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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Jul 25. 2022

아줌마의 세계

나 드디어 아줌마가 된 것 같아!


- 우와! 나 진짜 아줌마 됐나 봐!

- 뭐? 이제야?

- 응!

- 아이를 둘이나 낳았는데, 이제야?

- 응! 그 전엔 아줌마라고 느끼지 않았는데, 진짜! 진심으로! 아줌마의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아. 이제야 인정했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놀라워하는 나를 보는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9년 차 육아 8년 차면 아줌마라고 인정할 법도 한데, 그전까지 스스로 아줌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네 꼬마 아이들이 간혹 아줌마라고 부르면 그 호칭이 어색하고 나를 가리키는 것 같지도 않았었다. 한데 요즘엔 나 스스로가 아이들에게 나를 아줌마라고 칭하곤 한다.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고, 거부감도 들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줌마라는 호칭이 자연스레 스며든 건 언제부터였을까.     







 얼마 전 아이들을 모두 재운 후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켰다. 어떤 드라마와 영화가 새로 업데이트되었는지, 요즘 뜨는 건 뭔지, 나의 눈을 사로잡는 취향저격 인생 드라마를 찾느라 30분을 소비했다. ‘이건 다음에 봐야지~!’라며 찜을 해두기를 여러 차례. 이제 슬슬 한편 봐 볼까나~ 하고 찜한 목록에 들어갔다. 어머나! 세상에! 장르가 모두 로맨스 로맨스 로맨스 핑크 하트 뿅뿅뿅이다! 이. 럴. 수. 가!

나는 원래 스릴러와 좀비 마니아이다. 로맨스 따위! 피 튀기고 음침하고 목부터 등까지 소름 돋는 걸 좋아한단 말이다. 언제부터 취향이 바뀐 거냐! 


사실 몇 년 전부터 전조증상이 있었다. 아직 미혼인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는 거다. 예전엔 친구들의 연애사에 관심도 없었고, 얘기 듣기도 지루해했는데 말이다. 


최근 연애가 한창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어. 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와~ 진짜? 완전 스윗 하다~! 또 얘기해봐. 전화기를 붙들고 입꼬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미소 짓는 나를 발견했다. 


문득 그 내용이 그 내용인 PPL 범벅인 아침드라마가 망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줌마들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할까나. 지금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충족하는 것이다.     







 내가 아줌마라는 걸 느끼지 못했을 때는 아줌마의 세계가 싫었다. 난 절대 나이 먹지 않을 테다! 젊게 살 거야! 그 세계에는 들어가지 않으리! 라며 결의를 다졌을 정도다. 하지만 요즘은 나의 세계에 아줌마의 공간이 새로 자리해 흥미롭다. 특히 예전에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신기해했던 행동을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을 때 재미있다.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 말을 걸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원래 서로 아는 사람들처럼 대화하기. 길을 가다 오지랖 넓게 가방 지퍼를 열고 가는 사람에게 알려주기 등등. 특히 모르는 아이가 넘어지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내 아이처럼 행동하게 된다. 우산이 없는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준다거나, 넘어진 아이의 흙투성이 바지를 털어준다거나.


아줌마가 되니 세상이 좀 더 친근하고 재미있어졌다. 아줌마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의 세상과 많이 다르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이토록 흥미로운 아줌마의 시각을 갖게 되어 다행이다. 하마터면 지루할뻔한 참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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