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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Mar 24. 2019

한 권 팔면 얼마 남니

독립출판물 가격 책정과 정산 과정  

"그럼 지금까지 몇 권 팔았어? 그러면 돈 좀 벌었겠다?"

라는 지인의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할지 고민하다 쓰게 된 글이다.

"아, 아니 나 열심히 팔긴 했는데 아직 적자야...... "



독립출판물 가격 정하기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의 가격은 만 천원이다. 만원을 받을까 만 이천원을 받을까 고민하다가 큰 맘먹고 인디자인 파일에 11,000원이라고 써넣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담당한 어떤 제품의 가격 책정보다도 떨리는 순간이었다. 왜냐면 이건 내 제품이니까!


책의 가격을 정할 때 독립출판 워크숍에서 들은 내용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책의 가격을 책정할 때는 인쇄비만을 고려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인쇄비 외에도 서점의 유통마진과 유통비(택배비) 등이 추가로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쇄비는 책 가격의 30% 수준, 책 가격은 인쇄비의 3.3배 정도가 되어야 이익이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책의 가격까지 표지에 인쇄해서 넣고, 아니면 스티커 형식으로라도 책에 가격을 명시해서 붙이는 게 좋다고 했다. 책에 가격이 없으면 독자가 독립서점의 정적을 깨고 주인에게 '이 책 얼마예요?'하고 물어봐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한다. 언택트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그 불편함이 싫어서 그냥 구매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팔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독립출판물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격을 받고 있는지는 네이버 스토어에 '독립출판'이라고 조회해 보면 알 수 있다. 온라인 스토어에 등록된 독립출판물의 가격을 확인해보면 만원 정도 받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나도 깔끔하게 만 원을 받을까 했었다. 그러다가 워크숍에서 들은 내용을 떠올리고는 비용 예상표를 만들어 보았다.


소량 디지털 인쇄로 초판 200권을 인쇄했을 때 드는 권당 인쇄비는 약 4,000원 수준이다. 보통 한 번에 5권 이상을 입고한다고 했을 때, 기본 택배비 4000원(홈택배 기준)를 5권으로 나누면 권당 택배비는 최대 800원 꼴이다. 그리고 서점에서 책값의 30~35%를 가져가니, 책값을 만원으로 잡을 경우 책방에서 3500원을 가져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 책을 만원을 받고 팔았을 때, 8300원이 비용이고 1700원이 나의 순이익으로 남는다.


하지만 보통 초도 입고를 할 때는 샘플본 1권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고, 책을 보내려면 비닐 포장비도 추가로 들고, 방문 입고 시에 드는 나의 교통비도 비용이라고 치면, 실제로 남는 이익은 천 원 이하일 것이다. 그러면 몇 백원을 벌자고 책을 열심히 팔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천 원을 올려 만 천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그림이 많거나 컬러 인쇄를 한 책이 아니어서 만 이천원을 받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정리하자면 초판 200권을 소량 디지털 인쇄해서 11,000원에 팔았을 경우, 권당 비용은 아래와 같다. 

 - 인쇄비(4,000원): 한꺼번에 많이 인쇄할수록 권당 인쇄비는 저렴해진다.

 - 유통비/택배비(800원): 기본 택배비 4,000원, 초도 입고 시 보통 서점에서는 5권을 요청하므로 4000원/5권= 800원. 역시 한꺼번에 많이 보낼수록 권당 유통비는 저렴해진다.   

 - 서점 유통 수수료(약 35%, 3850원): 서점 유통 수수료는 보통 30~35%(위탁 기준, 선 입고 후 책이 팔리면 돈을 받는 경우), 35~40%(매절 기준, 서점에서 책을 돈을 주고 경우)이다.

- 기타 비용(800원): 샘플 도서 약 25권 증정(인쇄가 4,000원*25=10만 원), 시범 인쇄 비용 3만 원, 포장용 비닐 만원, 인쇄소 택배비 만원 등

→ 가격 11,000원 - 비용 9,650원 = 이익 1,550원


이렇게 11,000원으로 4쇄까지 찍은 후에 다시 정리를 해 보니, 1,550원보다는 좀 더 많은 이익이 났다. 2쇄부터 좀 더 많은 분량을 찍게 되면서, 권당 인쇄비가 몇백 원 더 저렴해졌다. 그리고 2차 입고분부터 10권 이상 입고를 원하는 곳이 생겨 평균 권당 택배비가 평균 몇백 원 더  떨어졌다. 기존에 입고했던 곳에 재입고를 하게 되면 굳이 샘플북을 증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추가 비용이 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책 한 권을 팔아서 내가 얻는 이익은 이천 원대 정도다. 책 한 권을 팔아서는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사 마실 수가 없다. 아마 두 권 정도는 팔아야 카페라테를 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카페라테만큼도 내 순수 이익이라고 볼 수는 있을까. 처음 독립출판을 생각하면서 들은 독립출판 워크숍(10만 원), 인디자인/편집제작 관련 도서 구매비(5-6만 원)를 일종의 투자비로 생각한다면, 손익은 더 줄어든다. 뭣도 모르고 연간 플랜을 구매해서 사용한 어도비 CC 사용료까지 투자비로 쳐야 하나. (이 이야기를 하니 미대를 나온 친구가 내 등짝을 후려쳤다. 야 나한테 얘기를 하지!)



정산을 기다리는 마음


책을 서점에 넘기면서 바로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다. 책이 팔리지 않을 때의 부담을 서점만 질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독립서점들은 책이 팔리면 돈을 정산해 주는 위탁 방식으로 입고를 받는다. 그리고 책이 팔린 후에도 정산해 주는 주기는 서점마다 다르다. 매달 정산해 주는 곳도 있지만 3개월, 6개월 단위로 정산을 해 주는 서점도 있다. 즉 인쇄비는 한꺼번에 뭉텅이로 들고, 정산은 야금야금 느리게 들어온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서점에서 정산을 받아서 드디어 인쇄비를 메꾸었구나, 손익분기점을 넘었어! 싶을 때 재고가 똑 떨어진다. 부랴부랴 재인쇄 신청을 인쇄소에 넣는다. 다시 몇십 만원대의 인쇄비가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매달 대출금을 끼고 사는 인생으로서 솔직히 한꺼번에 인쇄비를 낼 때는 다음 달 카드값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마이너스가 된 장부를 보며 다음번 정산일을 기다린다.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


책도 제조업이라, 결국 규모의 경제다. 많이 찍어서 권당 비용을 낮추고, 많이 팔면 된다. 하나가 많이 안 팔릴 것 같으면 여러 종류의 책을 만들어 다양한 라인업을 운영하면 이득이 난다. 하지만  이건 대형 베스트셀러를 많이 내는 대형 출판사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실제 출판사(RHK)와 협업해서 만든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보면서 아니 책을 팔아서 어떻게 저런 멋진 건물에서 일하지.... 역시 작년도 베스트셀러 <곰돌이 푸> 시리즈를 낸 대기업은 다르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열심히 책을 포장한다.


실제 출판사가 배경인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사무실 풍경


책을 직접 만들고 팔아 본 뒤부터는 동네 서점에 들르면 꼭 뭐라도 사서 나오게 된다. 전에는 와 예쁘다, 잘 꾸며놨네, 하면서 인스타에 사진 몇 장 올리고 끝이었다면 이제는 한 권이라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한 권 팔아서 얼마 남지도 않는데 이 동네 땅값이 또 싸지는 않을 텐데... 어우 그래도 책이 좋고 글이 좋고 그걸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좋으니까 이 일을 하는 거겠지요, 라고 맘으로만 조용히 응원하면서 시집 한 권이라도 사서 나온다.


좋은 창작자의 책은 직접 사서 응원해주고 싶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볼 수도 있지만, 한 끼 밥값 정도야 내가 저 사람의 창작을 위해서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독립출판물들은 더욱 그렇다. 자기 목소리를 세상에 내고 싶어서 귀찮음과 피곤함을 견디고 셀프 검열에서 이기며 자기 작품을 매대에 내놓기까지 창작자들이 거쳤을 과정을 생각할 때면 남 일 같지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게 된다.



베짱이같이 번 돈, 베짱이같이 쓰자

회사를 다니며 돈은 열심히 모았지만 사실 기부금으로 큰돈을 턱턱 낸 적이 없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데, 얼마나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고 야근하고 하면서 벌었는데,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피땀 흘려 번 돈, 내 입이나 내 가족이나 내 친구 입에 들어가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투명하지 않아 보이는 단체에는 내고 싶지 않았다. 필요할 때는 아주 소량의 기부금으로 생색만 내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책을 통해 번 돈- 아직 수익은 나지 않았지만- 은 일부는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초판에 그칠 수 있었던 책이 4쇄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책을 잘 봐준 사람들이 힘이 컸다. 책을 찾아 주고 읽어 준 사람들의 정성어린 피드백에 많은 힘을 얻었다. 책을 낸 것은 나지만 이건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잘해서 나온 성과는 아니었다. 이 책을 봐주고 홍보해주고 지갑을 열어 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감사를 전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이 조금 더 좋은 곳, 더 재밌는 곳, 덜 외로운 곳이 되는 데에 보탬이 되고 싶다.


책을 팔면서 회사에서 못했던 자아실현을 했다.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 해서 번 돈을 끌어안고 내 것이오, 내 것이오,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수익이 나면 그동안 열심히 책 포장한 나 자신에 대한 선물로 보고 싶었던 책을 실컷 살 것이다. 친구들에게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사고, 창작자가 직접 그린 예쁜 그림을 사고, 좋은 프로젝트에 후원을 하고, 좋은 단체에 기부를 하면서 이 돈은 세상에 훌훌 흘러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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