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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05. 2021

아픔을 흡수할 수 있다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


 저녁을 먹고 한창 깔깔대며 노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안아 들었는데, 겨드랑이 사이로 넣은 손이 뜨겁다. 후끈후끈하고 싸한 느낌. 재빨리 아이 이마에 입술을 대보니 뜨겁다. 이런!

TV장 서랍에 있는 구급함에서 체온계를 꺼내 귀에 대었다. 삐-  38.9°.

멀쩡해 보였는데 언제 열이 난거지?


주방 서랍장에서 해열제를 꺼냈다. 약병에 적당량을 담고 아이를 안아 입안에 두세 방울 정도 떨어트렸을 뿐인데, 아이가 헛구역질하며 저녁에 먹은 음식물을 모조리 토해내고는 울어댄다. 다시 시도해봤지만, 헛구역질하며 모두 뱉어내 버렸다. 눈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양 볼의 피부가 새빨갛게 터지도록 울던 아이는 그새 지쳐 잠들어 버렸다.


해열제를 거의 먹지 못하고 잠들어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수건으로 목 뒤와 귀 뒤, 이마, 겨드랑이, 사타구니를 닦아주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한 시간마다 열체크를 하며 잠을 설쳤다. 밤새 열로 끙끙 앓던 아이는 새벽에 잠에서 깼다. 열이 높아 어쩔 수 없이 우는 아이를 꽉 붙잡고 약을 밀어 넣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해열제를 삼켰고, 지친 아이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나도 그제야 잠시나마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해열제의 약효가 떨어졌는지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아픈 탓인지 떼가 늘었다. 이리해도 저리 해도 떼만 부릴 뿐이었다. 사과를 달라고 했다가 안 먹는다고 했다가 다시 달라고 울어댔다. 안아 달라고 했다가 내려달라고 했다가 다시 안으라고 울어댔다. 밥은 안 먹고 과자나 젤리만 달라고 징징댔다.


아….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 아이가 아픈 것도 안쓰럽고, 징징대는 것도 받아주기 힘들다.  



   

징징대는 아이를 마주 안고 아이의 이마에 손바닥을 대고는 말했다.

“엄마가 대신 아야 해줄게. 엄마한테 아픈 거 다 줘.”

아이는 칭얼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러어어~”


“엄마는 괜찮아. 아픈 거 와도 하나도 안 아파. 엄마 손바닥에다 아픈 거 다 줘~”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 파고든다.


“아프지 마~ 엄마가 아픈 거 다 가져갈게.”

이 말을 하는 순간, 정말로 아이 이마에 댄 손을 타고 아픈 기운이 나에게 흡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좋은 기운이 아이에게 흘러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완전히 허황된 생각은 아닐 수도 있다. 아이가 갓난아기였던 시절 모유 수유를 할 때, 우리는 절대 끊어지지 않을 단단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감이란 게 이런 거구나’라고 인생 최초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성장한 아이는 나의 생활패턴을 고대로 따라간다. 내가 늦게 자면 늦게 자고 일찍 자면 일찍 잔다. 엄마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거다.


아이와 엄마는 설명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 기술이 발전하면 서로의 기운을 흡수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음... 한 오억 년쯤 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더 빠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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