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핵심가치, 창조성과 성장
"근본적 안식기"를 갖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깊이 파헤쳐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쭉 해 왔던 방식- 나는 어떤 사람인가? 를 공책에 끄적거리는 것으로는 결론을 얻기가 어려웠다. 계속 제자리에서 도돌이표 같은 질문만 던지는 느낌이었다. 꼭 지름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아탐색을 위해 잘 연구된 "방법론"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휴직을 준비하면서 아이덴티티 관련 수업을 수강하고 코칭을 받았다. 이를 통해 내가 가장 중시하는 핵심가치들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치와 그걸 이루기 위한 도구를 혼동하기도 한다. (...) 그러나 돈을 벌거나 부유함을 얻기 위해 뭔가를 시도했는데 그 일이 고단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핵심가치가 아니다. 핵심가치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시간이나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진짜 핵심가치가 아닌 'Should'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가치란, 바로 지금부터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하며, 그 가치를 향한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안도감과 편안함, 그리고 삶의 의욕을 느껴야 한다.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p.214-215
나의 핵심가치는 창조성, 성장, 독립성, 그리고 몰입이었다. 이것이 나의 핵심 가치구나, 깨닫는 순간 나 역시 "안도감과 편안함, 그리고 삶의 의욕"을 느꼈다. 그동안 살면서 생각 없이 찍어 왔던 점들이 이어지는 기분이랄까. 그 해방감을 기억하고 붙들어 놓고 싶어 기록을 남긴다.
나의 핵심가치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창조성"이다. 왜 이 말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내 인생에서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들, 가장 행복함을 느꼈던 경험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나다운 것, 독특하고 새로운 것, 아무도 하지 않은 것, 그런데 정말 멋진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 초등학교 시절: 내가 직접 쓴 동화를 책 형태로 만들어 동생에게 읽어주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신 에오스와 태양의 신 아폴론에 대한 내용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원래 신화의 엔딩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으로 신화를 각색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딘가로 이동 중인 따뜻한 차 안에서, 나는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을 동생에게 읽어 주었고 운전하는 아빠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흐뭇하게 듣고 계셨던 기억.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자발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 이런 완벽한 상황은 나중에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이 기억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충족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중학교 시절: 수행 평가로 음악신문을 만들었다. 나는 음악 실기엔 약했지만 뽀글머리를 한 천재 음악가들의 인생과 그들을 탄생시킨 시대 배경에는 큰 흥미를 느꼈다. 아무도 그렇게까지 공들이지 않는 수행평가였는데, 나 혼자 정말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에 무척 들떴다.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를 잘 다듬어 기사를 쓰고, 컴퓨터로는 예쁘게 편집할 자신이 없어 모든 기사들을 다 출력해서 큰 용지에 붙였다. 붙이기 전에 몇 번이고 배열을 달리 해 보고, 새로 이미지도 추가하면서 밤새 몰입했다.
- 회사 생활: 매일 다루는 엑셀이 눈에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좋지 않다고 푸념했었지만, 나는 사실 엑셀이 좋았다. 탭 1, 탭 2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엔터 한번에 결론이 나오는 아름다운 세계! 나는 내 엑셀 안에서 모든 판매 트렌드의 변화를 트랙킹하고 예측할 수 있는 완벽한 체계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물론 1) 내 엑셀 실력이 그런 세계를 구현하기에 많이 모자랐고, 2) 판매는 내 엑셀 파일 하나로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의 두 번째 핵심가치는 "성장"이다. 내가 생각하는 성장은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라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깝다. 어제보다 오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더 발전하고 싶다. 잘못했던 일은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예민하고 불안을 쉽게 느끼면서도 선택의 기로에서 가끔 모험을 택할 수 있었던 건 이 "자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학업에 몰입했다. 대학 졸업 후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대학원에 진학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또는 시민단체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학교 밖에 더 큰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취업을 택했다. 입사 후에는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학습 기회들을 놓치기 싫어서 회사 온라인 어학 강의들을 거의 매달 신청하고 수강해 왔다. 아직도 도서관에 가면 뷔페에 온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