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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Jun 12. 2022

괜찮아

정말 그럴까


 괜찮아


아이에게 '사랑해' 다음으로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다.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를 들어 신나게 뛰어놀다가 넘어지거나 종이에 손가락을 베었을 때, 문제집을 풀고 오답에 그어지는 빨간 선을 보고 울먹일 때 등이 그렇다.

그럴 땐 아이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괜찮아~”라고 말한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 일이 너에게 미치는 영향은 조금도 없을 거라는 듯이.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조금 울먹이다가 이내 괜찮아진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훌훌 털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린다.    


 

반면 나 자신에게 “괜찮아.”는 그리 유쾌한 문장이 아니다. 주로 타인에게 나의 상태를 표현할 때 뇌를 거치지 않고 습관적으로 내뱉고는 한다.

예를 들어 “음료수 드실래요?”라는 상대의 소소한 호의에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괜찮아요.”라고 말해버린다. 사실은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켜고 싶은데, 뭔가 한 번은 거절해야 예의를 차리는 것 같다는 멍청한 생각을 한다. 이 잘못된 생각의 시초는 어디쯤일까.

한 번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거침없이 찰박찰박 걷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서 물기에 흠뻑 젖은 신발이 미끄러져 볼썽사납게 자빠진 적이 있다. 바닥과 정면충돌한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도 잠시, 슬랩스틱의 정수를 보여주는 꼴사나운 모습에 민망해져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일행이 ‘괜찮냐’고 물어왔을 때, 아무렇지 않은 듯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거울로 비춰본 엉덩이엔 보랏빛으로 커다란 멍이 들어 있었고, 괜찮지 않았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 때문에 괜찮다고 말한 걸까.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했다.

나는 괜찮지 않은데, 어릴 적부터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하면 주위에서 위로랍시고 ‘그건 별거 아닌 일이야. 그러니 괜찮아.’라고 무마해버린 게 시작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넘어져 난 생채기에 아이가 아파할 틈도 주지 않고 괜찮다고 영혼 없이 다독이던 나의 말이. 날카로운 종이에 베어 손가락에서 스며 나오는 새빨간 피를 보게 되어 놀란 아이의 마음 따윈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나의 말이. 문제집에 얄궂게 죽죽 그어지는 오답 표시에 실망하는 아이의 감정을 부정적인 거라 암묵적으로 압박하는 나의 말이.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강요였던 건 아닐까.

나의 책임감 없는 위로에 내 아이의 감정은 받아들여질 틈 없이 재빨리 무시되고, 괜찮지 않은 게 괜찮은 게 되어버린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타인에게 위로를 건넬 때 가장 먼저 사용하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등의 말을 가볍게 사용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괜찮다.

진짜 나의 마음이 괜찮을 때 괜찮은 거지. 입으로만 괜찮은 건 나의 감정을 무시하고, 상대를 속이는 행위임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괜찮은 척해서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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