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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28. 2021

있는 그대로


“어머니. 이거 원에서 키운 달팽이인데요, 새끼를 많이 낳아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어요. 흙을 항상 축축하게 유지해 주면 된대요.”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투명한 플라스틱 컵을 내미신다. 컵 바닥에 약간의 검은흙이 깔려있고, 정체 모를 작은 채소 잎과 달팽이 한 마리가 보인다. 얼떨결에 컵을 받아 들고는 나도 모르게 당황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으아~ 어떡하지? 밖에 놔줘야겠다.”


두 아이는 달팽이를 자세히 보려고 컵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컵 안에서 흙 속에 숨어있던 달팽이 한 마리가 모습을 보였다. “아! 엄마! 달팽이 한 마리 더 있어!” 그러더니 달팽이 이름을 짓기 시작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달팽이 이름 후보로 떠들썩하다.

“이름 팽이랑 햇볕 어때?”

“으으응~! 빼빼로.”

“달팽이 이름이 빼빼로라고? 크크큭!”

“빼빼로 할 거야. 이름 빼빼로.”


달팽이 이름 짓기에 한창이던 아이들이 집에 들어와 작은 통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구경하고 있다.

“와! 엄마! 엄마! 달팽이 두 마리 더 있다! 네 마리야!”


오 마이 갓! 곤충은 물론이고 모든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게는 두려운 소식이었다. 집 가까운 공원 수풀이 우거진 곳에 달팽이를 방생해주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이름까지 붙여주며 좋아하니 일단은 데리고 있기로 했다.


이틀이 지나니 컵 안에 들어있던 채소가 거의 사라져 있었다. 먹이를 뭘 줘야 하나 검색을 하고는 냉장고를 열었다. 마침 애호박이 있어 얇게 썰었다. 뚜껑을 열어 애호박 조각을 넣어줘야 하는데, 무서워서 도저히 열 수가 없었다. 흙도 말라 보이는데……. 어떡하지. 안절부절못하다가 혹시나 먹이를 못 먹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용기를 내어 뚜껑을 슬쩍 열었다. 재빨리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먹이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수분과 먹이가 공급되니 땅속에 있던 달팽이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컵을 타고 위로 기어오르는 달팽이의 뽀얀 속살을 보니 귀엽다고 느껴졌다. 느릿느릿 움직이다 먹이를 발견하고 오물오물 먹는 모습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지 모르고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왜 이리 다닥다닥 붙어 관찰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달팽이를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트에 가서 달팽이 집과 흙을 샀다. 투명 플라스틱 통으로 된 집에 흙을 깔고 물을 충분히 뿌려준 뒤, 달팽이 네 마리를 조심조심 옮겨 큰 집으로 이사시켰다. 새로운 먹이도 넣어주니 달팽이가 먹이를 먹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 모습을 관찰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달팽이를 만났을 때 아이들은 달팽이라는 존재를 만난 것 자체로 즐거워했지만, 나는 달팽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걱정부터 앞세워 만남의 순간을 즐거워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으로 만들어진 잣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내가 세상을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선입견을 품기도 쉽다. 선입견 가득한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어느 정도 상대를 겪어보고서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지독한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힐까 두렵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고 좋아할 수 있는 아이들의 마음에 나를 비춰보자니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사람이든 일이든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인생이 좀 더 즐겁고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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