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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03. 2021

오후 1시의 청년

꾸준함의 힘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옆 공원에 젊은 청년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다. 청년은 항상 같은 벤치에 카메라 장비를 풀어 자리를 잡는데, 그 벤치의 뒤편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앞으로는 너른 잔디가 펼쳐져 있어 경치가 좋은 자리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하고는 세심하게 렌즈를 조정한 후, 두 걸음 정도 떨어져 본인의 모습을 찍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정면을 찍고, 후에는 측면을 찍는다. 입은 옷 안쪽을 펼쳐 보여 찍기도 한다.


처음 몇 번 봤을 때는 ‘뭐 하는 거지?’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일다가 이내 관심을 끄고는 했는데, 마주치는 기간이 길어지자 이제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저 청년은 도대체 뭘 찍는 걸까? 쇼핑몰 운영을 하는 건가? 그렇지만 쇼핑몰이라고 하기에는 매번 입고 있는 옷이 다다. 옷 촬영을 나왔다면 다른 옷으로 교체하며 찍을법한데 말이다. 그리고 카메라에서 두세 걸음 정도만 떨어져 찍기 때문에 전신 샷을 찍지도 않는다. 쇼핑몰 이미지에 전신 샷은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당연히 뒷모습 촬영도 하지 않는다. 정면과 측면 촬영뿐이다.

그렇다면 근처 예술대학교의 사진과 학생인 건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걸 수도 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찍어 모으는 거다. 그렇지만 옷을 찍는 것 같은 느낌도 있으므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 청년을 공원에서 본 게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니 그 시간이면 졸업했을 것 같은데…. 이것도 좀 아닌 것 같고. 


오후 1시에는 공원에 사람이 가장 많을 시간이다. 하교하는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공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휘젓고, 어르신들은 공원 한쪽에서 바둑을 두거나 설치된 운동기구로 운동을 하신다. 나와 같은 1학년 학부모들은 삼삼오오 놀이터에 모여 있기도 하고, 공원 지킴이 어르신들이 노란 형광 조끼를 입고 짝을 이루어 순찰하기도 하신다. 하루 중 공원이 가장 활기차게 들썩이는 시간대에 청년이 있는 공간만큼은 다른 세계인 것처럼 전혀 방해받지 않고 묵묵히 매일 같은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사진을 찍는다. 그의 집중력이 실로 놀랍다.


오늘도 어김없이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청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와~ 진짜 쟤는 뭘 하든 성공할 것 같아. 근데 진짜 뭘 찍는 걸까?” 

    

무엇이든 꾸준하게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 꾸준함이 100일을 넘기기란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100일 챌린지가 그리 쏟아져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설화 속의 웅녀도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고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 않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100일 동안 꾸준히 해낸다면, 그 일은 나의 습관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이다. 


수많은 100일 챌린지들을 보며 ‘저게 왜 어렵지? 설마 저걸 못하려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0일 동안 무언가 꾸준히 해본 기억이 없다. 물론 초·중·고등 12년을 결석 한번 없이 개근하긴 했지만, 그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라 논외로 치자. 강제성이 없던 대학생 때는 땡땡이도 치고, 지각도 많이 했었다. 


강제성이 없는 꾸준함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운동이든 공부든 놀이든, 무엇이든 꾸준히 오랫동안 지속한다면 그 분야에서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음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 나는 인생 최초로 100일 챌린지를 하고 있다. 매일 글쓰기 73일째인데, 아직도 하루하루가 험난한 고개를 넘듯이 힘겹다. 글을 쓰는데 어렵다기보다는,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는 것이 힘들다. 꾸준하게 일을 진행해본 적이 없는 나는, 매일 같은 일을 하기에 앞서 갑자기 샘솟는 수많은 핑곗거리를 물리치기에 여념이 없다. 챌린지를 절반이나 훌쩍 지나왔지만 아직도 힘든 걸 보면, 글 쓰는 인간이 되긴 멀었나 보다. 웅녀처럼 100일이 되어야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래도 어찌 되었든 오늘도 쓴다. 노트북을 열고 잠시 망설이다가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면 무어라도 쓰긴 쓰니까. 이런 시간이 도움이 될 날이 오기를.

     

오후 1시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그 청년은 무엇을 하든지, 아마 그가 원하는 방향에 가까워질 거다. 

꾸준함은 그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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