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오션로드(Great Ocean Road)로 가라.
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대 관광지,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업적.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수식하는 말들은 모두 거창하고 사람들의 기대치를 높인다. 하지만 아무리 수백억을 쏟아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도 잔뜩 기대하고 보면 재미없는 법. 그래봤자 길이고, 해안도로일 뿐이지. 나름 여행 좀 다녀봤고 특히 물을 좋아해 바다가 있는 도시의 렌트 여행의 경험이 많은 나는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멜버른에 갔고, 그 근처에 그레이트 오션로드가 있었고,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유명한 관광코스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것이 큰 착오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깨달았으니까.
토르퀘이에서 남호주 경계인 넬슨까지 총 400km의 거리.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원데이투어로 다녀온다. 이유는 다양하다. 낯선 도시에서의 운전이 두려워서, 아예 운전면허가 없어서, 장시간 운전은 피곤해서 등등. 나는 반드시 렌트카를 이용해 2박3일 이상의 코스로 다녀오길 권한다. 그램피언스 국립공원과 묶어도 좋고, 주변의 소도시들과 결합해도 좋다. '봤다 치고', '사진 찍었으니 됐네'가 아닌 좀 더 여유있게, 천천히, 느리게 여행하면 더 많은 것이 가슴에 남는다.
멜버른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남짓, 이제 바닷가 좀 달려보나 싶을 때 작은 바닷가 도시 론(Lorne)을 지난다. 한창 성수기에, 멜버른에서 가까운 휴양지다보니 휴가를 온 사람들로 마을 초입부터 차량이 길게 늘어선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유일한 정체구간이었다. 포토샵으로 보정한 것 같은 바다색과 하늘을 보고 있자니 기다릴 만 했다. 론에서 점심을 먹기로 해 배가 좀 고팠던 것을 빼고는.
작은 도시는 한 여름의 활기로 넘쳐났다. 여기서 1~2박을 하면서 쉬어도 좋았을 법 했다. 다음에 멜버른에 온다면 시내는 빼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만으로만 1주일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모든 국제 비행편이 멜버른 툴라마린 공항으로 들어가지만, 에어아시아가 그레이트 오션로드와 훨씬 가까운 아발론 공항으로 취항한다고 하니 '멜버른을 뺀 그레이트 오션로드 코스'도 이제 가능해졌다. 수영복을 입고 자유롭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하고 마을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포인트는 어디지'는 찾아 볼 필요가 없다. 그저 달리는 곳 모두가 포인트고, 군데 군데 차량을 세워 놓을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둔 곳이 포토 스팟이다. 다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다면, 구글 지도에 카메라 아이콘으로 전망대가 잘 표시되어 있으니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대가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 나무로 우거졌다가 돌밭이 나오다가 - 길이 긴 만큼 나타나는 풍경도 다양하다. 마음 이끌리는 곳에 차를 세워 천천히 둘러보고 다시 차를 타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커넷리버(Kennett River)에 다다른다. 커넷리버에는 야생 코알라와 사람의 머리, 어깨, 손 위를 놀이터마냥 돌아다니는 앵무새들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저마다 새 모이를 손바닥 위에 놓고 앵무새가 나에게 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더 높이 올려보지만, 애석하게도 앵무새는 가는 사람에게만 가더라.
그레이트 오션로드라고 해도 계속 바닷길만 가는 것은 아니다. 호주의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광활한 초원과 방목되어 있는 양들을 길 위에서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푸른 바다와 초록빛 대지에 번갈아가면서 눈이 호강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마치 크레센도(crescendo:음악용어-점점 강하게)같아서 가면 갈 수록 탄성이 커진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하이라이트, 12사도(Twelve Apostles)를 마주하게 된다. 12개의 바위 중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깁슨 비치로 내려가는 스텝스(Gibson Steps). 12사도 바위를 유일하게 해변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깁슨 스텝스의 경관에 넋을 놓긴 아직 이르다. 차로 약 5분 거리에 로크 아드 고지(Loch Ard Gorge)가 있는데, 이 곳은 해가 지기 약 1~2시간 전 쯤 도착하는 것이 좋다. 이 곳이 차를 놓고 둘러보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코스인데 그늘이 없어 한 낮에 오면 강렬한 태양에 너무 힘들기도 하고, 석양 무렵이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곳은 영국에서 멜버른으로 돌아오던 로크 아드라는 이름의 범선이 침몰한 곳인데, 54명의 선원과 승객 중 단 2명만 살아남은 비극적인 사고였다고 한다. 여기서 살아남은 남자인 톰이 가까스로 절벽을 기어올라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또 한 명의 생존자인 에바를 구출했는데, 후에 이 마을 주민이었던 깁슨이란 사람이 또 다른 조난자가 생길 경우 올라올 수 있도록 만든 계단이 위에 언급한 깁슨스 스텝이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은 헬기투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장관은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장 짧은 15분 코스를 시작으로 총 3개의 코스를 운영 중이지만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인만큼 15분 기본코스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15분 코스 2인 - 한화 약 24만원)
하지만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자주 방문할 수 없는 만큼 헬기투어는 금액 대비 가치를 한다. 헬기를 타는 것 자체도 흔치 않은 경험이라 조종사 바로 옆자리에서 헤드셋을 끼고 신기하게 조종석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이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황홀한 풍경에 빠져든다. 아차차, 사진을 찍어야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12사도와 아크 로드 고지까지 다 보고 나면 이미 해는 졌을 터, 당일 일정이라면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가야겠지만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야간 주행은 추천하지 않는다. 마을 주변을 제외하면 가로등이 없고 야생동물의 로드킬이 빈번히 일어나는 구간이기 때문. 아크 로드 고지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포트 캠벨에서 하루 숙박하는 것이 좋다. 많은 관광객들이 머물러가는 도시이지만 작은 마을이라 숙소의 갯수는 제한되어 있다. 12월 말~1월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되도록 일찍 예약하는 것이 좋다.
그레이트 오션로드 렌트카 추천 코스
1박 2일 : 멜버른 오전 출발 - 오후 4시 경 헬리콥터 비행장 도착 (헬기를 타는 시간은 15분이지만 기다리는 시간 감안) - 헬리콥터 탑승 후 깁슨스 스텝, 로드 아크 고지 - 포트캠벨 1박
2박 3일 : 론에서 1박 - 론에서 여유롭게 출발 - 저녁 6시 전에 깁슨스 스텝, 로드 아크 고지 도착 - 포트캠벨 1박
3박 4일 : 론 1박 - 깁슨스 스텝, 로드 아크 고지 - 포트캠벨 1박 - 그램피언스 국립공원 - 홀스갭 1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