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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Feb 05. 2017

그렇게 남 눈치보고 살아서 얼마나 잘 살았습니까

용문사 얼그레이 스님과의 차담

양평 용문사 템플스테이 중 '스님과의 차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내심 굉장한 노승과 면담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는데, 차담 장소에 나와 계신 분은 내 또래의 젊은 남자 스님이었다. 게다가 참가자가 나 혼자밖에 없어 정식 차담보다 더 캐주얼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스님은 차 봉지를 뒤적뒤적 거리더니,

"아, 얼그레이, 좋아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아 예. 얼그레이 괜찮아요."

"네... 아 이 차는 참 장미향이 강하네요."

"아. 네 그러네요."

라는 대화가 이어졌다.

스님과의 차담이 아니라 마치 또래 남자와 소개팅하는 기분이었다.


스님은 어떤 고민이 있어 이 절을 찾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화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특히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미루거나 본인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직급을 이용해서 남을 억누르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서 주체할 수 없다고.

스님은 화를 내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그야 화를 내면 우선 제 건강에 안 좋고...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도 후폭풍이 있어서요."

"화를 나는 게 어떤 경우입니까?"

"상대가 뻔뻔한 행동을 하거나, 부당한 행동을 요구할 때 화가 납니다.

 회사에서 연차가 아직 낮은데 이런 식으로 화를 내다가 평판이 나빠질까 겁이 납니다."

"만약 본인 옆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냥 성격이려니, 하겠지만 아무래도 인격수양이 덜 된 사람으로 볼 것 같습니다."

"화를 내면 안 되는 게 남의 시선때문입니까?"

"네, 아무래도 남들이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스님은 내게 말했다.


"그렇게 남 눈치 보고 사셔서 얼마나 잘 사셨습니까?

그냥 화를 내야 겠다, 화를 내고 싶다고 생각하면 내세요.

저항이 있을 겁니다. 저 놈 미쳤다 할 거에요.

그래도 하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저는 이른 나이에 출가를 했습니다. 이대로 살면 그저 남의 시선, 남의 눈치에 끄달려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 것 같아서요.

 

인생 길 것 같지요? 사실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80세 시대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 사실 모릅니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 남의 시선 따라, 남의 생각 따라 사는게 아깝지 않나요?


자기 중심이 강한 사람은 작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용문사 천년된 은행나무를 보십시오.

뿌리가 깊어 폭풍이 몰아쳐도 끄덕 않습니다.

그런 자기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계속 암시를 주세요. 강한 존재라고.

나는 강하고 단단한,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존재라고.


저는 절에 들어올 때 새 이름, 법명을 받았습니다.

새 이름을 받고는 내 주관대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남 시선 따라 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이제 속세의 이름도 다 잊었습니다.

00님도 그렇게 새 이름 받았다고 생각하고 한번 새 삶을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사는 인생, 어깨 펴고 강하게, 당당하게 사십시오. "


그렇게 남 눈치 보고 살아서 얼마나 잘 살았냐는 말이,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말이,

내 가슴 속 가장 가렵고 막힌 부분을 긁어 주었다.

사실은 나는 화를 내고 싶었던 것이다.

시원하게, 할 말 하고, 자기 표현 하고,

그로 인한 저항까지 감수할 용기를 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 눈치 보고 살아서 얼마나 잘 살았냐고?

잘 살지 못했다.

항상 위염을 달고 살았고, 작은 비난에도 괴로워했고,

날 비난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보지 않기 위해 소중한 기회들마저 기꺼이 포기했다.

난 그들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나 견디기 어려웠고

꾹 참다 겨우 몇 마디 내 진심을 말했을때

그들의 반응 - 아니 네가 어떻게 감히, 너 착한 애 아니었니, 실망이다 - 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날카로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곤 했다.
사실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내게 별로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고

나에게 그만큼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요는, 내 중심이 너무 얕았던 것이다.

할 말을 할 수 있어야 했다.

화를 낼 수 있어야 했고,

화를 내지 않더라도 참는 게 아니라 나의 선택에 의해 내지 않았어야 했다.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서 곪아가고 있던

"난 모두에게 착해야 한다, 사랑받아야 한다"는 종기를  

내심 젊다고 무시했던 (실제로 그는 20대였다) 얼그레이 스님이 쿡, 하고 찔러 터뜨려주었다.


식어버린 얼그레이 차를 마저 마시고

차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

가을 하늘은 더 파랗고 낙엽은 더욱 빨갰다.


템플스테이복을 반납하고 버스를 타러 가기 전 천년된 은행나무 앞에 다시 들렀다.

은행나무는 이미 은행잎을 다 떨궈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가을에 다녀간 사람들의 사진을 보니 아직도 단풍과 열매를 맺는 모양이었다.

잠시 손을 모으고 서서,

이 나무처럼 단단한 자기중심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용문사 앞 찻집 다래향에서 마신 산중약차.

따뜻하고 달달한 쌍화차에 낯선 곳에 혼자 있는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은행잎 종이들.


그리고 나의 염원을 담아 살짝 하나 얹어놓은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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