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주머니
10년 이상된 DSLR 카메라가 있습니다. 애들 사진 찍어 준다고 거금을 들여서 장만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처음에는 매뉴얼도 몇 번씩 보면서 자주 사용했습니다. 생각보다 사진이 별로입니다. 제 실력 탓인데 기기 탓만 했습니다. 먼지가 쌓여갔습니다.
최신 기종의 카메라를 사달라고 안사람에게 떼쓰다가 거절.. 아니 혼났습니다. 스마트폰을 사게 되면서 카메라 못지않게 좋은 사진을 찍은 건 아닌데 편리함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가볍고, 언제 어디서나 바로 애들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지금의 아이폰을 선물 받았습니다. 신세계였습니다. 그 당시 최신 기종의 아이폰이 만들어내는 사진은 감동이었습니다. 아이폰의 카메라 선능에 만족했는데 더 좋은 사양의 아이폰이 연이어 출시되었습니다. DSLR에서나 가능한 셔터 속도, 조리개 조절도 되고, 아웃 포커스 기능도 지원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예전 DSLR 카메라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반지 사진 촬영한다고 다시 꺼내 쓰고 있습니다. 화질도 낮고 화면 터치도 안되지만 나름 괜찮은 사진을 만들어 줍니다. 휴대폰도 기종 변경 없이 4년 동안 잘 쓰고 있습니다. 사진 수업 개설하면서 안사람이 바꿔준다고 했는데 그냥 쓰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래된 카메라, 휴대폰을 그대로 쓰길 참 잘했습니다. 최신 기능이 지원되지 않는 기종을 쓰면서 대안을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꼼수를 생각하면서 사진 찍는 기술이 발전한 거 같습니다. 신제품을 바로바로 구입했더라면 몰랐을 부분을 발견한 거죠. 때로는 제약 조건이 있는 일을 해도 괜찮습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거와 비슷합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남들처럼 달릴 수 있다면 게임 끝이죠. 남들보다 힘들고 어렵지만 난관을 극복하고 나면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