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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Mar 07. 2019

그 박스 안 쓰시면 저 주세요

책이 나온다고 끝이 아니다 : 독립출판물 유통과정

독립출판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내가/ 직접/ 책 한 권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책만 나오면 끝인 줄 알았다. 사람들도 '와, 네가 책을 직접 만들었다고?'라는 포인트에서 감탄하지 그 뒤의 과정에도 책 만드는 것만큼의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것을 잘 모른다. 하지만 독립출판물의 진정한 묘미는 작가가 편집/디자인뿐만 아니라 유통과 마케팅, 수금까지도(!) 직접 한다는 것에 있다. 책이 나온 지 이제 네 달이 좀 넘게 지났고 마지막 4쇄를 유통하고 있는 시점에서, 책이 나온 이후의 과정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똑똑똑, 제 책을 받아주세요

인쇄소에 맡긴 최종 제본을 수령한 기쁨도 잠시, 이제 내 책의 유통처를 찾아야 한다. 내 책처럼 ISBN이 없는 독립출판물의 경우 대형서점(교보, 알라딘, 영풍문고, 예스24)에는 입고하기가 어렵다. 이런 종류의 책을 받아주는 독립서점을 찾아야 한다. '18년 기준으로 동네서점 지도에 등록하여 운영 중인 독립 책방은 약 357곳 정도 된다고 한다.


https://www.funnyplan.com/2018-%EB%8F%85%EB%A6%BD%EC%84%9C%EC%A0%90-%ED%98%84%ED%99%A9%EC%A1%B0%EC%82%AC/


동네서점 지도를 참고하여 메일링 리스트를 만들고   한 서점씩 메일을 보낸다. 나는 처음에는 온라인 마켓을 겸하는 최소 2년 이상 운영한 독립서점 위주로 입고 요청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제 독립출판물을 000 서점에 입고하고 싶어 메일 드립니다..." 이 때는 꼭 입사지원서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시 사람은 거절이 두려운 존재인지라,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내 책을 받아줄지 머리를 굴리고 마음을 다해 쓴다. 기본적인 서지정보나 책 소개 내용은 복사+붙여 넣기이지만, 가급적이면 내 책이 이 서점에 필요한 이유를 쓰려고 노력했다. 00 서점은 주로 ~ 한 콘텐츠를 다루고 있으니, 제 책을 받아주시면 서점의 지향점에도 부합할 것이며 퇴근길 직장인 위주로 아주 많이 팔릴 것이다! 같은 호소문을 넣어 메일을 보낸다.


서점에서 입고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으면 책을 서점에 전달한다. 미리 몇시쯤 가겠다고 연락을 한 후 방문 입고를 하거나 택배를 통해 전달한다. 처음에 1차 입고는 방문 입고를 기본으로 하려고 했다. 서점 사장님께 인사도 드리고 책 소개도 하는  훈훈한 그림을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 몇 개의 서점에 방문 입고를 하면서 주말의 한나절을 보내고 나서 깨달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몇십 권의 책을 들고 다니며 방문 입고를 하는 것은 시간과 체력소모가 상당히 심한 일이라는 것을... 게다가 대개 독립서점은 역세권이 아니라 골목과 골목을 한참 지나 으아니 이런 곳에 정말 서점이 있나...!  싶은 곳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내 소중한 어깨와 허리를 위해 택배비가 들더라도 가급적이면 택배로 보낸다.



포장은 셀프입니다 


독립출판물은 개인이 직접 재고를 보관하며 유통하기 때문에 많아봤자 몇백 권 정도를 1쇄 분량으로 찍게 된다. 인쇄본이 도착하면 먼저 박스 열고 검수를 거친다. 서점에 보내도 괜찮을 책과, 제본이 잘못되었거나 표지에 뭐가 많이 묻어있는 등 내가 만져봤을 때 별로 사고 싶지 않은 퀄리티의 책을 따로 분류해 둔다. 후자의 책은 무료 샘플북으로 증정하거나, 샘플북으로 드리기에도 미안한 퀄리티이면 그냥 보관해두고 냄비받침으로 쓴다.



그리고 하나씩 비닐 포장을 한다. 처음에는 일회용품 소비를 줄이기 위해 비닐 포장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작자가 직접 비닐포장을 해서 보내주길 원하는 서점이 있기도 하고, 운송과정에서 책에 상처가 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포장을 하고 있다. 가끔 비닐포장을 원치 않는 서점에는 개별 비닐포장 없이 충격을 방지하는 완충재만 넣어 보내기도 한다. 책 사이즈에 맞는 opp 봉투를 미리 온라인 마켓에서 몇백 개 단위로 구매해 두면 다이소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고 질도 좋다. 이것도 미리미리 주문해놓지 않으면 책은 있는데 비닐봉투가 없어서 배송을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가내수공업의 현장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 오면 바로 야채깨끗이 씻고 생선은 손질해둬서 원할 때 바로 쓸 수 있게 하는 게 좋다. 마찬가지로 인쇄소에서 책을 수령하자마자 미리 검수를 마치고 포장까지 해 두면, 갑자기 들어온 입고요청에도 당황하지 않고 책을 보낼 수 있다. 이것은 몇 번의 인쇄와 몇 번의 가내수공업 야근을 거치면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지만 - 여전히 실행은 안 되고 있다. 아마 절판하는 그날까지 이럴 것 같다.



박스를 주우러 다닙니다


초도 입고 시에는 대개 5권 정도의 책을 보낸다. 온라인 서점을 겸하는 곳에서는 처음부터 10권 정도를 요청하기도 한다. 신국판 사이즈의 책 5권을 보내기 위해서는 우체국 박스 2호 정도면 적당하고, 10권이 넘어가면 3호 박스 정도는 사용해야 한다. 책이 반응이 좋으면 20권 넘는 재입고요청이 들어오는데 그때는 더 큰 박스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우체국에 가서 박스를 여러 사이즈로 많이 사 놓았다가 썼다. 이제는 그것도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드는 일처럼 느껴져서 가급적이면 있는 박스를 재활용해서 보낸다. 분리수거하는 곳에서 남이 버린 박스를 주워 한번 닦아서 사용하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동료의 택배 박스에 눈독을 들이기도 한다. ("선배님 이 박스 안 쓸 거면 저 주세요!") 고양이가 그렇게 박스를 좋아한다던데, 갑자기 반려동물이라도 들인 것처럼 쓸만한 박스를 찾아다닌다.


5권, 10권을 보낼만한 작은 사이즈의 박스는 생각보다 찾기 쉽지 않다. 가장 쉬운 방법은 택배를 시키는 것이다. 책 택배용 박스가 필요하단 핑계로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주문한다. 한 권만 사면 비닐포장만 되어 오고 두세 권은 사야 박스에 넣어주니 여러 권을 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원의 선순환이다! 라고 합리화하며 책을 사들인다.


직장을 다니면서 우체국에 직접 찾아가 택배를 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돈은 조금 더 들더라도 홈택배 서비스를 이용했다.  문 앞에 택배를 내어놓고 출근하면 지정기사님이 수령하여 택배사에 전달한다. 택배사 서비스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당일 신청해도 당일 수거해간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자주 이용하고 있다.


대량 발송을 가능하게 한 홈택배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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