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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Dec 03. 2018

독립출판 한 달 해 보니

초판 200권을 떠나보낸 소회

10월 말 소소시장에 참가한 이후로 여러 독립서점들에 이메일을 보내 입고 요청을 하고, 택배를 보내고, 인스타에 입고 소식을 알리고, 독자들의 반응에 가슴 떨려하며 벅찬 한 달을 보냈다. 11월 한 달을 독립출판러로 보내며 느낀 바를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스몰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현재까지의 판매 현황을 정리해 보자면, 초판 200부 다 내 손을 떠났다. 30여 권은 지인과 소소시장에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팔았고, 나머지 170여 권은 전국 약 11개의 독립 서점으로 보냈다. 이 중에 약 백십여 권은 품절이 된 것으로 보아 판매가 된 것 같다. 팔린 책 중에 일부는 서점으로부터 정산을 받았다.


처음 정산금이 띵동 하고 입금되던 날의 기쁨은 잊지 못할 것이다. 월급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처음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서 번 돈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와, 내가 책을 팔아서도 돈을 벌 수가 있구나! 오늘 오키로북스에서 3차 입고분에 대한 정산을 받아 드디어 인쇄비와 배송비를 커버하는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처음 독립출판을 시작한 이유가 분업화된 회사에서는 배울 수 없는 판매의 전 과정(기획, 생산, 유통, 마케팅 전체)을 스스로 한번 통과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는데 드디어 한 턴을 다 돈 것 같아 기뻤다. 물론 서점마다 정산 시기가 달라 아직 '수금'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고, 2쇄를 찍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이 과정을 몇 번은 더 반복해야 진짜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초판을 빨리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유통망(독립서점)의 공이 컸다. 통상 독립서점은 책값에서 30~35%를 수수료로 가져가는데 그게 좀 적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독립출판물 제작자들은 보통 기획-글쓰기-제작-인쇄까지의 과정에 힘을 너무 뺀 나머지 막판의 판매에는 신경을 좀 덜 쓰게 되는 면이 있다. 독립서점의 눈 밝은 책방지기들은 제작자조차 보지 못했던 책의 좋은 점들을 콕콕 찝어 다정한 말로 소개해 준다. 그 정성어린 소개글 덕에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었고, 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더 잘 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키로북스' 서점의 추천사




작가의 관점에서

아침 6시 반에 아 진짜 회사 가기 싫다,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있다 인스타 디엠을 받았다. 아침 출근길에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 책 소개글을 읽고 눈물을 쏟았다고, 그동안 수없이 고민하며 결정을 미뤄온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메시지를 남겨 주셨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나까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휴직을 고민하면서 외롭고 막막한 가운데, 아무도 내 마음을 정확히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고,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며 미칠 것 같았던 그때 그 마음을 아직 기억한다. 처음 '휴직 일기'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세상 어디에 꼭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였다. 내 글은 글 자체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글 잘 쓰는 친구 몇몇에게는 부끄러운 맘에 '나 책 냈다! 셀프로!'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만 몇 명에게라도 내 글이 온전히 닿았다면,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넘치게 감사하다.


독립출판물을 팔아 받은 돈으로 나도 이 독립출판 생태계에 좀 보탬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그렇다, 책을 사겠다는 핑계다) 독립서점 온라인몰을 탐색하다가 몇 권의 독립출판물을 샀다. 그중 한 권은 요새 가장 핫한 독립출판물인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었다. 한 번에 다 읽혀 좋은 책이 있고 한 번에 다 못 읽어 좋은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였다. 출근길에 읽다가 몇 번을 멈췄다. 한 편을 읽고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한 편을 다 읽다 말고 앞사람의 구두코를 보며 멈춰 있었다. 글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아도 매일 쓴다'는 자세로 스스로 월 만원에 스무 편의 글을 매일 보내주겠다며 구독자를 모집한 그 용기와 성실성에 감탄했다. 신문사가, 잡지사가 내게 지면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지면을 만들어 버리지 뭐, 하고 구독자를 직접 모집하는 패기에 감명받았다.


출처: 인스타그램 @sullalee


이슬아 작가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사실 독립출판물 작가들은 다 아주 용감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다. 출판사에게 내 책을 내어 달라고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느니 내가 만들어 버리지 뭐, 하고 스스로 책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패기. 한번 해 보니 출판 전 과정을 개인이 혼자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알겠다. (그리고 왜 작가들의 평균수명이 길지 않은지도 알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을 감당하고서라도 자기 글을 세상에 내어놓고 싶은 사람은 정말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 힘든 과정을 감수한 보상으로 그들은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게 된다. (서점에서 불러준다. 작가님, 00부 입고 가능할까요?)


나 역시 이젠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어야만 작가로 불리는 시절은 끝났다며, '매일 하면 직업이다, 매일 쓰면 작가다'라는 말을 주문삼아 처음 독립출판물 제작을 시작했었다. 이제 서점에 입고 문의를 하면 '작가님'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럼 나는 과연 얼마나 자주 읽고 쓰고 있는가.


좋은 글을 읽으면 내가 남겨온 말과 글을 돌아보게 된다. 글이 쓰고 싶어 마음이 울렁인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덕에 일주일 출근길 동안 행복했다. 글은 정말이지 힘이 세다. 앞으로 더 자주 읽고, 쓰고, 공유하고 싶다.



커리어의 관점에서

일을 통해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믿지 않았다. 어른들한테 완전히 속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쓰고, 만들고,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벅참과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만든 손때 묻은 제품이 고객에게 전달되고,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물론 다 그만두고 1인 출판사를 차려 이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또 다른 고통이 있을 것이다.) 


이번 독립출판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것에 기뻐하고 설레어하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즉각적인 피드백,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  공감과 위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득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애정을 갖고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 자기가 하는 일을 기본적으로는 사랑하는 것 등등. 나에겐 이런 기쁨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직장이 나에게 이런 기쁨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속하며 '본업'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충전해 나갈지, 아니면 조금씩 '본업'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볼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한다.




배경 이미지: Photo by Jessica Ruscell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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