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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Jun 05. 2022

고마워요, 브런치. 그리고 나의 토끼 선생님.

여전히 어떤 글을 쓸지 모르겠지만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180일이 지났어요 ㅠ_ㅠ


잠잠하던 핸드폰이 윙~ 울렸다. 화면을 보니, 오랜만에 브런치에서 알림이 왔다.

180일? 내가 글을 안 쓴 지 180일이나 지났다고?


작년 100일 글쓰기 챌린지를 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든 금방 싫증 내고 포기하는 내가 100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면서 지치고 힘들어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도대체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데 절망감을 느꼈다. 당시 나는 100일 정도 쓰면 글의 방향성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크나큰 오산이었다. 지금까지 써 왔던 글이 모인 나의 브런치는 '중구난방 길 잃은 대환장 파티의 현장' 같았고, 마지막까지 그러했다. 때문에 챌린지가 끝나자마자 노트북을 켜 글을 쓰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 따위는 없었다.


사실 한 달 정도만 글을 쓰지 않고,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고민해 보려 했다. 그렇게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여섯 달이 되면서. 내 지능이 많이 떨어지거나, 두 번의 출산으로 인해 뇌세포가 급격히 죽은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손가락은 움직이지도 않은 채 머릿속으로 자학만 해댄 거다.  



   

어느 날 딸아이와 베란다 의자에 마주 앉아 있는데, 아이가 읽고 있는 책에 시선이 갔다. 제목은 『귀 큰 토끼의 고민 상담소』였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토끼의 귀는 무척 길었는데, 그 커다란 귀로 주위의 동물 친구들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 기울여 듣는 듯했다. 저 정도 귀면 나의 작은 소리도, 우물쭈물 목소리도 잘 듣겠지? 왜인지 책에 집중해 있는 아이와 귀 큰 토끼가 겹쳐 보여 말했다.


“선생님. 저 고민이 있는데요. 제 고민 좀 들어주세요.”


나의 쌩퉁 맞은 말에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든 아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고민 있어? 말해봐.”


“정말 들어주시는 건가요? 선생님?”

“네. 당연하죠!”

아이는 신이 난 듯 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지 곧이어 말했다.

“아! 근데 나에 대한 엄마의 고민 말고, 진짜 엄마 고민을 이야기해야 한다~”

가끔 아이가 책상을 가져다 두고, 그 앞에 ‘OO이의 고민 상담소’라고 적어 놀이를 할 때, 내가 말하는 고민들은 모두 아이에 대한 것이었기에, 미리 주의사항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이번만큼은 아이가 이해하지 못해도, 진짜 내 고민을 말하고 싶었다. 말하고 나면 답답함이 조금은 풀릴 것만 같았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아이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글을 정말 잘 쓰고 싶은데요. 쓸 수가 없어요.”

“왜죠?”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제가 게으른 탓도 있고요.”

“음...”

“선생님.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글을 할머니가 되어도 계속 쓰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쓸 수가 없어요.”

“일단! 책을 많이 읽으세요. 그리고 글을 매일매일 쓰세요. 한 줄만 써도 괜찮아요.”

“매일.. 한 줄이요?”

“아니. 한 줄만 써도 되니까 매일 쓰라고요.”

“아…. 네~”

“매일매일 쓰면 잘 쓰게 될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아이의 해결책은 누구나 다 아는 방법이었지만,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매우 옳은 방법이기도 했다.


“고마워요. 선생님.”

아이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꼭 안아주었다. 분명 내가 안은 것인데, 그 작은 품에 포근히 안긴 느낌이었다. 이렇게 커다란 위안이라니. 답답함에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 몰랑몰랑 풀어지는 듯했다.     




그 후 아이의 조언에 큰 깨달음을 얻어 매일 글을 쓰게 되었다면 좋겠지만, 세상 게으른 나는 그게 잘되지 않았다. 수많은 핑계가 내 앞을 가로막았고, 나약한 게으름뱅이인 나는 그 핑계들 앞에 나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거리를 찾느라 분주했다. 매일을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고, 한편으론 그래도 잘될 거라는 허황한 꿈을 꾸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다 보니 18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6개월 동안 아이의 키는 손가락 한 마디쯤 자라 있었고, 베란다에 자리한 화분의 줄기는 작년보다 더 길게 뻗어 풍성한 잎을 피워냈으며, 내 머리카락 또한 허리까지 자라 있었고, 남편의 머리에서는 새치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글에는 변화가 없었다. 너무 오랜 겨울잠을 자, 이대로 두면 생명이 다할 것 같아 급히 흔들어 깨워야겠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가 한 달마다 보내준 알람은 고마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30일, 60일, 90일...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주는 메시지가 고마웠다. 사실 150일까지는 못 본 척 지나갈 수 있었는데, 180일째 알림을 받고 나서는 정신 못 차리는 내 어깨를 한번 세게 흔들어 준 것 같았다.  

   

사실 지금도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랜만에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보니, 글을 쓰지 않을 때보다 쓰는 삶이 더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중구난방 대환장 파티의 중심에 있더라도. 일단 쓰고 나니 후련하다.


나는 간사한 인간인지라, 언제 또 나의 글이 긴 겨울잠을 자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또다시 나를 흔들어 깨워주길 바란다.

"고마워요. 브런치. 고마워요. 나의 귀 큰 토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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