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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Jun 12. 2022

마흔이 되는 게 두렵다

어서 빨리 '만 나이' 도입을...


 초가 너무 많다.

블루베리와 초콜릿이 장식된 케이크에 내 나이만큼의 초를 꽂으려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 초를 다 꽂다가는 케이크가 벌집이 될 게 분명했다. 서둘러 기다란 세 개의 초만 손에 들고 나머지는 봉투에 고이 넣어두었다.


- 세 개만 꽂자!

- 엄마 세 살이야? 크큭!


가느다란 색색의 초를 꽂고는 재빨리 불을 붙였다. 아이들이 나머지 초를 꽂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유치하긴 하지만, 초가 많이 꽂힌 케이크의 불을 있는 힘껏 후~ 불기 싫었다. 그런다고 나이가 줄어드는 게 아닌데도 초가 많아지는 걸 원치 않았다. 왠지 초가 많으면 서로 불이 옮겨 붙어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활활 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되기도 했다. 케이크 위의 캠프파이어라니, 낭만적이지 못하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케이크의 초가 몇 개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불혹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 그런가, 약국 봉투에 인쇄된 ‘만 나이’만 봐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만 나이 도입’을 내놓았을 때, 계산을 해보니 현재 나이에서 두 살이나 어려져 순식간에 젊어진 느낌이었다. 우습게도 몸에 활력이 넘치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았달까. 아, 나 플라세보 효과를 몸소 체험한 건가.


그 후로 나보다 한 살 어린 남편이 “내년에 40인데, 건강 관리해야 한다.”는 둥, “40살이 되는 느낌은 어떠냐”는 둥 깐족거리며 말할 때마다 “나는 서른일곱이야! 대통령 형이 나이 두 살 깎아준댔어!”라며 항변했고, 실제로도 내 나이가 이미 만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30대로 머물 수 있는 보너스 타임을 잔뜩 얻은 기분이었다.    



 

나는 왜 마흔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1년마다 숫자가 늘어나는 것뿐인데, 숫자가 커질수록 나도 함께 늙어가야만 할 것 같다. 그럼 뇌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몸과 마음을 그 나이만큼 늙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러니 어느 순간 나이를 잊는 게 더 젊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늙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룬 것 하나 없이 나이만 먹다가 세상을 떠나는 거다. 삶의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즐기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다 사라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 


40이 되면, 금방 50이 되고, 환갑을 넘어 칠순까지…. 만약 내가 80세까지 산다면, 이미 남의 수명은 반이 소진된 상태다. 이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뭐든, 뭐라도 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이 머리와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지금 나이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마음속에서 멈추지 않는 강처럼 잔잔히 흐른다. 그래서 요즘 습관이 생겼는데,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나이를 확인해 본다. 내 나이쯤이나 혹은 더 늦게 데뷔하신 작가님을 발견할 때마다 용기를 얻는다. 아, 나 늦은 게 아니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그래서 나이 따윈 앞으로 신경 쓰지 않겠어!라고 쿨한 척해보지만. 그렇지만, 남은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모래시계의 남은 모래가 거의 없어, 모래알이 내려가는 속도가 더 빨라 보이는 착각처럼, 앞으로 나이가 늘어나는 것에 가속도가 붙을 것만 같다. 


그러니 원하는 것을 해야겠다. 나를 좀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1년 후 초가 하나 더 느는 순간 초조함보다는 내일, 모레, 한 달, 1년 뒤가 기대되는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하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그랬으면 지구 상에 ‘후회’라는 단어는 없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도 마음으로 다짐만 하는 쓸데없는 의식은 버려두고, 나태한 몸뚱이를 이끌고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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