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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Oct 28. 2022

흘려도 괜찮은 2인분의 삶

아이와 나의 건강한 거리

“흘리지 않는 1인분의 삶”이라는 모 평론가의 말을 좋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독립이었다.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또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성숙한 삶이라 여겼다. 부모님으로부터 일찍 독립해 떨어져 살았기에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남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 편하게 사는 것보다 체면과 염치, 순화하자면 명예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깨달았다. 자유와 독립은 육아와는 정반대에 있는 말이었다. 나는 이 아이를 혼자 볼 수가 없었다. 혼자 볼려면 볼 수 있지만 그러면 몸이나 마음 어딘가가 얼마 가지 않아 삐걱거렸다.


나는 아이를 나 혼자 밤을 새서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과제 정도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 혼자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육아는 아무 도움없이 혼자서 독박을 쓰고 '하드캐리'할 수 있는 조별과제가 아니었다. 휴직이 끝나면 어차피 아이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라야 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 육아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흘리지 않는 1인분의 삶 따위는 이제 내게 없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수습되지 않는 흔적을 여기저기 튕기며 살게 되겠지. 복직 후의 나는 어린이집에, 시댁에, 친정에, 회사에 여기저기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하는 아쉬운 소리를 하며 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제 나의 부족한 역량과 부족한 체력과 부족한 열정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게 뭔가를 흘렸을 때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줄 만큼 너그러워졌다. 서로 흘리고 묻히고 닦아주고 또다시 흘리면서 사는 게 인생사라고 믿게 되었다.


단정하게 일인분씩 담긴 일본 가정식처럼 살고 싶었지만, 아마 아이가 있는 내 삶은 그것보단 부글부글 끓는 찌개 위로 여러 사람의 숟가락이 왔다갔다하는 한국식 밥상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나의 한계를 인정한 나는 시댁과 친정에 말씀드려 정기적으로 주차와 요일을 정하고 오셔서 아기를 봐달라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비가 오고 날씨가 궂어도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힘들 때에 어쩌다 이벤트성으로 부탁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 방문으로 약속해두니 나도 사전에 미리 계획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이번에 어머님 오시면 나는 무슨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셔야지, 무슨 책을 빌려봐야지 같은 소소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혼자 아이를 보는 일상에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몇 시간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아이를 대하는 목소리 톤 자체가 올라갔다. 아이의 사진을 더 많이 찍어주게 되었다. 아이의 예쁨을 더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너의 것이 아닌 나의 시간이 온전히 있어야 너를 더 사랑해 줄 수 있다는 역설.


그렇게 주어진 자유시간에 거의 2년만에 펌을 하러 미용실에 갔을 때였다. 오래 알고 지낸 헤어 디자이너 언니가 머리를 잘라주면서 유튜브에서 안무가 배윤정 씨의 산후우울증 이야기를 봤다고, 자기는 산후우울이 무서워서 출산이 난다고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괜찮아요. 산후우울증 오면 병원 가서 약 먹고요, 아기 맡기고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지면 금방 좋아져요.”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산후우울이 오면 약을 먹고 사람을 쓰라고 한 그 선배의 말은 어쩌면 경험담이었겠구나. 그 뒤에 생략되어 있었던 말은 “저도 그랬어요.” 였을 수 있겠다.


그 말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그 선배는 아마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들고 낳고 기르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 기쁨에 대해서만큼이나 그 고통에 대해서도 평등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아이의 귀여움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사람의 삶의 질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비로소 찾아온 그 해 봄은 유달리 아름다웠다. 나는 이제 유모차 타기를 즐기기 시작한 아이를 태우고 오랫동안 벚꽃 아래를 걸었다. 벚꽃 봉우리가 맺히는 것도, 만개한 벚꽃도, 후두두 떨어지는 벚꽃도 매일 아이와 함께 볼 수 있었다. 의젓하게 유모차에 앉은 아이는 이제 눈을 마주치며 옹알이를 하는 등 상호작용이 되어 전보다 육아가 재미있어졌다. 보는 사람마다 아이가 많이 컸다 말했다. 나도 그런 것 같았다. 아이도 그렇지만 나도 겨울이 지나고 나니 쑥 커버린 것 같았다.


음 아이를 만났을 때는 하루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하루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어서 해가 저물길 기다리며 보냈던 날들도 있었다. 혼자 유배지에 남겨졌다고, 이제 나는 달의 뒷면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한 날들도 있었다.


이제 흘러넘치는 시간은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건강하고 예쁜 아이가 있고, 유모차를 밀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고, 어딘가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24시간이 매일 주어졌다. 그해 벚꽃 아래서 나는 오랜만에 온전한 행복을 느꼈다. 큰 고비 하나를 넘어왔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을 천천히 맛보며 걷고 또 걸었다. 아이는 긴 산책 끝에 칭얼거리지도 않고 유모차 안에서 잠들었다. 나는 걸음을 늦췄다. 오래 응달에 서 있다가 양달로 온 사람이 느끼는 온기, 그 따뜻한 볕 속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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