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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Jan 08. 2023

나이 들수록 낯가림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낯을 가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이를 출산하고 두해 후부터였던 거 같다. 한두 번 만난 사람과는 마음 편히 내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며 대화하기 어려웠고, 친해지려면 다소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마음이 맞으면 친해지고, 일단 친해지면 그 관계는 오래 유지된다. 다만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창 시절에나 사회생활 중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무리 없이 적응했으며, 낯가림을 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모임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는 새로운 환경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낯을 꽤 가렸으며, 편하지 않은 모임에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30대가 되어서야 나 설마 사회부적응자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다.


왜 사람이 이렇게 180도로 바뀐 걸까. 짐작되는 생각하는 이유는 환경의 변화였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환경이었다면,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가 중심이 되는 환경이 되었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난 후부터는 퇴사를 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았는데, 그때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기관에 보내지 않았으니 집에서 하루종일 아이와 있으면서 어른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24개월 아기의 언어로 대화하다 보니, 어쩌다 만나는 집 밖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고, 말을 약간 더듬기도 했다. 뇌의 30%가량이 통째로 날아간 느낌이었다. 아이로 인해 만나는 사람들과는 대화할 때 조심스러움이 크게 몰려왔다. 대화의 주제는 모두 ‘아이’이기 때문에 예전의 실없는 소리와 농담이 반을 이루던 대화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모습 그대로 보일 수 없었고(예전 친구들에게 자주 듣던 것처럼 사차원이니 돌아이니 라는 말을 들을 순 없지 않나), 스스로도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러한 것이 지속되다 보니 결국 내 모습이 되었다.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같은 학부모인데 몇 번 만나지 않고 언니언니 하며 친하게 지내던가 서로 반말을 하는 경우를 보면 신기하다(물론 나도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오랜 시간 유대관계를 갖으며 맺어진 데다 개인적으로 반말은 영 어색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인데 서로 거리낌 없이 친해 보이는 것도 이젠 신기하게 다가온다. 다들 외향적인 건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남편이 얘기한다.

“다 똑같아. 그 사람들도 그냥 그런 척하는 거지. 진짜 찐친들처럼 친한 건 아닐걸? 비즈니스야. 우정을 찾는 게 아니라, 사회적 미소를 지으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뿐이라고.”

정말 그럴까? 하지만 다들 보면 친화력 갑인 것 같은걸.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건,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내가 예전과 반대로 바뀐 진짜 이유는 이것인 것 같다. 예전엔 ‘나’를 먼저 생각했다면, 바뀐 후에는 ‘남’을 더 생각했다는 거다. 예전에야 남의 기분이 어떻든 내가 좋은 게 우선이었던 거 같다. 그러니 남 시선이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거다. 지금은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 이 점은 지금 글을 쓰며 인정하게 되었다. 그전엔 애써 아니라고,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 맞다. 그러니 진짜 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가면을 쓰는 거다. 진짜 친하거나 편한 사람이 아니면 말이다. 요즘엔 이 가면을 좀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차원 소리를 듣더라도 거침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도 내 모습을 되찾고 싶은가 보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느 분에게 한 적이 있다. 예전의 반짝이던 유쾌함을 되찾고 싶은데,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분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그것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분명 내 안에 있는데 바라보지 않을 뿐.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행이다 싶었다. 나의 모습이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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