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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May 05. 2021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새로워진다

(1) 중국어와 함께하는 건전명랑 생활

거의 두 달을 준비한 TSC(중국어 말하기) 시험이 끝났다. 진급에 가산점이 되는 외국어 점수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제2외국어 수업을 들은 뒤 n 년만에 다시 보는 중국어였다. 게다가 필기도 아니고 회화 시험을 봐야 하다니. 나는 현존하는 TSC 강의 중에서 가장 긴, 장장 80강의 온라인 강의를 신청했다. 일단 강의를 다 듣고 보면 뭐라도 되겠지. 개당 30분-50분의 강의였고, 1.2 내지 1.4배속으로 들으면 출근길에 1.5개, 퇴근길에 1.5개를 들을 수 있었다.


1.4배속 한 라오스(老师, 선생님)의 목소리는 마치 음성 변조를 한 사람처럼 기괴하게 들렸지만 한번 익숙해지니 괜찮았다. 어느 날 1.4배속을 하지 않고 원래 속도로 들은 라오스의 목소리가 너무 낭랑하고 듣기 좋아서 깜짝 놀랐다. 다시 1.4배속 버튼을 눌러 음성변조 목소리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미안합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라오스는 늘 80년대 도덕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톨스토이, 노자, 공자, 저명한 작가들의 명언들을 가지고 수업 첫 문을 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괴테의 명언입니다. 그럼 오늘 수업 시작하죠~”

“쾌활함이나 상냥한 마음씨는 쓰면 쓸수록 많이 생겨난다. 에머슨의 명언입니다. 따지아 하오(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리고 항상 수업 마지막을 이 말로 마무리했다.


여러분,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 따라 해 보세요.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새로워진다!


아… 처음엔 아 정말 나의 미감에 맞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만사를 삐딱하게 보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 진급 때문에 팔자에 없는 중국어 공부를 하게 되어 입이 댓 발 나온 나는 수업 초반에 나오는 명언의 진부함에 매번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아, 진부하다) 매일매일 강의를 듣다 보니 어느새 이 중국어 수업의 건전하고 명랑한 분위기에 점점 동화되었다. 회사에 도착할 쯤이면 이미 한두 강을 완강한 나는, 강의를 다 들었다는 소소한 뿌듯함을 느끼며 라오스와 함께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새로워진다!"를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지하철 계단을 씩씩하게 걸어 올라가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초급 수준의 외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점점 내가 쓸 수 있는 언어의 수준에 맞춰 사고가 점점 단순화된다. 우리는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말도 두세 문장으로 에둘러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 네이티브지만, 처음 접하는 외국어로는 언어 수준이 초등학생 수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의 만혼 풍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내 머릿속에 ‘아니 만혼이 뭐가 문제야? 개인의 만혼 선택에 이 말 저 말을 더하는 사회 풍조가 더 문제다!’라는 삐딱한 생각이 들더라도, 정작 중국어로는 그 재기 발랄한 의견을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라오스는 항상 수강생에게 강조했다.

“여러분, 시험장에서 여러분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말할 수 있는 문장을 말하는 게 중요합니다.”


라오스는 초등학생 수준밖에 말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비장의 무기 ‘템플릿’을 소개했다. 템플릿이란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써먹을 수 있는 마법의 문장.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요즘 현대 사회에서 이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다 다릅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점은….”

“종합하자면,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마법의 문장에 해당되지 않는 상황은 거의 없다. 사람마다 의견이 안 다른 현상이 어디 있으며, 지나치게 해서 좋은 일이 세상에 뭐가 있는가? 그러니 이런 템플릿을 외워두면 시험장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어떻게든 외운 문장만으로도 시간을 그럭저럭 채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릿속엔 말하고 싶은 빛나는 문장들이 가득한 한국어 네이티브가, 이런 템플릿을 앵무새처럼 달달 외우고 있자면 어딘지 모르게 처량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라오스가 수백 번을 강조한 “내가 말할 수 없는 레벨의 문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희한하게도 이 훈련은 사람을 단순하고 긍정적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계속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한국어를 근사하게 구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즉 머릿속에 최대한 많은 글을 집어넣고 최대한 더 길고 복잡한 문장을 뽑아내려 애써왔다는 것이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유행어)과 달리 나는 복잡한 세상을 더 복잡하게 읽어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중국어로 할 수 있는 문장 수준으로 생각하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 훈련을 아침저녁으로 하면서 사람이 소박하고 명랑해졌다. 인생을 그렇게 어려운 말들로 살아갈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은 초등학생 수준의 언어로도 밥을 사 먹고 약속을 잡고 사회 문제에 대한 자기 의견을 떠듬떠듬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만혼 현상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점은….’이라고 템플릿 문장을 말할 때의 자기 배반감은 어쩔 수가 없지만…


무엇보다 외국어 공부는 단순하고 명확한 세계, 매일 쌓아 축적할 수 있는 세계다. 라오스의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새로워진다!”는 거짓이 아니었다. 날마다 모든 면에서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국어에 있어서는 나아지고 있는 나날이었다. 어제 몰랐던 단어를 오늘 알게 되고 어제 몰랐던 접속사를 오늘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의 일도 집안의 일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없지만 어쨌든 어제 외운 중국어 단어는 오늘 아침에 이를 닦을 때 귓가에 우렁우렁 울렸다. 비록 이틀 뒤에는 다시 "아... 그 단어가 뭐더라?"하고 사라졌지만 말이다.


어제보다 새로워지는 나를 느낄 수 있는 세계, 인풋을 넣으면 아웃풋으로 보이는 세계에 나는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지 점수를 따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지만 언어를 배우는 과정 자체에서 이상한 쾌락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젠 더 이상 점수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점수를 넘어서,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는 모 등산가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순수하고 맹목적인 열정이자 오기였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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