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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Jan 13. 2019

독립출판을 꿈꾸는 당신에게

우리는 우리 이야기의 작가가 될 수 있다

독립출판을 고민하던 작년 봄, 나는 '독립출판 변화' '독립출판 후기' '독립출판 추천' 등의 검색어를 부지런히 검색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서 글을 쓰고 책으로 엮어 인쇄소를 헤매는 과정들을 겪기 전에, 그래서 이 귀찮은 과정을 거쳐본 사람들은 뭔가 인생에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늘 '가성비'를 따지는 근면한 한국인답게 이 시간을 투자했을 때 나는 무엇을 돌려받을 수 있는가를 고민했었다. 직장을 다니며 독립출판물을 낸 서귤 님의 '책낸자'를 마치 교본처럼 읽기도 하고, 브런치에서 독립출판 후기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책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은 주판알을 두드리는 계산(이걸 하면 무엇이 남나)이 아니라 저 깊은 마음에서 올라오는 열망이었던 것 같다. 


'나도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 내 이야기를 남들과 나누고 싶다. 직장에서는 금방 대체 가능한 부품에 불과할지라도, 내 이야기와 내 책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내 일이 될 수 없더라도, 처음 기획부터 유통까지 내가 온전히 내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



B급 직장인의 독립출판 도전기

복직을 하고 마음이 힘들어 이름 있는 역술가에게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눈물을 그렁그렁거리며 사무실에 놓인 티슈를 뽑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
네가 A급이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어.
직장에서는 그냥 B급으로 살아.
잘하려고 하지 말고, 튀려고도 하지 마.
하고 싶은 건 퇴근하고 나서 해.


그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기에, 나는 한동안 B급 직장인이 되려고 노력해 보았다. 일과 삶의 분리, 시킨 일만 빨리 해 내는 자세, 일에 영혼을 담지 않는 철저한 프로페셔널. 확실히 기대를 줄이니 힘들어할 일도 줄었다. B급 직장인 전략은 제법 효과적이어서 나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디에도 둘 곳 없는 마음이 있었다. 출근하지 않는 날들 동안 가다듬은 마음, 복직일에 달랑달랑 순진하게 들고 온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어딘가에 쓰지 않으면 또다시 '걸어다니는 그림자'처럼 살 것 같았다. 그 마음을 둘 곳이 필요했다.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언젠가 '어른'이 되면 가슴 뛰는 일을 하며 나의 재능을 써서 세상에 멋지게 기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 열망으로 밤에는 늦게까지 도서관 자리를 지키고,  아침에는 알람이 세 번 울리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달려와 겨우 만든 나의 자리에서 한 해, 두 해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드물면 뉴스와 신문에 나오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그 역술가의 말처럼 B급 직장인으로 남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만큼 달콤한 것이 어디 있을까. 이제 그 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어른'이 되어 체념이 어깨 위에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없는 권력에 대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문화에 대해서.

매일 쌓여가는 체념에 대해서, 그런데도 계속 품게 되는 희망에 대해서,


세상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죽어라 열심히 준비한 일은 잘 풀리지 않는다. 인생의 좋은 순간들은 너무나 짧고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무례한 인간을 피해 열심히 도망을 쳐도 또 어느 골목에서 더 이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런 것들은 내가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글은 쓸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나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나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쓸 수 있다. 누가 지면을 내어주지 않아도 자신의 글을 온라인을 통해 남들과 나눌 수 있다. 출판사에서 받아주지 않더라도 원한다면 직접 책으로 만들어 유통할 수 있다.



독립출판, 내가 쓰는 나의 서사  

리베카 솔닛은 저서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살아가기 위해, 폭력이나 무감각으로 누군가의 삶을 앗아 가는 것을 정당화하고 삶의 실패를 변명하기 위해. 그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는 이야기이지 무너뜨리는 이야기, 익사시킨 이야기, 정당화하는 이야기, 고발하는 이야기, 행운의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 혹은 냉소로 뒤덮인 이야기이다.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를 쓰고 만듦으로써 나는 '일이 힘들어서 휴직한사람', '스트레스를 못 견디다 도망간 사람' 또는 '일 년을 놀고도 결국 같은 회사로 돌아온 사람' 같은 남이 써 주는 서사를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일 년의 시간을 선물할 만큼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러고도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올 만큼 힘이 있는 사람이었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독립출판은 스스로 자기 삶의 작가가 될 수 있는 멋진 경험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세상이 아니라 내가 마이크를 잡고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인쇄와 제본을 거쳐 이야기에 형체를 입히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책임을 갖게 된다. 이렇게 물성을 갖게 된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향해 좀 더 멀리 가 닿을 수 있게 된다.




나무가 아깝지 않은 책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은 그만해도 괜찮다.

진심에서 나온 말들에는 나무가 아깝지 않다.


뭐 이런 걸 썼냐는 소릴 들을까봐 자기 검열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독자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니까.


새해에는 나도 내 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 하면서 아직 백지 앞에 머뭇거리는 당에게 응원의 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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