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를 기억하며
난 원래 요리를 잘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
스무 살,
엄마가 투병으로 집을 비우시며 내 차지가 된 부엌.
그리고 시작된 내 요리는
맛도 없고, 정성은 더 없는 노동의 산물이었다.
그런 수준의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자니
아빠의 불만은 제쳐두고
내가 해놓고도 내가 먹기 싫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깨우친 것은
엄마가 우리 식구 위해 하루 세끼 요리하신 것이
굉장히 위대한 일이었다는 것,
식구들이 앉아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위에 집어넣는 행위 이상의 일이라는 것,
-그 상을 차린 엄마의 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 엄마들처럼 세련되게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안 해주셨지만
하루에 세끼 곱하기 내 나이만큼이나 해 주신 것과 같다는 것.
내가 해보고야 알게 되었다.
내가 잘나서 혼자 잘 큰 줄 알았는데
나를 키운 엄마의 그 정성과 시간에 새삼 감사했다.
요리는
여자니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니까 해야 하는 것,
내가 날 잘 먹이기 위해선
기본은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감사한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진달래술,
멸치가루,
호박볶음.
초등학교 앞
산에 지천으로 흐드러진 진달래를
하굣길에 따다 드리니
소주를 부어
아빠를 위한 술을 만드셨다.
진달래가 없는 캐나다에 살아도
이 꽃 저 꽃 피기 시작하면
엄마 생각도 피어난다.
엄마의 투병기간이 길어지면서
엄마는 당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아셨는지
남은 우릴 위해 이것저것 만드셨다.
그중에 하나가 멸치가루
몸에 좋다면서
음식에 조금씩 넣어먹으라며
멸치를 많이도 갈아주셨다.
엄만 돌아가시고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멸치가루를 보면서
'엄만 가셨는데
넌 이렇게 남았구나!'
마음이 복잡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우리 엄마와 남편,
장모와 사위를 연결하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호박볶음.
푼돈 번다고 새우, 조개 까러 공장 다니시던 엄마는
가져오신 해물로 호박볶음에 넣어주셨다.
보리새우라고 하는 작은 새우를
가늘게 채 썬 애호박, 야채들과 같이 볶으면
맛있는 국물이 생겨서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다.
멸치, 다시마로 육수를 낸 국물에
면을 넣고
그 위에 호박볶음을 고명처럼 올리면
그저 그런 물국수가 화려하게 변신.
은근 입맛 까다로운 남편이
물국수에 이 호박볶음을 얹어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했네! 하면서 좋아한다.
어린 동생들 잘 건사해준 남편을
'윤 서방,
내가 만든 게 더 맛나!' 하시며
예뻐해 주셨을 텐데.
이젠 대충 해도 깊은 맛 낼 줄 알고,
사람들 불러다 인심 좋게 나눠도 먹고,
딸들 독립하면 줄 김치도 담그는 20년 차 엄마가 되었지만,
가끔은
윤 서방 흉도 보고
세상살이 푸념해도 다 받아줄 나의 엄마가 계셨으면 좋겠다.
그럼
진달래 술 담가달라고 꽃 따다 드리고
멸치도 갈아달라 조르고,
보리새우 넣은 물국수는
최고로 맛있게 대접해드리고 싶다.
잘 커준 동생들과,
윤 서방,
당신의 예쁜 손녀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