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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Nov 05. 2018

내 책을 사 주는 사람이 있다

세종예술시장에 나가 첫 독자를 만나다


10월 27일 토요일, 세종예술시장 소소마켓에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를 들고 나갔다. 인쇄소에서 금요일에 받은 따끈따끈한 책을 들고, 처음으로 지인이 아닌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들


독립출판 마켓 출점 준비 과정

전에 독립출판물 마켓을 구경해 보니 책도 책이지만 본인을 홍보하고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 굿즈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작가소개 스티커와 "나만의 속도" 스티커를 제작하기로 했다. 최종 책 원고를 인쇄소에 보내놓고 나서, 스티커 만들기를 시작했다. 책의 내용과 연결이 되는 스티커를 만들고 싶어 고민하다, "하고 싶을 땐 하자" 스티커를 만들기로 했다.


- 하고 싶을 땐 하자
- 가고 싶을 땐 가자
- 멈추고 싶을 땐 멈추
- 지르고 싶을 땐 지르자
- 쉬고 싶을 땐 쉬
- 먹고 싶을 땐 먹자
- 화내고 싶을 땐 화내자


로 구성된 원형 스티커를 만들었다. 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자신의 욕망은 참고 감추는데 익숙해진 우리에저런 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행사 당일, 부스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분들에게 스티커를 하나씩 고르도록 해서 나눠드렸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건 "지르고 싶을 땐 지르자" 였다. 그래요, 우리 좀 지르고 삽시다. 정작 "화내고 싶을 땐 화내자"는 고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제작자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스티커를 제작하는 김에 책 소개 입간판도 하나 만들고, 노란색 책 표지에 어울리는 노란 장미와 유칼립투스도 미리 사 놓았다. 책을 펼쳐 놓을 때 쓸 노란색 독서스탠드까지 준비해 놓았다. 마켓은 독자와 만나는 자리이고, 판매의 장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전시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서 가급적 부스가 예쁘고 보기 좋았으면 했다.







내 책을 사 주는 사람이 있다

행사 당일이 되었다. 그 전주까지는 날씨가 참 좋았는데, 막상 내 출점일은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해서 패딩이 필요한 정도의 날씨였다. 핫팩을 좀 챙겨올걸, 하고 후회했다. 시린 손을 비벼가며 동생과 함께 부스를 세팅했다.



올해 세종예술시장 소소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목표로 일회용품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마켓을 지향한다고 했다. 이런 가치에 나도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흔히 쓰는 비닐 포장이 아니라 신문지를 재활용한 포장을 하기로 했다. 다 본 영자신문으로 포장한 책에 끈으로 리본 매듭을 하고, 유칼립투스를 하나씩 꽂으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장인의 손길
이날의 역대급 포장


사실 이날 서른 권의 책을 챙겨 나가면서도 판매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을 했었다. 기성 출판사를 끼지도 않은 생판 모르는 책을 만 천원을 주고 선뜻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한 세  팔리면 좋겠다,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팔려서 총 스무 권을 팔았다. 9권은 마켓을 찾아 준 지인들이 사갔고 11권은 마켓에서 처음 만난 들이 사 주셨다.


첫 책을 사 주신 독자님은 아마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한 권 살게요, 라는 말에 "정말요???"라고 대답할 뻔했다. 내 이야기, 내 책이 실제로 팔린다니! 하고 어버버 하며 책을 내밀었다.


제조업계에서 일하며 제품 출시 일정과 라인업을 관리하고 매출과 손익을 모니터링하는 일을 해 왔다. 조직의 KPI는 매출과 손익이지만 많이 팔아도 막상 내가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올해 보너스 좀 나오려나, 하고 심드렁해 했었다. 판매는 그냥 숫자일 뿐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내 제품'-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 그걸 시장에 내놓아 실제로 팔리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더 잘 만들고 싶고, 더 잘 팔고 싶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판매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지만 한 권, 한 권 팔릴수록 신이 났다. 눈이 마주치는 분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작년에 제가 일년 무급휴직을 했거든요. 그때 쓴 내용을 직접 독립출판물로 만들었어요."

"그럼 지금은 무얼 하세요? 다시 일 하세요?"

"아, 지금은 그 회사에 다시 복직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라는 대답에 직장인들은 허허허, 하고 웃픈 웃음을 지었다. "돌아갈 직장이 있는 게 어디에요"라며 책을 만지작거렸다. 아마 세종문화회관에 음악을 들으러 오신 것 같은 어머님들은 "어머, 그럼 더 잘됐네요. 능력자시네!" 했다. 일년이나 놀고 같은 회사에 복직한 것을 내심 약간의 실패 내지는 현실순응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랐다.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 남들의 속도가 아닌 내 속도로 살기' 라는 입간판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회사를 쉴 때 혹시 몇 살이셨냐는 질문을 한 분을 만났다. (내 나이가 그 분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나처럼 작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분을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요일인데 정장 차림을 한 3년차 직장인 분이 오셔서 요즘 참 생각이 많다며 책을 사 갔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분이 책을 사 가시며 저자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별 말씀 없이 조용히 책을 보시다 하나 주세요, 하고 사 가시는 분도 있었다. 오랫동안 브런치 글을 구독해 주신 분이 마켓을 찾아주셔서 휴직자의 심경에 대한 공감토크를 하기도 했다. 육아휴직 중인 분도 만났는데 딸래미가 엄마를 찾아서 대화는 금방 끊어졌다. 자세가 곧고 바른 중년 여성분이 "그래요, 자기 속도로 사는 게 정말 중요하죠." 하고 가시기도 했다.


가을의 소소시장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었다. 쌀쌀하지만 맑은 가을 날씨를 즐기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줄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내 이야기에 지갑을 열어주는 분들을 만났다. 이 날 책을 사 주신 분들은 메일과 메시지로 책 정말 잘 봤다며 장문의 소감을 남겨 주시기도 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작은 도움마저 될 수 있다니. 처음 브런치에 휴직일기를 기록하면서 품었던 마음, 어디에 꼭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 닿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이 이루어진 것 같아 무척 기뻤다.

책을 만들기 정말 잘했다.








독립출판물 마켓 출점 Tip


1) 충분한 현금(천원/오천원/만원)을 준비한다. 요즘은 현금을 들고 다니는 분이 없어 주로 계좌이체를 하는 추세이긴 하다. 미리 본인의 계좌를 포스트잇이나 수첩에 예쁘게 적어놓았다가 계좌이체를 원하는 에게 보여주면 좋다.


2) 날이 추울 수 있으니 담요와 핫팩, 텀블러는 필수다. 종이컵에 담긴 테이크아웃 커피는 금방 식어 차가워진다. 자체 방전(에너지 고갈)을 막기 위해 초콜릿 같은 간단한 주전부리를 챙기자.


3) 별 것 아닌 굿즈라도 제작해 놓으면 (판매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말문을 트는 데 도움이 된다. 어색한 작별의 시간에도 도움이 된다. (저기 이거 하나 드릴게요! 조심히 가세요~ )
 

4) 나는 제로웨이스트를 해 보려고 신문지 포장을 준비했지만,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분의 경우는 유칼립투스가 꽂힌 포장된 책을 들고 다니기가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남자분들은 포장된 책을 좀 부담스러워 하셨다... 원하는 분에 한해서 줄 수 있도록 손잡이가 있는 비닐백을 몇개 준비하면 더 좋을 것 같다.


5)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관객들에게 먼저 간략하게 이 책은 이런이런 내용이다, 나는 이래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 정도로 소개를 하면 좋다. 판매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면대면으로 내 책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 자리는 드물고 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경험을 생각해봐도 이런 마켓에서 제작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을 안 산 적은 있지만,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않고 산 적은 없는 것 같다.


6) 디자인 물품이나 공예품과 달리, 책은 한번 힐끗 봐서는 어떤 내용의 책인지 알기가 어렵다.  입간판이나 타공판을 세워 놓으면 홍보와 책 설명에 큰 도움이 된다.


7) 잠시 화장실을 가거나 전화를 받거나 잔돈을 바꿔와야 할 때가 있으니 가급적 혼자 나가기보단 지인 1명 정도는 대동해서 나가길 추천한다. 마켓에 나가보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라 친구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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