사소한 것일지라도 얻는 게 있을 것이며, 혹시나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그 또한 그대로 얻어지는 게 있을 거다. 그리고 또다시 도전하면 된다.




포기하지 않고 100일의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글을 쓰는 분들이 있어 가능했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낸다.

나의 글과 마음이 당신에게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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