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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14. 2021

불량품 탐지기

'쿨손'의 탄생


 서점 한쪽 코너에 아이가 좋아하는 피규어가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앞에서 오래도록 구경을 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나 이거 해도 돼?”


잠시 고민을 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해주는 쪽이었는데, 커가면서 어느 정도 경제관념은 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망설이는 동안, 남편이 아이에게 말한다.

“그럼 OO이 용돈으로 사자. 어때?”


동의한 아이는 한참을 고심하여 피규어 상자를 골랐다. 상자 안에는 캐릭터가 무작위로 들어가 있어 무엇이 나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전시된 피규어들을 보며 어두운 색의 캐릭터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저거 못생겼다. 저것만 안 나오면 돼.”


집에 오자마자 상자를 뜯었다.

“어?!”

저것만 안 나오면 된다는 그 캐릭터였다. 그리고 캐릭터를 받치는 받침판의 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불량품인 거다.


“으앗! 이게 뭐야!”

우리는 모두 실망했다. 게다가 부러져 있기까지 하다니! 구매처와는 거리가 꽤 있어 이걸 바꾸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이가 말한다.

“괜찮아. 나 이거 좋아. 부러진 건 본드로 붙이자.”

남편이 접착제로 붙이니 다행히 잘 붙었다. 휴......


생각해보니 아이가 여러 종류 중에 하나를 골랐고, 그 종류의 상자가 3개가 남아 있어, 아이의 손이 닿지 않아 내가 꺼내었다.

아차!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나의 손이 닿은 것. 내가 세 개 중 하나를 집었다는 것.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손으로 고르는 족족 불량품을 집어낸다는 거다.

옷을 사면 어딘가 실밥이 뜯어져 있고, 책을 사면 제본이 잘못된 게 걸리고, 세탁기를 샀는데 뚜껑을 열었을 때 고정되지 않는 하자가 있기도 했다. 물건을 4~5개 구매하면 그중 1개는 불량일 정도였다. 그 수많은 불량품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이쯤 되니 원래 불량품이 많은 것인지, 내 손이 불량품 탐지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 손은 불완전한 것을 끌어당기는 초능력 같은 힘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내 인생도 불완전한 거라고. 불완전한 나의 세계에서 ‘아닐 불(不)’을 조금씩 지워내 ‘완전’을 만들어 가기 위한 여정을 하고 있는 거라고. 이 여정이 언제 끝날지, 혹은 끝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부러진 받침다리를 접착제로 붙이자는 쿨한 아이의 반응 앞에서 어쩌면 그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 했다.


지금껏 나는 불량품이 자석처럼 붙어오는 나 자신을 소극적을 만들어 갔다. 불량품이 나오면 교환이나 환불하기 귀찮아 점점 물건을 사지 않게 되었고, 이윽고 소비행위를 남편에게 모두 떠맡기고 있었다. 내가 고르면 귀찮아질 일이 발생하니까. 일을 두 번 해야 하니까.

이런 생각들은 소비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도 서서히 퍼져가기 시작했다. 나태함에서 오는 무기력함을 비겁하게 이것의 이유 뒤에 숨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불완전에서 不을 치워낸다고 '완전'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세상에 완전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그저 불완전한 것을 고쳐가며 적응하고 살아가는 거 아닐까. 우리가 완전한 것이라 생각하고 달려가는 곳도 시간이 지나면 불완전한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거다. 세상에 완전한 기준은 없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변하듯 완전함의 기준도 형태가 없어 끊임없이 변화되어 간다.

그러니 불완전한 나의 삶에 위축될 필요가 없음을 안다. 나의 아이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던 걸까.




식물을 잘 기르는 손을 'green thumb'이라고 하고, 손에 닿는 건 모두 성공하는 사람은 '미다스의 손'이라고 하며, 손재주가 있어 이것저것 잘 만드는 사람은 '금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불량품을 끌어당기는 나의 손은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뭔가 긍정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번뜩이는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단은 불량품을 집어내도 이제는 별 감흥이 없어 쿨하게 웃어넘길 수 있으니 '쿨손'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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