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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Mar 18. 2017

휴직하고 뭘 할까

레퍼런스 없는 인생

휴직을 결심하고 나서 열심히 무급휴직의 참고 사례를 찾아다녔다. 나처럼 커리어의 중간을 잘라먹고 월급 한 푼 안 받으며 "근본적 안식기"를 택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남들은 뭐 하고 살았나? 어찌 살면 좋다던가? 계획 다 세워 놨다고 큰소리 뻥뻥 쳤지만 실은 불안했던 것이다. 블로그나 잡지, 신문에서 찾을 수 있는 휴직은 대부분 출산 직후의 육아휴직 또는 임신을 준비하는 난임 휴직이었고 내 삶의 참고 자료로 삼기엔 무리가 있었다. 심지어 구글에서 찾은 갭이어(Gap year) 관련 기사들마저 30대 후반- 40대의 중간관리자 레벨의 은퇴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나와 비슷한 사유로 휴직하는 사람의 블로그를 찾으면 퇴근길에 건조한 눈을 비벼 가며 모든 포스팅을 탐독했다. (다음날 그 블로거는 블로그 통계를 통해 나의 은밀한 애독 행위를 발견하고는 친히 이웃추가 신청을 하셨다.)


그렇게 시력이 안 좋아지던 어느 날, 내 휴직의 레퍼런스는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인생이 다른데 무엇을 참고하고 무엇을 따라 한단 말인가. 남의 인생을 참고 문헌 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경험과 시행착오에 기반해서 인생을 써 내려가야 하는 게 아닐까?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늘 나에게 빛나는 인사이트를 선사하는 대학원 친구가 그랬다. 너무 참고문헌이 많고 잘 연구된 주제는 논문 쓰기가 더 어렵다고. 오히려 레퍼런스 별로 없는 주제가 자기 논문 쓰기에 더 좋다고.


 나는 검색을 멈추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는 비공개로 혼자만 끄적이려 했던 휴직의 기록을 브런치를 통해 조금씩 공개해 보기로 했다. 이 글이 나 같은 소심이들의 대담한 휴직에 작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에 읽은 정혜윤의 <사생활의 천재들> 중 영화감독 변영주의 '안식기'에 대한 글이 있어 일부를 소개한다.


 저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그건 가장 부지런해야 한다는 벌이었습니다. 책 읽고, 영화 보고, 미드 보고, 음악 듣고, 죽어라 뭔가를 보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책 목록엔 미야베 미유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지냈습니다. 어떤 날은 나를 쓰다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나를 혼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나에 대한 글을 써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나에게 상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 지혜로워졌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침잠하기로.

 그런데 그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즐거워졌습니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볼까? 오늘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볼까? 그 시간은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턴 빨리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잘하는 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내가 나를 위로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영주야!" 하고 부릅니다. "영주야! 너는 어떤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니? 영주야! 너는 영화가 왜 좋니? 영주야! 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니?" p.97-98


 * 변영주 감독 역시 일종의 '근본적 안식기'를 통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후 그녀는 당시 읽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영화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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