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의 저편

돌이키지 마!

by freetime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갑니다. 갑자기 괜찮은 글감이 떠 올랐습니다. 길에 잠시 서서 수첩에 적으면 지각입니다. 회사로 빨리 가야 합니다. 이 소중한 글감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떠오른 키워드를 반복해서 돼 새김 합니다. 요즘 기억력은 휘발성이 강합니다. 금방 날아가버립니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골목길에서 좌회전을 하면 오르막길이 있고 길 입구에 편의점이 있습니다. 누군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을 먹고 있습니다. 면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 라면은 진리입니다. 아침을 먹었는데, 다시 배가 고파집니다. 라면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라면 연기 같이 날아가려던 기억을 부여잡습니다.


점입가경

떠올랐던 단어를 다시 붙잡고 오르막을 오르다, 거침없이 무릎이 아파옵니다. 오르막길을 올라서 평평한 길을 쭉 직진합니다. 커다란 차가 주차하려고 골목길을 막고 있습니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기사의 앞을 막고 있는 하얀색 외국 용 같습니다. 외제차입니다. 차는 크고 길은 좁습니다. 주차하면서 차가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시계 추 같습니다. 시간이 빠르게 갑니다.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다시 걷습니다.


설상가상

평소 우회전해서 질러가던 주차장에 차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둘러서 가야만 합니다.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습니다. 지하 3층에 있는데 올라오지 않습니다. 마침내 책상에 앉았습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단편적인 단어, 문장을 적었습니다.


영화 트루만 쇼 같습니다. 차가 길을 막고, 주차장이 갑자기 꽉 차있고, 엘리베이터는 멈춰있고, 누군가가 제가 글 쓰는 걸 방해하는 거 같습니다. 평소 없던 일이 연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래도 이렇게 한 편의 글이 만들어졌습니다.


인생은 직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동기 부여