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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04. 2021

정리정돈 유전자


 “어질러진 게 아니고, 원래 자리에 있는 거야.”

물건이 어지러이 수북이 쌓인 책상을 보고 참다못한 엄마가 정리라도 할라치면 절대 손대지 못하게 하며 하던 말이었다.

가로 120cm 길이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책과 필기구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엉켜 있었다. 엄마는 내 책상을 볼 때마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정리정돈의 신이라 불려도 될 만큼 매일 바지런히 집안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엄마는 물건을 쌓아두는 나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나중에는 집 안 청소 시간에 내 방의 문을 꼭 닫아 놓고는 그곳을 제외하고 청소를 하셨다. 내 방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화가 치민다고 하시며.


변명을 해보자면, 타인의 눈에는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 나에게는 각각의 물건이 제 자리에 놓여있는 상태였다. 믿기 힘들겠지만, 혼돈의 카오스 같은 공간에서 필요한 물건들의 위치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쏙쏙 찾아내어 사용했다. 오히려 엄마가 나 몰래 정리한다며 물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필요한 물건들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야 했다. 그럴 때마다 화가 치솟았다.

아니! 분명히 내가 사용하기 편한 상태로 배치되어 있는 건데, 그걸 왜 흩트려 놓는 거야!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예전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8살 아이의 책상을 보면 이게 책상인지 쓰레기 더미인지 알 수가 없다. 읽던 책, 그림 그리던 스케치북, 슬라임 통, 종이접기 한 색종이들, 연필꽂이에서 탈출해 아무렇게 뒤엉켜 있는 연필과 색연필, 가위와 풀과 정체 모를 종이 쪼가리까지. 아무리 정리를 해도 아이가 책상에 앉는 순간 어질러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래서 이제 절대 책상을 치우지 않는다. 아이 스스로 치우게 한다. 하지만 치운다는 게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물건 더미들이 고대로 다른 공간으로 옮겨져 책상 위의 공간이 드러나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예전 나의 모습과 똑 닮아버려서 아이가 정리하지 못하는 게 이해가 간달까.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는 고소해한다.

“어쩜 이렇게 너랑 똑같니~ 속이 부글부글 끓지? 깔깔깔~”

아니요. 엄마. 전혀 부글부글 끓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하하.

    

그러고 보면 정리정돈을 하지 못하고 어지르기를 잘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건가 싶다. 첫째 아이는 소름이 돋을 만큼 나와 같은 성향을 보이는 데 반해, 4살 둘째는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정리정돈을 잘한다. 장난감을 다 갖고 놀면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고, 본인이 벗은 옷은 잘 개어 놓는다. 밥이나 간식을 먹고 난 후에는 스스로 그릇을 싱크대에 던져 놓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을 보면 “지지~”라고 하며 주워서 나에게 가져다준다. 이 아이는 나에겐 없는 ‘정리정돈 잘하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리정돈 유전자가 없는 나에게도 가끔 정리의 신이 올 때가 있었다. 바로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을 때다. 그동안 마음의 평안함을 주던 어지러운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나도 모르 손이 움직여 책상 위 수북이 쌓인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꽤 긴 시간을 정리하고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잠시뿐. 공부를 시작하려 들면 이미 정리하는데 집중력을 다 쏟아부어서 공부할 힘이 나지 않는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앉아 있는 내 책상만 봐도 너저분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리 유전자가 없더라도 훈련을 하면 어느 정도는 보완이 되지 않을까 싶어 시험을 앞둔 때처럼 정리해볼까 한다. 나의 공간은 스스로 정리를 해야 어질러도 금방 다시 정리할 수 있을 거다. 매일 시간을 정해 나는 나의 책상을 아이는 아이의 책상을 정리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절대 아이의 책상에 손을 데지 않는다는 거다. 정리도 스스로 해봐야 느는 거니까. 정리의 신인 나의 엄마는 그 순간을 못 참고 내 책상을 치웠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 스스로 치우게 했다면 시행착오 끝에 지금보다는 조금 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옛날 학습지 광고가 생각난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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