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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꾸다 가는 인생, 결국 이루고 가는 인생

내가 캐나다로 간 세 가지 이유

by 고현숙

아직 시도하지 않은

여러분만의 꿈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무리 꺼뜨리려고 해도 꺼지지 않는

누가 뭐래도 나는 꼭 해보고 싶은

가슴속에 살아있는 그런 꿈이요.


저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습니다.


한국 밖을 여행하며 또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


유일하게 잘했던 과목이 영어인 것도

집이 너무너무 싫어서 도망가고 싶은 것도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뒷전으로 밀려서 자꾸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꿈 따위는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그 시기에

학원을 폐업한 돈 9백만 원만 가지고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나이 마흔에 저는 왜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을까요?




u4919811754_a_superwoman_mom_is_flying_with_two_girl_superwom_01f39d7f-1619-4667-b3c6-51d31796e8ec_2.png 수퍼23 고현숙








2013년 가을

저는 41살이었고,

고3, 초등 5학년인 두 딸의 엄마,

그리고

영어 학원을 운영하면서 세 번째 대학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정말 우연히 Canada 유학원의 광고를 발견했어요.


“한국의 유아교육 교사 자격증으로 캐나다에서 취업할 수 있는 게 사실인가요? 제가 마흔한 살인데 너무 늦지 않았나요?”


“취업 가능하시고요. 마흔한 살이시면, 캐나다에서는 한창 일하실 나이인걸요.”


'한국에선 늦은 나이가 캐나다에선 한창 일할 나이라니

그것도 자격증 맞교환이 된다니

내 꿈을 이뤄 볼 마지막 기회야!'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어떻게 갈 결심을 했냐고.

친구도, 직장도, 집도 없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

남편도 없이 애들만 둘 데리고요.


저의 세 가지 이유는 이렇습니다.




u4919811754_an_old_lady_is_laying_on_the_bed_her_family_is_ne_23fa0a8b-9d05-42f2-8205-1faf06d44156_0.png 눈 감는 날




첫째, 눈 감는 날 나에게 미안하고 싶지 않다.


저는 죽을 때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없고, 모아둔 재산이 없는 건 그때도 지금도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놓친다면 너무 후회될 것 같았어요.



나이 마흔 일 때
그때 갔었어야지.


더 노력하지 않았어?



죽는 순간에 이렇게 후회하기 싫었어요.


이미 여러 번 가려고 시도했었는데,

제 의지와 상관없는 이유들에 좌절하고 실망하길 반복해서 거의 포기했었습니다.


'나이 마흔에도 이렇게 망설이는데

오십, 육십에는 더 못 가겠구나' 싶었어요.


Now or never!

지금이어야만 했습니다!




u4919811754_a_busy_working_mom_pencil_sketch_--v_6.1_15032790-bbed-4fe5-878b.png?type=w1 워킹맘



두 번째, 내 딸들은 선진국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


대학 졸업과 함께 바로 결혼해서,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힘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인, 개인적인 불평등이 있었고요.


제 가정환경을 바꾸려고 20년 가까이 노력했지만, 그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나 혼자 바꾸기엔 역부족 ㅜㅜ

그렇다면
여성이 더 존중받는 나라로
내가 가면 되지 않나?





당시 한 신문 기사가 더 저를 자극했습니다.

OECD 국가들의 성 평등을 나타내는 통계에서 한국이 136개 나라 중 111위였어요.


여성과 남성이 얼마나 평등한 대우를 받는지를 조사한 순위입니다.

경제활동 참여 및 기회, 교육 성취도, 보건 및 건강 수준, 정치적 역량 발휘의 네 개 부분에서 평가를 합니다.


일본 105위보다도 낮은 거의 꼴찌에 가까운 숫자였어요.

내 딸들은 여성 불평등이나 사회의 고정관념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예체능을 좋아하고, 몸이 약해서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좀 못해도, 아파서 외모가 좀 달라도 존중받고, 배려받는 사회 시스템이 간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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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의 탈출


먼저 밝혀두고 싶은 것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저의 부정적인 감정도 다 사라졌습니다.


남편과도 사이가 회복되어 이제 세 번째 이유를 밝힐 수 있습니다.


복잡한 환경의 k장녀의 책임감,

남편과의 갈등 속에서 저는 도망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숨 쉴 수 없을 것 같던 날들 속에서

저는 저를 살려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못지않게 이것이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와 남편을 원망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캐나다에서 힘들 때마다 돌아오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 미움과 원망이라는 감정이 큰 에너지가 되어 저를 버티게 해 주었습니다. 어떡하든 전 캐나다에서 성공을 해야 했습니다. 돌아오지 않으려면요.




꿈만 꾸다 가는 인생과

결국 이루고 가는 인생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하실 건가요?


쉽진 않습니다.

그 꿈을 이뤄내기 위해서 무식할 만큼의 용기와 실행력이 필요하니까요.


저의 그 무모했던 도전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2022년에 처음 썼던 글을 다시 다듬고 있어요.


2025년 책을 내기로 결심했고,

아직 못 한 이야기들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


아직 가슴속에 이루진 못한 꿈을 가진 분들

용기가 필요하신 분들,

뭔가를 시작하기에 망설이는 분들에게 작은 동기부여가 되는 글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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